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
2019년 08월 29일(목) 04:50
한 건축가의 궤적을 담담히 따라가던 영화 속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등장한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화면에서 만나게 되는 건 독특한 느낌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위치한 곳은 순천 효천고등학교. 이곳 학생들이 사용할 도서관 설계를 맡게 됐을 때 건축가는 아주 기뻐했다고 하는데, 효천고에서는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그에게 설계를 의뢰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 한국명: 유동룡)이다.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선 일본으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재산을 못 지켜도 족보는 지켜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평생 한국 국적을 놓지 않았다. 첫 한국 방문 때 이용한 공항 이름 ‘이타미’와 절친했던 작곡가 길옥윤의 ‘윤’(潤·일본식 발음 준)에서 따온 예명을 사용하는 그는, 역시 건축가이며 이번 다큐 여정을 함께하는 딸의 이름도 ‘이화여대’를 생각하며 ‘유이화’라 지었다고 한다.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며 ‘아’하고 탄성을 터트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대학로 서울대 도서관이 철거될 때 학생들을 기억하는 벽돌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일본으로 가져가 사용한 일이라든지, 원래 있는 벚나무 두 그루를 자르지 않기 위해 설계에 고심한 도쿄 ‘먹의 공간’, 식당 의자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재일교포 업주의 작은 불고깃집 ‘주주’, 파리 기메박물관에서 동양인 최초로 개인전(2003)을 열고 작품을 한국관에 기증한 일 등등. 그의 건축 철학과 삶의 태도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은 감동적이다. 마침 영화를 보기 얼마 전 그가 설계한 제주도 포도호텔과 방주교회를 둘러봐서 그가 더 가깝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땅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이 융합된 집을 짓는 것이 꿈이고 철학’이라 했던 그는, 흙·돌·나무를 소재로 자연을 품고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공간들을 만들어 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주도 수(水)·풍(風)·석(石) 박물관은 그 정점에 있다.

마침 9년간 다큐 작업을 해 온 정다운 감독과 만나는 행사가 오는 9월6일 광주극장에서 열린다. 영화와 이타미 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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