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바닥’
2019년 09월 09일(월) 04:50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갈등에서 생겨나는 강력한 에너지가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당·정·청이 대입 제도 개선 방안 논의에 착수했다. 얼마 전 끝난 법무부 장관 후보 청문회를 계기로, 현재 시행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공정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교육 현장에선 학종이 부유층과 권력층 자녀의 사회적 추락을 방지하는 ‘유리 바닥’(glass floor)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처음 등장한 용어 ‘유리 바닥’은 상류층 인사들이 자신과 자녀의 경제·사회적 신분의 하락을 막기 위해 만든 ‘신분 추락 방지 장치’를 말한다. 사회적 약자의 신분 상승을 막는 무형의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과는 반대 개념이다.

부와 권력을 갖춘 상류층 인사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 자신과 가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유리 바닥을 만든다. 최근의 대입 제도 개선 논의 역시 ‘학종이 일부 부유층과 권력층 자녀의 진학에 유리한 구조로 짜여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유리 바닥이 결국엔 사회 전체의 갈등과 대결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영국 출신의 미국 사상가 리처드 리브스는 최근 발간한 책 ‘20 VS 80의 사회’에서 “중상류층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깔아 주는 이 유리 바닥이 세대를 거쳐 계급 간의 분리를 영속시키고 불평등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이 자본주의 국가에서 반전이 쉽지 않을 만큼 일반화했다고 분석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중상류층이) 나의 지위는 학력과 두뇌·노력 등 나의 능력 덕분이어서 마땅히 나의 것’이라는 자기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유리 바닥을 둘러싼 불만이 폭죽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번뇌가 깊어야 해탈도 크다’는 불가(佛家)의 이야기처럼, 뜨겁고 격렬한 논쟁을 거쳐 공정하고 투명한 대입 제도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졌으면 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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