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두운 역사의 흔적, 예술로 승화시키다
2019년 09월 02일(월) 04:50 가가
독일 베를린 (상)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바우하우스 설립 100년 기념 연중 문화행사
1.3㎞ 자유·평화 벽화 ‘이스트 갤러리’…‘형제의 키스’ 포토존 인기
시내 중앙 2711개 기둥 ‘홀로코스트’ 학살당한 유대인 위한 추모공간
獨 통일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베르나우어 거리’…교육의 장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바우하우스 설립 100년 기념 연중 문화행사
1.3㎞ 자유·평화 벽화 ‘이스트 갤러리’…‘형제의 키스’ 포토존 인기
시내 중앙 2711개 기둥 ‘홀로코스트’ 학살당한 유대인 위한 추모공간
獨 통일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베르나우어 거리’…교육의 장으로
근래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놀라지 마시라. 다름 아닌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밀려 드는 유럽에서 지난해 베를린은 런던, 파리에 이어 세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다녀갔다. 베를린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베를린에 머문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일수는 약 3300만 박(泊)으로 이는 지난 1990년에 비해 무려 4배나 증가한 수치다. 30여 년 전만 해도 분단의 아픔이 남아 있는 잿빛 도시였지만 불편한 역사의 흔적들을 ‘다크투어리즘’으로 엮어내면서 유럽의 관광대국으로 떠올랐다.
지난 7월초 오전 10시쯤, 베를린의 상징인 이스트갤러리는 평일인데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높이 3.6m의 장벽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쁜 이들은 지난 1989년 11월 9일 붕괴된 ‘그 날’을 기억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스트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과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서베를린을 포위했던 총길이 160km의 장벽중 약 1.3km에 이르는 구간을 복원시켜 전 세계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자유,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긴 야외갤러리’는 별칭도 갖고 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장벽에 펼쳐진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는 모습은 베를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대형벽화 ‘형제의 키스’(드미트리 브루벨 作)다. 구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와 동독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입맞춤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으로 이스트갤러리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장벽 주변의 상가에선 무너진 장벽의 콘크리트 조각이 기념품으로 판매된다. 냉전 당시 동서 베를린을 갈랐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30년이 흐른 지금 도시의 과거, 독일의 역사를 반추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사실 오는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역사속으로 사라진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일까. 취재차 3일간 둘러본 베를린시는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이벤트가 추모공원과 기념관, 박물관 등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실제로 독일관광청과 베를린 관광청, 베를린 문화위크재단은 올해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과 베를린 장벽 3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이벤트를 연중 진행하고 있다.
이스트갤러리 투어를 마치고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공원이다. 정식명칭은 ‘학살된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위한 기념공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독일의 행정·정치·외교 중심가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은 독일 연방의회가 나치정권 당시 학살 당한 유대인 희생자 600만 명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지난 1999년 의회 의결을 거친 독일정부는 6년이 지난 2005년 세계적인 건축가인 미국의 피터 아이젠만에게 기념공간설계를 맡겼다. 피터 아이젠만은 광주 동구 충장로파출소 앞에 설치된 폴리 ‘99칸’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유대계 출신인 피터 아이젠만은 축구장 세 배 크기인 거대한 광장에 세울 ‘작품’을 고민한 끝에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묘석을 상징하는 2711개의 구조물을 세웠다.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 가로(95㎠), 세로(238㎠)의 널찍한 수 천개의 돌기둥 ‘무덤’을 짓는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당시 아이젠만의 파격적인 제안에 일각에선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독일 정부는 기꺼이 받아 들였다.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에 들어서게 된 것도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시민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많은 구조물들이 늘어선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시선이 머문다. 무릎 높이에서 시작한 구조물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처럼 키를 훌쩍 넘긴다. 이 때문에 걸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구조물이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가 4m를 넘어 움푹 꺼지는 느낌을 준다. 미로 처럼 얽혀 있는 기둥 사이 사이를 오가다 보면 왠지 모를 먹먹함과 아득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특히 중심으로 갈수록 하늘은 좁아지고 미로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수용소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은 유대인들의 절망감을 체감하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추모비를 ‘대하는’ 방문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일반적인 기념시설과 달리 이곳에선 비석 위에 앉아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거나 구조물 사이를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특히 초등학생에서 부터 대학생까지 인솔자와 함께 답사를 하는 학생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홀로코스트 공원을 빠져 나오면 베를린 관광 1번지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반갑게 맞는다. 독일의 통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으로 정문 앞에는 주 베를린 미국 대사관 등 각국의 대사관들이 늘어서 있다.
베를린 다크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베를린 장벽(60m)의 원형이 남아 있는 베르나우어 거리다. 이스트갤러리가 분단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유적지라면 베르나우어는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의 첫삽을 뜬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장벽을 넘는 것이 발각되면 바로 총살이었듯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통곡의 현장이기도 하다. 장벽 왼편의 베를린 장벽 추모공원에서는 서독으로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을 기리는 추모관과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다.
