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야율아보기 거란 부족 통일해 세운 요나라 초대황제
2019년 07월 30일(화) 04:50

<초당대총장>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872~926)는 요나라의 초대 황제로 시호는 대성대명천황제다. 여러 거란 부족을 통일해 요 왕조를 세웠다.

872년 거란 질랄부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질랄부는 거란의 여덟 부족 가운데 가장 강성한 부족이었다. 조부는 부족내 권력 투쟁 와중에 피살되었다. 부친과 삼촌은 타지로 달아나 할머니 보호하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체격이 크고 말과 활쏘기에 능했다. 901년 질랄부의 족장에 선출되었다. 907년 칸에 올라 거란 8개 연맹의 지도자가 되었다. 북쪽으로는 내몽고 동북부의 실위, 흑룡강 하류의 여진을 침범하고 서쪽으로는 돌궐의 옛 땅을 빼앗고 해(奚)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907년 30만 병사를 이끌고 산서성 운주를 공격하자 진왕 이극용이 그와 화친을 맺어 서로 형제가 되기를 약속하였다. 진왕은 금과 비단 수만을 선물하였고 아보기는 답례로 말 3천 필과 가축 1만 마리를 주었다.

거란의 전통에 따르면 3년마다 연맹의 수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보기는 5년이 지나도록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이에 형제인 칼갈, 질랄, 인저석, 안단 4인이 모반을 꾀하였다. 안단의 아내로부터 사전에 계획을 듣고 그들을 체포했으나 형제의 정을 생각해 사면하였다. 915년에는 일곱 부족장들이 군사를 동원해 아보기가 칸의 지위에서 내려오기를 강요하였다. 아보기는 싸울 경우 질랄부의 세력이 약화되고 거란족 전체가 와해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해 스스로 칸에서 내려왔다. 휘하의 한인들을 데리고 허베이성 동북부 난하 상류의 하북 고원에 성을 건설해 정착하였다. 부인 술률후는 매우 영민한 여성이었는데 남편과 상의해 일곱 부족의 장을 초대해 대접하였다. 몰래 숨겨둔 군사를 동원해 술에 취한 족장들을 죽이고 권력을 되찾았다.

916년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신책으로 바꾸었다. 스스로 대성대명천황제가 되고 부인 술률후는 웅천대명지황후가 되었다. 장남 야율배를 태자로 삼았다. 술률후는 용맹스럽고 결단력이 있고 임기응변에 뛰어나 아보기는 그녀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진왕은 거란과 맹약을 맺어 아보기를 숙부로 술률후를 숙모로 섬겼다. 연나라의 황제 유수광이 참군 한연휘를 파견해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한연휘가 절을 하지 않자 아보기는 화가 나 들에서 말을 먹이도록 하였다. 술률후는 말하기를 “한연휘는 절개를 지키고 굴복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소와 말을 기르게 하여 욕보이십니까? 의당 예의를 갖추어 그를 기용해야 합니다” 한연휘는 성곽을 쌓아 한인들을 거처하게 하고 황무지를 개간토록 하였다. 이에 한인들이 도망가지 않고 각자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918년 내몽고 파림좌기에 수도 상경을 조성하였다. 재상으로 기용돼 여러번 승진해 직위가 중서령에 이르렀다. 거란에서는 그를 숭문상공(崇文相公)으로 존숭하였다.

922년에는 고려에 사신을 보냈으며 주변 여러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한자를 본따 거란 문자를 만들었다. 거란 문자는 거란 대자와 거란 소자로 구분되는데 거란 대자는 예서의 반쪽에 획을 더하거나 빼서 만들었다. 거란 소자는 표음 문자로 300여개의 한자로 음을 표시하는 자모를 만들었다. 거란의 이민족에 대한 정책은 “각 민족의 습속에 따라 다스린다”는 원칙이었다. 거란인은 거란 민족 고유의 제도를 적용하였고 한인을 관리하는데는 당나라의 법률을 사용하였다. 이로써 종족간 갈증을 최소화하고 한족의 저항을 누그러뜨렸다. 소위 ‘일국양제’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현재의 베이징에 해당하는 유주를 장악하기 위해 30만을 동원해 하북 탁록에서 후진의 군대를 패배시켰지만 유주 점령에는 실패했다. 921년 재차 남하해 후진과 격돌했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이후 북방의 유목 민족과 동쪽의 발해국을 공략해 배후의 위험을 제거한 후 중원을 도모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서쪽으로는 토욕혼, 탕구트 등을 정복했다. 926년 발해국을 친정해 항복을 받아냈다. 발해국을 동단국으로 바꾸어 태자 야율배를 왕으로 임명하였다. 926년 7월 귀국 도중 길림의 부여성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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