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사 방식과 ‘조국 대전’
2019년 09월 18일(수) 04:50

[최영태 전남대 교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하여 첫 번째 개각을 했을 때 누가 통일부 장관이 될 것인지에 큰 관심이 모아졌다. 김 대통령과 정치를 같이 했거나 그에게 남북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 온 몇 사람이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그런데 정작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은 뜻밖에도 강인덕 극동문제연구소장이었다. 강인덕은 중앙정보부에 오랫동안 근무한 대북 전문가로서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놀라움과 함께 개혁 진영에서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럼 김대중 대통령은 왜 강인덕을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했을까? 그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김 대통령 자신의 진보적 통일관에 대한 보수층의 우려와 거부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통일 정책을 원만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국론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보수층의 우려를 완화하기 위해 보수적인 강인덕을 통일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런 인사 스타일은 IMF 위기 극복의 일차적 책임을 떠맡은 재경부 장관과 금융감독위원장에 자민련에서 추천한 이규성과 이헌재를 임명할 때도 나타났다.

위 사례들은 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진영 논리를 배격하고 철저히 능력 중심과 통합 정신, 그리고 인사 시점의 국민 정서를 중시했음을 말해 준다. 물론 김 대통령의 이런 인사 스타일은 누구를 해당 장관으로 앉혀도 자신이 방향을 설정하고 또 이끌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위 두 가지 사례와 전혀 다른 인사도 있었다.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에 대한 대처 방식이 그랬다. 8·15 평양 축전에 참여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를 방문하면서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문구를 썼다. 야당은 이를 빌미로 방북 허가를 내준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고 국회에 해임 건의안을 제출했다.

임동원은 명실상부하게 햇볕 정책의 전도사였다. 그런 그를 야당이 해임하라고 요구했고 그 해임의 사유도 단지 방북 인사 한 사람의 돌출 행위에 대한 감독 소홀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임동원 한 개인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김 대통령의 남북 화해 협력 정책 전체를 문제 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야당의 해임 건의안에 공동 정부를 구성하고 있던 자민련이 가세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임동원이 장관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해임 건의안에 찬성을 하겠다고 했다. 자민련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DJP 공동 정부가 무너지고, 공동 정부가 무너지면 소수 정부인 김대중 정부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은 임동원에 대한 해임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정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남북 화해 협력 정책을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사건으로 3년 8개월 동안 유지되었던 DJP 공동 정부가 무너졌다. 훗날 김종필은 “평소 신중한 자세를 가진 김대중 대통령이 그때 무슨 이유로 공동 정부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임동원을 고집스럽게 보호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종필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평소 실용주의적이지만 민주주의와 남북 화해 협력 정책 등 중요한 역사적 과제 앞에서는 어떤 타협도 거부한 김대중의 삶의 행적이었다.

‘조국 대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 개혁 진영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검찰 개혁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역사적 과제로 보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조국 법무부 장관을 통해 이를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언행 불일치를 보인 조국으로 인해 민주 개혁 진영이 중시한 공정 사회의 가치가 훼손되고, 이는 내년 총선을 비롯하여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행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경우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심판자는 검찰일까, 아니면 내년 총선을 기다리는 유권자의 몫이 될까? 개인적 의견과는 별개로 일본과의 경제 전쟁 등 큰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이런 문제로 국민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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