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선과 귀국열차, 남겨진 이들의 노래
2019년 09월 30일(월) 04:50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교수]

자이니치(재일 코리언)의 음악적 정체성 탐구를 다룬 다큐 영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이하 아리랑)가 ‘DMZ 다큐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영화제가 열리는 파주로 향했다. 오사카 민족박물관 소속 일본인 음악학자와 자이니치 인류학자가 공동 제작한 이 영화는 지난 5월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주최로 광주에서 한국 내 첫 상영회를 가진 바 있다. 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된 다른 자이니치 관련 다큐 영화 몇 편도 감상하고, ‘아리랑’ 제작자들과 재회의 기쁨도 나눴다. 광주에서의 첫 만남 이후 서너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어 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듯한 느낌이었다.

흔히 ‘재일동포’라고 불려 왔던 자이니치는 일제강점기에 여러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 이후 귀국선에 오르지 못한 이들과 그들의 후손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에서 종종 ‘민족적 동질성’의 요구 아래 변조되어 왔다. ‘아리랑’은 음악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영화다. 제목의 ‘아리랑’이라는 단어가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줄 수 있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당사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사뭇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영화 속 음악가들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난 자이니치 2세와 3세들이다.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 안성민은 즉흥적 일본어로 아니리 사설을 늘어놓고 종종 일본어 창까지 시도한다. 조총련 계열 ‘금강산 가극단’의 가야금 주자는 북한 유학을 갔다가 ‘기초가 안 돼 있다’고 지적받은 기억을 씁쓸하게 새기며 “물 건너 왔으니 음악도 달라지는 거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한때 오페라를 전공했던 싱어송라이터 이정미는 ‘고향’에 대한 실존적 깨달음을 청중에게 전하며 일본의 하층민과 자이니치가 모여 살던 도쿄 외곽의 빈민촌, 젊은 시절 내내 벗어나고 싶었던 ‘그곳이 또한 내 고향’이라고 노래한다. 이정미에게 ‘아리랑 고개’는 현해탄이며, 민요 ‘아리랑’은 자신의 조부모와 부모가 일본에 건너와 정착해 살았던 그 ‘고향’으로 향하는 ‘케세이센’(京成線) 열차에서 부르는 노래다.

요컨대 자이니치에게 ‘민족’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통한 안전하고 편한 인생행로를 포기하고 외국인으로서의 온갖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다움, 곧 내 정체성의 뿌리를 속이고 싶지 않다는 천부 인권적 선언이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민족’이 집단화와 동일성의 논리라면, 자이니치에게 ‘민족’은 개별화와 차이, 그리고 타자의 논리인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에 의해 단순히 ‘민족 수난의 상징’으로 인정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그 고난의 역사를 초래한 ‘국가’라는 이름의 주권 권력들에게 요구할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속류의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시기에, 음악과 예술의 영역에서나마 경계(境界)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서울과 대구에서 초연되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1945’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만주 일대에 이주하여 살았던 조선인들이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아 귀국열차를 기다리던 상황을 그린다. 이들 속에 일본군 위안부였던 조선인 분이와 일본인 미즈코가 있다. 2년 전 배삼식 극본에 국립극단의 연극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예기치 않은 시각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국인 자신의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할머니가 된 그들을 뒤늦게 ‘민족수난의 상징’으로 모시기 이전, 일본군 위안부의 과거를 가진 분이와 미즈코를 위해 우리는 귀국 열차의 자리를 내줄 수 있었을까?

오페라로 초연된 ‘1945’에서 작곡가 최우정은 그간 한국의 ‘오페라’라는 ‘제도적 음악’의 열차에 동승할 수 없었던 노래들, 민요와 동요, 일본풍 군가와 심지어 유행가 선율까지, 그 시절 고난을 겪던 민초들의 노랫소리에 저마다의 몫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본에서 음악 그리고 연출에 이르기까지 한국 창작 오페라의 중요한 성취를 이룬 이 작품이 머지않아 광주에서도 공연되기를 기대해 본다. 광주는 경계의 사유,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대한 대항적 상상력의 발원지이며, 앞으로도 그래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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