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면
2020년 02월 24일(월) 00:00
검은 벨벳으로 만든 가면(mask)을 쓴 루이14세는 바스티유 감옥 벨트디엘 탑 3층의 한 감방에 도착했다. 작은 감방 구석에 놓인 침대에는 철가면을 쓴 남자가 베개에 머리를 대고 축 늘어져 있었다. 가면은 얼굴 전체를 푹 뒤덮고 있었고 그것을 벗기기 위해선 열쇠가 필요했다. 가면의 눈과 코 부분엔 작은 구멍이 나 있어, 보거나 숨 쉬는 데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양쪽 귀가 있는 부분에도 작은 열쇠 구멍이 있어서 가면의 턱 부분을 벗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침대 옆에서 죄수를 바라보던 왕은 말했다. “이것이 철가면인가? 끔찍하군, 너무 끔찍해.”

프랑스 소설가 부아고베가 실제 철가면을 쓴 역사적 인물을 모티브로 쓴 인기 소설 ‘철가면’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설에서 루이14세의 쌍둥이가 쓰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 이 철가면은 실제로는 항상 착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감방에서 맨얼굴로 지내도록 했다가 신분 노출이 우려되면 검은 벨벳으로 된 마스크를 먼저 씌운 뒤 쇠로 된 가면을 덧씌웠다고 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당시에야 쇠나 벨벳으로 만든 마스크가 얼굴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소품이었겠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마스크’는 바이러스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비가 되었고, 이제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황금 마스크’가 되어 버렸다.

주말 사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광주·전남에서도 마스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막상 시내 약국이나 편의점, 할인점에선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정부 관계자들이 방송에서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디에서 마스크가 났나?”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급박한 상황에서 확진자 치료와 지역사회 방역에 ‘올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건강을 챙기는 데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마스크 보급에도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한다. 이러다가 집에서 벨벳으로 된 마스크라도 만들어 써야 하는 것 아닌지 답답할 따름이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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