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눈먼자들의 독선은 국민을 불행하게 한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 독선과 아집의 역사
바바라 터크먼 지음, 조민·조석현 옮김
2019년 10월 04일(금) 04:50
조지프캠벨 ‘신의 가면-원시신화학’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오늘의 세상에서도 반복되는 현상에 대한 경구다.

“미래에도 이미 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주제가 다시 울려 퍼지리라. 이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목적을 위해서, 또는 미치광이가 어이없는 일과 대참사를 위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말란 법은 없다.”

‘독선’과 ‘아집’은 권력과 관계가 있다. 비단 한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자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조직, 단체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작동하는 곳에는 독선과 아집이 자리한다. 미국의 제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다른 모든 과학은 진보하고 있는데도 정치만은 옛날 그대로이다. 지금도 3, 4천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작금의 우리 시대 화두 가운데 하나가 ‘검찰개혁’이다. 오래전부터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위로 끝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만큼 폐쇄적인 조직 논리가 ‘권력’과 결부돼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을 토대로 권력에 눈먼 통치자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발간됐다. 두 차례에 걸친 퓰리처상 수상자이며 20세기 최고의 역사가인 바바라 터크먼이 펴낸 ‘독선과 아집의 역사’가 바로 그것. 책은 실정(失政)의 분석과 해명을 통해 독단과 편협의 정치를 바로잡는 성찰의 계기를 준다.

책을 번역한 이들은 ‘옮긴이의 말’에서 스스로 자멸을 초래한 어리석은 통치자들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 사례로 트로이 목마를 든다. ‘아둔함의 원형이자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신과 인간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트로이전쟁은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파멸을 자초했다. 저자는 “목마이야기는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경고와 실행 가능한 대안을 무시하고 국익에 반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 사례는 르네상스시대 교황들의 독선과 아집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했던 이들의 퇴행이 결국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다는 분석이다. 밝아오는 근대 여명 앞에서 개혁을 거부하고 “쾌락과 타락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 몰락의 주 요인이다.

역사를 보건대, 개혁에 저항하며 권력과 이권을 추구했던 세력은 결국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통치자든, 조직이든, 특정 단체든 본질을 왜곡한 채 권력을 휘둘렀던 이들의 말로는 불을 보듯 뻔했다.

“르네상스시대의 교황들은 조국인 이탈리아를 전쟁과 외국의 압력의 희생물로 전락시키고 독립까지 잃게 한 주역이었다. 또한 신의 대리인으로서는 교황직을 만인의 비웃음을 사는 자리로 만들어, 루터가 자랄 수 있는 요람을 제공했다.”

세 번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베트남전쟁에 관한 부분이다. 베트남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본다.

“전쟁은 케네디의 판단 착오에서 싹텄고,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존슨, 여기에다 닉슨과 그의 참모들은 아집과 독선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이야말로 미국 대통령과 정책 결정자들 그룹의 독선과 아집의 결정판인 셈이다.”

위의 사례들은 역사는 배움의 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혜를 얻는 최고의 방법은 과거의 실패사례를 통해서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 또한 각별하다. 어떠한 통치자나 세력, 조직도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미래를 읽지 못한다면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당장의 눈속임은 가능하겠지만 도도한 민의와 역사의 파고 앞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아집과 독선은 개인의 타고난 성격이기 때문에 통치에 대해서도 그 이상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치상의 독선은 개인의 독선보다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므로 정부는 이성에 따라서 행동해야 할 분명한 의무가 있다.” <자작나무·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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