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산업유산의 유쾌한 반란 ‘아트 팩토리’
2020년 02월 04일(화) 00:00
서울 문화비축기지
석유비축기지에서 친환경문화공간으로
6개 탱크 차별화…문화 마당·공연장 등
청주 ‘문화제조창C’
담배공장이 첨단문화산업단지로 탈바꿈
시민예술촌·아트숍·오픈스튜디오 등 활용
대구 ‘나나랜드’

담배생산 공장에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청주 ‘문화제조창C’.<청주시 제공>

산업화시대의 상징물인 폐(廢)산업유산이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 기능을 다한 석유비축기지(서울)와 연초제초창(청주), 제분공장(대구), 와이어공장(부산), 쌀 보관창고(순천), 막걸리 주조장(담양) 등이 시민들과 함께 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도시재생을 앞둔 광주 상무소각장과 일신방직은 미래에 어떤 공간으로 변모해야 할까? 산업화시대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아트 팩토리’(ART FACTORY)에서 광주 도시재생 사업의 지향점을 모색해본다.

대구 ‘이불골목’에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는 최복호 패션 디자이너.


◇서울 문화비축기지, 석유보관 시설의 변신=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매봉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문화비축기지는 폐(廢)산업시설인 마포 석유비축기지(1978~2000년)를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곳이다. 본래 아파트 5층높이에 지름 15~38m 크기의 대형 탱크 5개에 1970년대 후반 서울시민 800여만 명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휘발유와 디젤유, 벙커C유 등 총6907만ℓ를 보관하던 산업시설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가 확정돼 석유비축기지에서 500여m 떨어진 부지에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기 위해 폐쇄됐다.

국제현상 설계공모를 거쳐 옛 석유비축기지는 2017년 10월에 새로운 친환경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 시설에는 모두 ‘탱크’(Tank) 이니셜인 ‘T’ 명칭이 붙여져 있다. 탱크별로 쓰임을 차별화했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야외공간인 ‘문화마당’(T0)을 접하게 된다. 대규모 공연과 축제, 시장 등이 열리는 공간이다.

‘T6’(커뮤니티 센터)는 ‘T1’과 ‘T2’를 해체하면서 나온 철판을 활용해 신축한 건축물이다. 내부는 카페와 운영사무실, 원형 회의실, 문화아카이브 등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들로 구성돼 있다. 경사진 램프를 따라 2층에 올라서면 작은 생태도서관인 ‘에코(ECO) 라운지’와 원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옥상마루’가 눈길을 끈다.

‘T1’은 과거에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를 해체하고 대신 통유리로 된 벽체와 지붕을 얹은 ‘파빌리온’(Pavilion·임시로 만든 건물) 공간이다. 철 구조물이 투명한 지붕과 벽면을 지탱하는 이채로운 모습으로, 전시와 워크숍, 공연, 드라마 촬영 등 다목적 공간으로 이용된다. ‘T2’는 야외 공연장으로 변모했다. 좌석을 대신하는 네모난 섬돌이 자연스럽게 무대를 향해 배열돼 있다. ‘T3’는 석유를 비축할 당시의 탱크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 ‘T4’는 등유를 보관했던 거대한 탱크내부를 전시실로 사용한다. 오는 16일까지 권민호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인 ‘새벽종은 울렸고 새아침도 밝았네’가 전시된다.

‘T5’는 이야기관이다. 전시실을 한 바퀴 돌면 1978년 운영을 시작한 석유비축기지가 어떤 곳이었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2017년 문화비축기지로 변모했는지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문화비축기지는 매주 화~토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시민 10~30명을 대상으로 ‘해설사와 함께하는 시민투어’(1시간 소요)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사이트(https://yeyak.seoul.go.kr)에서 ‘문화비축기지 시민투어’를 검색해 방문희망일 최소 1주일 전에 신청하면 된다. T1~6(운영시간 오전 10~오후 6시)은 매주 월요일 휴관.(서울시 마포구 증산로 87)

