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복제 시대의 공연예술
2019년 07월 08일(월) 04:50 가가
전 세계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회용으로 가장 선호하는 악기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다. 이 피아노의 제조 회사에서 최근 디지털 장치가 장착된 자동피아노를 출시했는데, 아이패드 앱과 연동하여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의 건반 터치를 자동 연주로 거의 완벽하게 재생해 낸다고 한다. 이 피아노를 구입하면(최소 1억 원이 넘는다), 예컨대 유자왕이 연주하는 초절기교의 ‘왕벌의 비행’을 콘서트 무대에서 그녀가 만들어 내는 음색과 뉘앙스 거의 그대로 내 거실로 옮겨 올 수 있는 것이다. 제조사가 광고하는 대로 그것은 내 거실에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를 초대하여 하우스콘서트를 여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물론 ‘자동피아노’(player piano)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며, 이미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에서 제작되어 널리 보급된 바 있다. 구멍 뚫린 두루마리 장치를 쓰기 때문에 ‘피아노 롤’이라고도 불리는 이 자동피아노는 1920년대 중반 음반과 축음기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이크로폰을 이용하는 전기녹음 기술 도입과 함께 음반의 재생 음질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미 1세기 전에 구닥다리 발명품으로 전락한 자동피아노가 21세기 첨단 디지털 문명 시대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1세기 전에 독일의 비평가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대량 복제기술과 관련한 논쟁을 벌였다. 주로 영화와 관련하여 논변을 펼친 벤야민의 입장을 아주 단순화하자면 이렇다. 예컨대 영화 ‘알라딘’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상영되든, 서울에서 혹은 광주에서 상영되든 다를 게 없다는 것. 대량 복제기술이 예술작품과 관련하여 더 이상 ‘진짜’나 ‘원본’을 따질 필요가 없게 함으로써 예술 향수의 대중화와 민주화를 이끌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음악에 초점을 맞춘 아도르노의 입장은 이렇다. 대량 복제기술이란 21세기식 신조어로 말하자면 ‘복붙’(복사하여 붙이기)을 부추긴다는 것. ‘복붙 메시지’의 무성의와 진정성 없음이야말로 ‘대중음악’과 대량 복제기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은 적잖이 상반되지만 양자 사이에 일치되는 견해는 기술 복제가 예술작품의 고유성(진정성)과 원본성을 해체한다는 사실(아우라의 붕괴)이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융합기술은 복제기술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 가고 있다. 그것을 ‘아우라의 복제’(재생)라고 하면 어떨까? 앞서 예로 든 자동피아노의 귀환은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의 고유한 음색, 그 ‘아우라’를 있는 그대로 재연하겠다는 발상, 피아노 구매자는 그 피아니스트와 네 손 연탄곡을 함께 연주할 수도 있으며, 업그레이드 모델에서는 직접 녹음과 편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복제기술은 이제 연주를 기록한 ‘물질’(음반)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둘러싼 실제적 ‘체험’을 제공하려 한다. 물론 이 변화의 정치경제학적 계기는 음반 산업의 쇠락이다.
공연 영상물의 제작과 상영의 발상도 달라지고 있는데, 광주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싹온스크린’(SAC on Screen) 상영회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싹온스크린’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작한 공연영상물이 녹화된 형태로 혹은 실황중계의 형태로 지역의 공연장에서 상영되는 이벤트를 뜻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더 메트 라이브 인 HD’,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2014년부터 매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삼고 있는 영국 왕립 극단의 ‘NT 라이브’ 등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전례가 있다.
이러한 21세기적 이벤트는 종종 지역 간 문화 격차의 해소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로 다른 지역 공연장에서의 집단적 공연 체험의 일회성과 고유성을 새롭게 만들어 내라는 시대적 요청을 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중심-지역’의 관계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을 아울러 가진다. ‘아우라 복제 시대’를 디지털 문명과 문화기술의 넓은 맥락에서 해석하면서, 중심문화 혹은 고급문화 수용의 차원을 넘어서 지역문화 생산의 새로운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공연예술의 ‘아우라’는 근거리의 지역적 생활공간에서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융합기술은 복제기술의 새로운 단계를 열어 가고 있다. 그것을 ‘아우라의 복제’(재생)라고 하면 어떨까? 앞서 예로 든 자동피아노의 귀환은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의 고유한 음색, 그 ‘아우라’를 있는 그대로 재연하겠다는 발상, 피아노 구매자는 그 피아니스트와 네 손 연탄곡을 함께 연주할 수도 있으며, 업그레이드 모델에서는 직접 녹음과 편집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복제기술은 이제 연주를 기록한 ‘물질’(음반)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를 둘러싼 실제적 ‘체험’을 제공하려 한다. 물론 이 변화의 정치경제학적 계기는 음반 산업의 쇠락이다.
공연 영상물의 제작과 상영의 발상도 달라지고 있는데, 광주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싹온스크린’(SAC on Screen) 상영회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싹온스크린’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작한 공연영상물이 녹화된 형태로 혹은 실황중계의 형태로 지역의 공연장에서 상영되는 이벤트를 뜻한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더 메트 라이브 인 HD’, 서울의 국립극장에서 2014년부터 매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삼고 있는 영국 왕립 극단의 ‘NT 라이브’ 등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전례가 있다.
이러한 21세기적 이벤트는 종종 지역 간 문화 격차의 해소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로 다른 지역 공연장에서의 집단적 공연 체험의 일회성과 고유성을 새롭게 만들어 내라는 시대적 요청을 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중심-지역’의 관계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을 아울러 가진다. ‘아우라 복제 시대’를 디지털 문명과 문화기술의 넓은 맥락에서 해석하면서, 중심문화 혹은 고급문화 수용의 차원을 넘어서 지역문화 생산의 새로운 맥락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공연예술의 ‘아우라’는 근거리의 지역적 생활공간에서 창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