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호양학교 동종(銅鐘)
2020년 02월 11일(화) 00:00
1907년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 보자. 그해 1월 의병을 일으킨 담양 출신 녹천 고광순(1848~1907)은 8월이 되자 부대를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자리한 연곡사로 옮긴다. 장기 항전해 대비해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해 힘을 모으기 위한 ‘근거지계’(根據之計)였다.

그리고 녹천은 문장가인 매천 황현(1855~1910)에게 격문을 써 줄 것을 청한다. 매천은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지만 못내 마음에 걸려 그날 밤 격문을 써 두고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 녹천은 일본 군경의 야습을 받고 순절한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매천은 시신을 수습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즈음 구례에서는 천사 왕석보(1816~1868)와 매천의 제자를 중심으로 민족의식 고취와 신학문 보급을 위해 학교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매천이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모연소’(募緣疏)를 직접 지었다. 이렇게 해서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에 사립 ‘호양(壺陽)학교’가 1908년 8월 문을 열었다. 학교는 1920년 3월 일제의 탄압과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왕재일(광주학생독립운동 학생비밀결사조직인 ‘성진회’ 총무로 활동) 등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해방 후 주민들은 다시 한번 학교 건립에 발 벗고 나섰다. 유지들이 땅과 기금을 내놓고, 천은사에서는 목재를 기부하는 등 십시일반으로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1947년 개교한 방광초등학교(1999년 폐교)는 호양학교의 정신을 이었다.

호양학교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동종(銅鐘)이 지리산역사문화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범종 모양을 한 종은 높이 37㎝, 밑면 지름 19.7㎝ 크기이다. 표면에 태극 문양과 비천상이 새겨져 있어 이채롭다. 작은 구리종에는 구한말 교육을 통해 꺼져 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애썼던 매천과 구례 선각자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호양학교 동종 공개를 계기로 매천사(梅泉祠)와 옛 방광초등학교 교사(현 전남도교육청 지리산 학생수련장), 2006년 옛터에 복원한 호양학교를 연결하는 역사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송기동 문화2부장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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