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의 ‘공감사랑방’ 꿈꾼다
2020년 01월 14일(화) 00:00
[우리 동네에는 예술가가 산다]
지역과 작가 이어주는 ‘플랫폼 M’ 이매리 작가
다양한 국제행사 참여하며
‘작업실’ 소통의 필요성 느껴
광주방문 아티스트 위한 게스트 룸
귀한 인연으로 발전
광주작가 유일 中 ‘도큐멘타’ 참가

이매리 작가는 지난해 3월 예술인 마을 양림동과 주택단지인 봉선동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기 위해 광주시 남구 방림동에 ‘플랫폼 M’을 열었다.

지난 2018년 9월초 작가 이매리(55)씨는 광주시 남구 방림동의 작업실 ‘플랫폼 M’에서 조촐한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다. 5층 규모의 모던한 작업실은 작가와 시민, 예술인과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이름 그대로 플랫폼이다. 양림동과 봉선동 경계에 자리한 것도 이같은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양림동은 10여 명이 넘는 작가들이 입주해 활동하고 있는 문화동네이지만 봉선동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주거지로 이질적인 두 지역을 예술로 연결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작업실 간판을 ‘플랫폼 M’으로 내건 것도 그 때문이다.

이매리 작가는 2018 광주비엔날레 개막일에 맞춰 소박한 초대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내고 건물 2층에 꾸민 갤러리에 작품들을 내걸었다. 광주를 방문하는 타 지역 작가나 외국 아티스트들을 위해선 4층의 게스트룸도 기꺼이 공개했다. 설치미술가 임흥순(2015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씨가 게스트룸을 다녀간 첫번째 ‘손님’이었다.

이처럼 같은해 3월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그녀가 6개월 만에 뒤늦은 ‘신고식’을 가진 건 2018 광주비엔날레(9월7~11월11일) 때문이었다.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를 기념하는 자신만의 특별한 ‘자축행사’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외국에서 열리는 미술전시나 아트페어에 가면 본행사 이외에 크고 작은 이벤트가 많아 도시 전체가 축제열기로 뜨거워요. 이들 전시행사는 작가 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미술관 관계자, 갤러리스트 등 미술계 인사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거든요. 특히 딱딱한 공식적인 개막식 이외에 디너파티나 뒤풀이 행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사교장’이기도 해요. 일부 재단이나 미술관들은 아예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집을 전시회의 일부로 확장하는 ‘오픈스튜디오’를 기획해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모던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플랫폼M’전경.
그녀의 바람대로 ‘플랫폼 M’은 비엔날레 기간 동안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를 받은 이 작가는 이 곳에서 임흥순 작가를 만나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친분을 쌓게 됐다. 평소 광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임 작가는 종종 광주에 내려 올 때마다 그녀의 작업실에서 리서치 작업을 하는 등 ‘플랫폼 M’의 단골 손님이 됐다.

“흔히 작가들은 전시회 개막식의 게스트로 초대를 받아 행사장을 찾지만 진지하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아요. 서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 게 고작일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어요. 하지만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건 차원이 달라요. 작가들은 말은 쉽게 안하지만 궁금한 게 참 많거든요. 작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지,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같은 예술인들이라 잘 알 것 같지만 작품세계가 다르면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게 많거든요.(웃음)”

‘다원적 개념미술가’로 불리길 원하는 이매리 작가에겐 시간과 인간, 삶 등 심오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 2층 작업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책들이 그녀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술과 인간 가치’(멜빈 레이더·버트럼 제섭), ‘예술활동의 근원’(콘래드 피들러 외), ‘예술철학’(버질 C·올드리치), ‘예술론’(괴테), ‘창조적 존재와 초연한 인간’(전동진)등 얼핏 눈에 띄는 도서목록들이 이를 방증한다.

“2018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의 큐레이터인 제니 누르메니에미는 광주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어요. 2개월 동안 무각사에서 열린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통해 광주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았는데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면서요. 때로 작가들의 작업실은 전시기획자들에게는 광주를 알리는 ‘쇼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지난해 누구보다도 해외 전시가 활발했던 그녀 답게 ‘플랫폼 M’과 인연을 맺은 기획자 가운데에는 유독 외국인들이 많았다. 미국의 미술평론가 로버트 모건, 그리스 출신 큐레이터 탈리아 보로시초포, 왕슌키 전 상하이 히말라야 미술관장 등이 광주비엔날레 기간동안에 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깊이있는 대화를 나눴다.

한때 ‘하이힐 작가’로 불렸던 이매리 작가는 작업의 시간 만큼 작품의 스펙트럼 또한 매우 넓다. 평면회화를 거쳐 그리려는 대상을 해체하고 미니멀리즘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자신의 색깔과 세계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변화를 추구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늘 새로운 주제를 모색하는 열정만큼은 20대 청년작가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그녀의 창작을 관통하는 주제인 ‘존재와 시공간’은 시간을 넘나드는 인간과 삶의 터전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과거와 단절된 현재, 영화를 누렸던 옛 공간이 등장한다. 몇년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하이힐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게 대표적이다. 다신의 철학적 스승인 고봉 기대승 선생을 기리는 월봉서원에서는 다산의 삶을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작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2017년 광주시립미술관하정웅관에서 열린 초대전 ‘Poetry Delivery(시배달) 2017’은 시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철학적 메시를 표현한 자리였다.

“영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된 창세기를 금박의 글씨로 적어나간 캔버스와 월남사지 발굴현장 사진들의 공존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하이힐’로 대변했던 것에서 (시 배달은)생태적이고 모성적인 국면으로 확장하는 데서 얻은 미덕이다.” (시인 나희덕)

이매리 작 ‘지층의 시간’ (Time of Earth‘s Strata·2018년 작)
지난해 12월 이매리 작가는 중국 베이징 투데이 아트뮤지엄이 개최하는 ‘2019 도큐멘타’(오는 3월15일까지)에 광주 작가로는 유일하게 참가했다. ‘A Stitch in Time-봉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회서 그녀가 출품한 작품은 ‘Poetry Delivery ’(20분)와 ‘Two Channel Video’(44분) 등 실존적 존재와 시공간을 다룬 2개 작품이다. 이 가운데 ‘Two Channel Video’는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라는 테마로 한국에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들 이주민과 함께 시와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아낸 작업이다.

특히 그녀는 올해 누구보다도 바쁜 한해를 보낼 것 같다. 오는 3월 무안 오승우 미술관에서 개막하는 개인 초대전을 필두로 광주대 미술관 초대전, 9월 신세계 갤러리 초대전에 이어 유럽 전시회를 준비중이다.

/글·사진=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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