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스윙’
2019년 09월 02일(월) 04:50 가가
작년에 성공적인 초연으로 평가받은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안성수 안무·연출)이 지난 8월 27일 서울 재공연에 앞선 전국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렸다.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종종 소수 취향의 전위적 무대가 예측되지만 ‘스윙’은 그러한 예상을 뒤엎었다. 스웨덴의 6인조 재즈밴드 ‘젠틀맨 앤 갱스터즈’가 ‘인 더 무드’ ‘싱싱싱’ 등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스윙재즈 곡목들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동안, 각각 남녀 두 명씩 쌍을 이룬 한국의 무용수들은 흥겨운 스윙 리듬에 맞춰 무대 위를 댄스홀처럼 누볐다.
그들의 춤 동작은 린디합, 찰스턴 등의 정통 스윙댄스보다는 전반적으로 발레 동작에 기초해 있었고 간혹 케이팝 아이돌 댄스나 비보이 댄스, 한국 고전무용의 우아한 무브먼트까지 느껴지는 정교한 안무가 뒷받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예술무대의 현대무용과 댄스홀의 스윙댄스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태도가 엿보였다. 현대무용에서 ‘파격’의 무기가 역설적이게도 ‘대중성’인 셈이다. 이것은 새로운 종류의 아방가르드일까, 아니면 상업적 절충일 뿐일까?
‘스윙’이라는 용어에는 이중적 함의가 들어 있다. ‘스윙’은 한편으로 재즈 음악 일반에 필수불가결한 양식적·리듬적 요소를 가리킨다. 이때 말하는 ‘스윙’(감)이 없으면 재즈 뮤지션으로서 결격이다. 다른 한편, ‘스윙’은 재즈의 역사적 전개상 특수한 한 가지 장르나 양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스윙’은 ‘스윙재즈’나 ‘빅밴드 스윙’과 같이 1930년대에 유행한 재즈 양식을 일컫는데, 이 시기에 재즈는 가장 화려한 국제적 양식으로 발돋움한 동시에 가장 상업적이고 기능적인 음악으로 폄하되었다.
후자의 ‘스윙재즈’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댄스홀과 같은 유흥업소에서 반주음악으로 쓰였다는 점 때문이며, 나아가 그러한 기능성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재즈의 미덕으로 간주되는 즉흥연주를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20세기 이래 재즈에 대한 악담은 대부분 ‘스윙재즈’와 관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비판이론의 거장 아도르노의 악명 높은 ‘재즈 비판’도 특정하자면 ‘스윙재즈’에 대한 것이었다.
‘스윙’이라는 용어가 이중적이듯 이날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도 양면성을 보여 주었다. 삶의 유희성을 느끼게 하는 감각적 리듬을 만끽하게 해 주는 한편, 시종일관 규칙적인 리듬에 음악과 동작이 맞추어져 있어서 신체의 주관적 자유로움이나 연출상의 서사성과 표현성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공연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 바, 빼어난 연주력으로 북유럽 재즈의 수준을 과시한 ‘젠틀맨 앤 갱스터즈’의 라이브 연주 역시 대중적 스윙재즈 레퍼토리를 통한 춤 반주라는 기능성을 위해 그들만의 자율적 음악 세계를 상당 부분 양보해야 했다.
요컨대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은 지역 순회공연 일정을 소화해 내기 위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그리고 대중적이고 규격화된 하나의 융합적 공연 포맷을 보여 주었다. 사회적·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볼 때, 1930년대의 ‘스윙재즈’는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 간전기(間戰期)에 전 지구적으로 전파된 대중적 쾌락주의, 그리고 대공황과 ‘뉴딜정책’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관료체제화의 산물로 분석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에서 그와 유사한 맥락의 사회적 요구가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스윙재즈는 넓은 의미의 ‘스윙’을 도출했다. 스윙재즈 이후 즉흥연주가 강화된 감상용 재즈로서의 비밥과 ‘모던재즈’는 스윙재즈에 대한 의식적 거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무의식적 내면화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스윙재즈는 동시대 유럽의 ‘집시재즈’나 남아메리카의 ‘라틴재즈’에서와 같은 로컬 다양성을 유도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경계에서 그러한 스윙의 역사를 편견 없이 ‘클래식 전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1세기에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미완으로 그친 ‘코리언 스윙’, 나아가 ‘광주 스윙’이 명명될 수 있을까?
‘스윙’이라는 용어가 이중적이듯 이날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연도 양면성을 보여 주었다. 삶의 유희성을 느끼게 하는 감각적 리듬을 만끽하게 해 주는 한편, 시종일관 규칙적인 리듬에 음악과 동작이 맞추어져 있어서 신체의 주관적 자유로움이나 연출상의 서사성과 표현성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공연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 바, 빼어난 연주력으로 북유럽 재즈의 수준을 과시한 ‘젠틀맨 앤 갱스터즈’의 라이브 연주 역시 대중적 스윙재즈 레퍼토리를 통한 춤 반주라는 기능성을 위해 그들만의 자율적 음악 세계를 상당 부분 양보해야 했다.
요컨대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은 지역 순회공연 일정을 소화해 내기 위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그리고 대중적이고 규격화된 하나의 융합적 공연 포맷을 보여 주었다. 사회적·정치경제학적 차원에서 볼 때, 1930년대의 ‘스윙재즈’는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 간전기(間戰期)에 전 지구적으로 전파된 대중적 쾌락주의, 그리고 대공황과 ‘뉴딜정책’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관료체제화의 산물로 분석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에서 그와 유사한 맥락의 사회적 요구가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스윙재즈는 넓은 의미의 ‘스윙’을 도출했다. 스윙재즈 이후 즉흥연주가 강화된 감상용 재즈로서의 비밥과 ‘모던재즈’는 스윙재즈에 대한 의식적 거부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무의식적 내면화의 산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스윙재즈는 동시대 유럽의 ‘집시재즈’나 남아메리카의 ‘라틴재즈’에서와 같은 로컬 다양성을 유도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스윙’ 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경계에서 그러한 스윙의 역사를 편견 없이 ‘클래식 전통’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21세기에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미완으로 그친 ‘코리언 스윙’, 나아가 ‘광주 스윙’이 명명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