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삶과 죽음의 경계…화장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다
2019년 09월 20일(금) 04:50
10부 ‘네팔’ (10) 바그마티강 화장터
장례절차는 보통 하루만에 끝나
아버지는 장남이, 어머니는 막내가
장작에 불 붙일 수 있어
자식들은 1년간 흰옷 입어
머리카락 자르고 장신구 착용 안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바그마티 강 화장터에서 장례절차가 이뤄지고 있다. 바그마티 강은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로 꼽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과 앞을 흐르고 있으며, 인도 갠지스 강으로 흘러 들기 때문에 힌두교인을 비롯한 네팔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강으로 여겨진다.

[네팔=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바람을 타고 온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을 따라 올라갈수록 그 향은 더 짙어졌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함께 뿌옇게 피어 오른 연기가 무심하게 흩어졌다.

강 건너 맞은 편에서 본 한 망자는 언뜻 집안의 가장 어른으로 보였다. 금송화(금빛을 띤 꽃)를 덮고 있는 망자를 딸인 듯한 여인이 끌어 안은 채 얼굴을 비비며 흐느꼈다. 통곡은 없었다. 그저 흐르는 눈물만 훔쳐낼 뿐 큰 소리로 울지 않았다. 화장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영생을 위한 하나의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바그마티(Baghmati) 강의 화장터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듯 보였다. 바그마티 강은 카트만두 시내 중심을 통과하며,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로 꼽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과 앞을 흐르고 있다. 화장터도 파슈파티나트 앞 강변에 마련돼 있다.

이 강은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을 흐르고, 인도 갠지스 강으로 흘러 들기 때문에 네팔 사람들에겐 성스러운 강으로 꼽힌다. 화장터가 발달한 이유도 화장을 한 뒤 남은 재를 뿌리면 갠지스 강에 닿기 때문이라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인도에서처럼 네팔의 힌두교도들은 바그마티 강에서 몸을 씻고, 생을 마감한 뒤 화장되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고 있다.

네팔의 장례는 비교적 간소하다. 힌두교 신도가 전체 국민의 80%인 네팔에서는 망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게 보편적이다. 시신은 대나무로 만든 들것에 올려져 장작더미 위에 놓인 뒤 볏짚으로 덮여 화장된다.

장작더미와 볏짚에 불을 붙여 망자의 시신을 화장하고 있다. 힌두교인들은 화장을 해야 다시 윤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망하고 화장까지 모든 장례절차는 보통 하루만에 끝난다. 길어봐야 이틀이다. 사망한 뒤 곧장 화장을 하는 게 망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라고 한다.

농사가 생업인 네팔에서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쉼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자칫 시신이 부패할 수 있다는 점도 장례가 짧은 이유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망자가 숨을 거두면 친인척이 모여 애도한 뒤 곧장 화장터로 시신을 옮긴다.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은 아들만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장남이, 어머니는 막내가 한다. 망자의 입쪽부터 불을 붙인다. 나쁜 일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보통 자식들은 부모가 죽으면 1년간 흰색 옷을 입는다. 머리카락도 뒤통수에 몇 가닥만 남긴 채 모두 잘라버린다.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자녀들은 어머니 상중에는 1년간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애도를 위해 모든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으며, 마늘과 양파, 생 토마토도 먹지 않는다. 13일 동안에는 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힌두교인들은 화장을 해야 다시 윤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육신은 물과 불, 공기, 흙 등 4원소로 이루워져 있고, 화장을 통해 이 원소들이 해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반면 네팔의 북부 히말라야 산악민족의 장례는 사뭇 다르다. 산악민족은 우리처럼 주로 3일 장을 치른다. 시신을 집안에 모시고 애도한다. 장례가 끝나면 시신은 땅속에 뭍거나, 시신 위에 돌을 쌓아 돌무덤을 만들기도 한다.

시신을 독수리와 까마귀 등 날짐승이 먹게 두는 조장(鳥葬)을 하기도 한다. 새들이 시체의 살점을 모두 먹고 난 뒤 남은 유골을 수습하는 방식이다.

기온이 낮고,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시신은 쉽게 썩지 않는다. 시신을 그대로 놔둘 경우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 역시 컸을 것이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장엄하고 위대한 히말라야가 만들어낸,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지혜이자 보편적인 문화가 아닐까.

/pboxer@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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