서울 문화비축기지 T6(커뮤니티 센터)내 ‘에코(ECO) 라운지’.
◇청주 ‘문화제조창C’, 담배공장에서 문화 산실로=지난 2004년 12월 문을 닫은 청주 연초제조창은 한때 2000여명이 일하고, 연간 100억 개비의 담배를 생산하면서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청주의 대표적 산업시설이었다. 지역에서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두고 철거와 재개발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청주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용해 공장을 매입한 뒤 2007년부터 문화시설로 갖춰나갔다. 원료공장은 문화관련 업체 80여개가 입주한 ‘청주 첨단문화산업단지’로 변모했다. 담뱃잎을 보관하던 동부창고는 다목적 홀과 악기연습실 등을 갖춘 시민예술촌으로 거듭났다. 이어 2014년에 옛 연초제조창 일대 1.36㎢가 국토교통부의 ‘경제기반형 도시재생 선도사업’ 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시는 본격적으로 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우선 ‘마중물 사업’으로 주변 상당로와 덕벌로 도로를 확장하고 복합 공영주차장, 중앙광장을 조성했다. 또한 1단계 ‘민간참여 사업’으로 지하1층·지상 5층 규모의 본관동을 리모델링했다. 과거에 엽연초를 담배로 가공하던 연초제조창의 예비공장이었던 공간이다. 1층과 2층은 아트숍과 식음료, 의류 등 민간 판매시설로, 3층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는 전시실로 리모델링 됐다. 또한 4층은 수장고와 자료실, 오픈스튜디오, 시민공예 아카데미 등으로, 5층은 열린 도서관과 시청자 미디어센터, 정보통신기술 (ICT) 체험관 등으로 활용됐다.

시는 ‘2019 청주 공예비엔날레’(2019년 10월 8~11월 17일)에 맞춰 공간을 오픈하면서 옛 연초제조창 전체 명칭을 ‘문화제조창 C’로 정했다. C는 모든 생명체의 기초가 되는 탄소(Carbon)의 영문 첫 글자에서 따왔다.

앞서 2018년 12월 옛 연초제조창 남관에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국립미술품 수장보존센터)이 들어섰다. 이를 위해 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2012년 2월 업무협약을 맺은 후 전시형 수장고로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미래와 꿈의 공예-몽유도원이 펼쳐지다’를 주제로 새롭게 탄생한 ‘문화제조창C’에서 열린 지난해 청주 공예비엔날레는 세계 각국 300여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관람객 40여만 여명이 방문하며 성황을 이뤘다.(충북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대구 ‘나나랜드’, 제분공장이 문화공간으로=패션디자이너 최복호(72) 씨앤보코(C&BOCO) 대표는 2년 전 물류창고를 계약하기 위해 대구 서문시장 ‘이불골목’을 찾았다. 이때 80여 년 전부터 제분(製粉)공장으로 쓰였던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기계가동을 멈춘 채 건축자재 창고로 이용되고 있었다. 건물주 설명에 따르면 인근에 자리한 국수공장에 납품하기 위한 밀가루를 빻고, 보리쌀을 납작하게 누른 ‘떡보리쌀’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이후 최 대표는 큰장로 골목에 자리한 400㎡규모의 낡은 제분공장을 리모델링해 복합 문화공간 ‘나나랜드’(NANA LAND)로 탈바꿈시켰다. 지난해 12월 23일 문을 연 이곳은 패션숍과 카페, 갤러리, 공연장 기능을 갖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대구에서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관 주도가 아닌 순수 개인차원의 도시재생사업 성과이다.

큰장로 골목에 들어서면 블루, 레드, 옐로, 그린 등 원색으로 칠해진 건물이 방문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리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서면 패션숍이다. 최 대표가 디자인한 의상과 모자, 안경, 스포츠의류, 패션잡화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한쪽에는 부라노섬 이름을 본뜬 카페 ‘커피 부라노’가 자리하고 있다. 벽면에는 최 대표가 아이패드로 그린 화려한 색감의 추상화가 걸려있다. 패션과 갤러리, 커피와 담론의 장이 융합돼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최 대표는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베네치아 부라노(Burano)섬을 방문해 벤치마킹했다.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브랜드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대구에 컬러풀한 이미지를 어떻게 나타낼까 해법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건물주의 양해를 얻어 건물 외벽을 원색으로 단장했다. 200m 길이의 큰장로 골목에서 양말 등을 가내공업으로 생산하는 업주들에게도 외벽에 색을 칠하고,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최 대표는 대구의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는 산업시설과 쇠락한 골목길에 숨결을 불어넣어 시민들과 공유하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지속시키려고 한다. 나아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도시재생 운동을 꿈꾼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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