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정 수사
2020년 02월 12일(수) 00:00
복강(腹腔)은 복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곳에 장기 대부분이 들어 있다. 복부에 작은 구멍을 만든 뒤 내시경과 수술기구를 통해 치료하는 ‘복강경 수술’은 외과수술 분야에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복부의 특정 부위를 절개하는 개복 수술에 비해 입원 기간이 짧아 일상으로 서둘러 복귀할 수 있고, 감염에 따른 부작용도 덜했기 때문이다. 수술 후 흉터도 작아 미용 차원의 만족도도 컸다.

이 수술법은 1960년대 유럽에서 비뇨기과나 부인과 분야에서 주로 사용됐었다. 그러다 1978년 독일 외과의사 커트 젬이 자동 공기주입기를 개발하고, 1987년 프랑스 군의관 필립 모렐이 작은 카메라와 TV모니터를 연결하는 현재의 방식으로 담낭 제거에 성공하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엔 의료 기술과 장비의 발전으로 위·간 등 주요 장기에 대한 수술도 가능해졌다.

검찰 수사를 흔히들 외과 수술에 비유하곤 한다. 한데 지난 2005년 두산 총수 일가에 대한 108일간의 검찰 수사는 ‘소걸음식 수사’ ‘백조식 수사’ ‘외과수술식 수사’라는 각종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자 검찰은 “정밀 외과 수술식 수사를 지향, 기업 수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해명했다. 201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라는 명칭을 반부패부로 변경하면서 당시 검찰총장은 “별건 혐의를 찾기 위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나 무차별적 소환을 통해 관련자를 압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15년간 일관되게 과거 수사 방식에 대해 반성하며 새로운 각오를 밝혔지만 현실에서는 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광주지검의 민간공원 특례사업 관련 9개월간의 수사, 그리고 지난해 9월 광주시청 및 광주도시공사 등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사실을 인지한 뒤 이어지고 있는 수사는 누가 봐도 과거 검찰 수사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다. 대상이나 내용 및 기간 등에 대한 아무런 제한 없이 검찰은 사실상의 ‘무한정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강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속하고 부작용 없는 외과수술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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