공원에서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베를린 장벽의 실물과 이에 얽힌 역사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로 보여주는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망대에 오르자 베를린 장벽과 감시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시간여행을 한 것 처럼 어두운 그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베를린 관광청 홍보 담당 크리스티안 탄즐러(Christian Tanzler)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30년이 지난 동안 전쟁, 분단, 통일은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접할 수 없는 베를린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면서 “시민들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스트갤러리와 홀로코스트 추모비 등 역사적인 현장은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훌륭한 교육의 장,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다크 투어리즘’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자산이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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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의 추모관에는 옛 동독을 탈출하다가 총살된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
지난 7월초 오전 10시쯤, 베를린의 상징인 이스트갤러리는 평일인데도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높이 3.6m의 장벽에 그려진 다양한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쁜 이들은 지난 1989년 11월 9일 붕괴된 ‘그 날’을 기억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스트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과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현장이다. 서베를린을 포위했던 총길이 160km의 장벽중 약 1.3km에 이르는 구간을 복원시켜 전 세계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자유,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긴 야외갤러리’는 별칭도 갖고 있다. 지하철 역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장벽에 펼쳐진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는 모습은 베를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이스트갤러리 투어를 마치고 두번째로 방문한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비공원이다. 정식명칭은 ‘학살된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위한 기념공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 독일의 행정·정치·외교 중심가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은 독일 연방의회가 나치정권 당시 학살 당한 유대인 희생자 600만 명을 기리기 위해 조성했다.
지난 1999년 의회 의결을 거친 독일정부는 6년이 지난 2005년 세계적인 건축가인 미국의 피터 아이젠만에게 기념공간설계를 맡겼다. 피터 아이젠만은 광주 동구 충장로파출소 앞에 설치된 폴리 ‘99칸’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유대계 출신인 피터 아이젠만은 축구장 세 배 크기인 거대한 광장에 세울 ‘작품’을 고민한 끝에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묘석을 상징하는 2711개의 구조물을 세웠다.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 가로(95㎠), 세로(238㎠)의 널찍한 수 천개의 돌기둥 ‘무덤’을 짓는 획기적인 구상이었다.
당시 아이젠만의 파격적인 제안에 일각에선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독일 정부는 기꺼이 받아 들였다.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다. 베를린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 인근에 들어서게 된 것도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시민들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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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추모비 공원 전경. 축구장 세 배 크기의 광장에 세워진 2711개의 묘비가 마치 설치예술작품을 연상케 한다. |
홀로코스트 추모비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수많은 구조물들이 늘어선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시선이 머문다. 무릎 높이에서 시작한 구조물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처럼 키를 훌쩍 넘긴다. 이 때문에 걸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구조물이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가 4m를 넘어 움푹 꺼지는 느낌을 준다. 미로 처럼 얽혀 있는 기둥 사이 사이를 오가다 보면 왠지 모를 먹먹함과 아득함이 동시에 밀려든다. 특히 중심으로 갈수록 하늘은 좁아지고 미로에 갇힌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수용소에 갇혀 고통스럽게 죽은 유대인들의 절망감을 체감하게 하려는 건축가의 의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추모비를 ‘대하는’ 방문객들의 자유로운 모습이다. 엄숙하고 경건한 일반적인 기념시설과 달리 이곳에선 비석 위에 앉아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거나 구조물 사이를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특히 초등학생에서 부터 대학생까지 인솔자와 함께 답사를 하는 학생방문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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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의 랜드마크인 브란덴부르크 문 전경. |
홀로코스트 공원을 빠져 나오면 베를린 관광 1번지로 불리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반갑게 맞는다. 독일의 통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현장으로 정문 앞에는 주 베를린 미국 대사관 등 각국의 대사관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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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기념공원의 추모관에는 옛 동독을 탈출하다가 총살된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
베를린 다크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베를린 장벽(60m)의 원형이 남아 있는 베르나우어 거리다. 이스트갤러리가 분단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유적지라면 베르나우어는 1961년 동독이 베를린 장벽의 첫삽을 뜬 곳으로 유명하다. 당시 장벽을 넘는 것이 발각되면 바로 총살이었듯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통곡의 현장이기도 하다. 장벽 왼편의 베를린 장벽 추모공원에서는 서독으로 탈출하다 희생당한 동독인을 기리는 추모관과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다.
공원에서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베를린 장벽의 실물과 이에 얽힌 역사를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로 보여주는 베를린 장벽 기념관이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전망대에 오르자 베를린 장벽과 감시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시간여행을 한 것 처럼 어두운 그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베를린 관광청 홍보 담당 크리스티안 탄즐러(Christian Tanzler)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지 30년이 지난 동안 전쟁, 분단, 통일은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접할 수 없는 베를린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면서 “시민들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스트갤러리와 홀로코스트 추모비 등 역사적인 현장은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훌륭한 교육의 장,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다크 투어리즘’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자산이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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