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인가?
2020년 02월 25일(화) 00:00

김상윤 녹두서점 대표

2011년, 그러니까 ‘30+1’이라고 부르던 해에 나는 ‘광주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광주오월민중항쟁 31주년이 되는 해에 제기했던 문제를 40주년이 되는 올해에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저의 문제제기가 그다지 큰 효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겠습니다. 여전히 광주는 민주 인권 평화를 광주정신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민주 인권 평화라는 가치는 아주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 규정하는 점에 대해 한 번 따져보려고 하는 것은 정말 진정한 광주정신에 꼭 포함되어야 할 가치가 누락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지 광주는 스스로 ‘민주·인권·평화’를 자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광주가 스스로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를 자처하게 된 것은 광주오월민중항쟁 20주년 때라고 합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규정하였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나 아직 그 근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주년 이전에 민주화운동의 기치는 ‘민주·자주·통일’이었습니다. 이 기치는 당시 우리 운동이 나아가는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외세의 영향을 배제하여 남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을 지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념들이 모두 ‘광주오월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주장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부에서는 ‘80년 오월에 무슨 통일이냐’고 반론을 제기했으나, 오월정신은 80년 오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80년 오월 이후 계속된 운동을 통해 ‘계승’되는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기치는 당시 매우 통절하게 민족의 염원을 외치는 구호가 됐습니다.

그런데 광주오월민중항쟁 20주년이 되는 2000년은 민족적 염원보다는 시민운동적 가치가 전면에 대두됐을 때입니다. 일정 정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취되자, 운동은 체제 내적운동으로 전환됐습니다. 시민운동가들은 세계적 보편성에 주목했고, 그들에게는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평화’라는 가치가 매우 소중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주오월민중항쟁의 가치가 ‘민주·인권·평화’로 규정된 것은 당시 시민운동적 가치가 반영된 것이라는 말이지요. ‘민주·자주·통일’이나 ‘민주·인권·평화’ 모두 광주오월민중항쟁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냈다기보다는 당시 운동의 가치를 광주오월민중항쟁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아닌가, 그런 의구심이 든다는 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거의 모든 식민지들은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독립한 나라들은 또 다시 개발독재라는 혹독한 시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독재자들은 장기집권을 위해 특정한 ‘계급’을 소외시키고 특정한 ‘지역’을 소외시키는 방법을 썼습니다. 특정한 지역이 나라에 따라 특정한 종교나 특정한 인종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특정한 계급과 특정한 지역을 차별하는 것은 제3세계 여러 나라의 공통적 현상이었습니다.

유신체제의 붕괴를 전후해 일어난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은 제3세계의 일반적인 현상들이 표출된 것입니다. 부마항쟁은 계급적 모순이 폭발한 측면이 강하고, 광주항쟁은 지역적 모순이 폭발한 측면이 강합니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은 유신체제가 만들어낸 쌍생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주오월민중항쟁은 30년 넘게 지속된 지역차별 때문에 폭발한 것입니다. 그 차별을 철폐할 가능성이 김대중에게 다시 말해 민주화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었던 지역민들이 그 가능성이 무참히 꺾이자 가열차게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혹한 차별에 대한 저항정신’은 광주오월민중항쟁의 빼놓을 수 없는 가치가 되는 것이지요. 보다 추상화해 표현하면 평등이나 정의 같은 말로 다듬을 수 있겠지요. 옛날부터 광주 스스로 의향으로 자처해 왔던 대로 ‘정의’라는 가치를 제외하고 광주오월민중항쟁의 가치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오월민중항쟁의 가치가 당대의 운동적 가치로 포장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광주오월민중항쟁 40주년에 광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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