[이덕일의 ‘역사의 창’] 남한의 역사학, 북한의 역사학
2020년 03월 05일(목) 00:00
광복과 동시에 분단이 되었으니 이제 남북한이 따로 산 지 75년째이다. 단군 건국 때부터 지금까지 4353년을 생각하면 사실 75년은 아주 짧은 세월에 지나지 않는다.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제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우연히 만나 보면 남북의 문화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세계관의 차이는 크다. 북한이 경제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처럼 사고하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사고하고 말하는 근본 원인은 역사관의 차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남북한 역사학계가 해방 이후 걸었던 길이 아주 다른 데 기인한다. 광복 직후의 역사학계는 대략 세 그룹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주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학인데, 민족주의 역사학이라고 부른다. 일제 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 임정 국무령 석주(石洲) 이상룡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녔던 역사학으로서 광복 직후에는 위당 정인보와 민세 안재홍 등이 뒤를 이었다.

두 번째는 사회경제사학자들로 불렸던 학자들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지지하던 학자들이다. 백남운, 이청원, 전석담, 김석형 같은 역사학자들이다. 세 번째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역사학자들로서 이병도·신석호로 대표된다.

첫 번째 그룹은 광복 후 친일세력 청산이라는 국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군정이 다시 친일세력을 등용하는 바람에 해방 정국에서 도태되었다. 여기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정인보·안재홍 등의 역사학자들이 납북되면서 남한에서 사라졌다. 두 번째 그룹은 미군정 때 대거 월북해 북한의 역사학계를 형성했다. 북한은 이들을 주축으로 1947년 2월 17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내에 ‘조선력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설치하고 학술지 ‘력사제문제’를 발간했다. 위원회는 “가장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사상에 의거해서 조선 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옳게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역사 연구에 나섰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옳게 표현’하겠다는 말은 남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으로 보겠다는 말이다. 특히 유학자들의 중화 사대주의 사관과 조선총독부가 만든 식민사관의 해체를 역사학의 목표로 내걸었다.

일제 식민사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분류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남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역사가 발전한다는 타율성론이 배후의 가장 큰 이념이었다. 이를 위해 조선사편수회는 한국사의 강역에서 대륙과 해양을 잘라 내 반도사로 축소시키고, 그 반도의 북쪽에는 고대 한(漢)나라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반도의 남쪽에는 고대 야마토왜의 식민지인 임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임나는 가야라는 ‘임나=가야설’이었다. 결국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한다는 것은 ‘한사군 한반도설’과 ‘임나=가야설’을 극복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에서 남북한 역사학계의 지금 견해는 어떤가?

결론적으로 북한 학계는 한사군 한반도설은 1961년 리지린이 북경대에서 통과된 박사학위 논문인 ‘고조선연구’에서 한사군은 한반도가 아니라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밝힘으로써 청산했다. 또한 1963년 김석형이 ‘삼한삼국의 일본 열도 분국설’을 발표해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분국· 식민지라고 정리함으로써 ‘임나=가야설’을 해체시켰다.

그러나 남한 학계는 현재도 한사군 한반도설과 임나=가야설이 하나뿐인 정설이라 믿는다. 그러니 북한은 남한 사람들이 아직도 조선총독부 학설을 따른다고 우습게 보는 것이다. 또한 이런 역사관의 차이가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근본 배경이 되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역사학을 해체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세웠던 우리 관점의 역사학으로 복원하는 것이 이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잡는 길이자 여러 모로 혼란한 이 나라를 바로잡는 첩경이다. 이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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