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대흥사 <12> 초의선사
차·시·그림 넘나든 시대의 풍류인
15세에 출가… 해남 대흥사 13대 종사, 차 문화 부흥 이끌어
다도 알리기 위해 지은 ‘동다송’ 茶 예찬 집약된 시문
가장 친한 벗 추사 김정희, 제주 유배때 초의가 보낸 차 즐겨
‘차를 끓이는 다로의 향이 향기롭다-일로향실’ 편액으로 보답
2019년 07월 03일(수) 04:50
















해남의 달마고도(達摩古道)는 미황사에서 큰바람재, 노시랑골, 몰고리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호남의 금강산인 달마산과 해남 8경 중 하나인 도솔암, 서남해안 절경을 거느린다. 길이 산수를 끼고 있는 형국이다. 그뿐이랴. 동백나무 군락, 편백나무 숲이 우거져 아늑하면서도 풍성하다. ‘남도명품길’이라는 수사에 조금도 밑지지 않는다.

해남의 달마고도를 떠올리면 얼핏 중국의 차마고도(茶馬古道)가 오버랩된다. 중국의 위난성에서 티벳, 네탈, 인도 등을 잇는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교환하기 위해 오가던 무역로다. 실크로드보다 200년 앞서 존재했던 고대 무역로인데 좁은 협곡이 벼랑을 이룬다. ‘마방’(馬幇)이라 불리는 상인들이 이 길을 왕래했다. 천길 아득한 벼랑을 경계로 생과 사가 갈린다.

그러나, 해남의 달마고도는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달마산에 갈 일이다. 자아를 버리고, 탐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나를 버린다는 얘기다. 이 길을 걷다보면 내 안의 나를 만난다. 오랜 옛길에 서 있는 본래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달마산이란 이름은 경전(dharma·達摩)을 봉안한 산이란 뜻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어떤 이는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선(禪)을 전한 뒤 해동의 달마산에 머물렀다’ 해서 달마산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어떤 유래가 맞든, 이곳 산수와 맞춤한 이름이다. 일물일어(一物一語)란 이런 경우를 이름할 것이다. 이름따라 운명이 가름된다는 말은 산수도 예외는 아니다.

달마산은 여인 같은 풍광과 사내의 기상이 어린 곳이다. 아름답지만 호탕하다. 웅혼하지만 섬세하다. 이쪽에서 보면 수줍은 여인 같아 보여도 다른 편에서 보면 사내의 품이 느껴진다. 수려하면서 장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음양의 조화가 기기묘묘하게 드리워진 달마산은 가장 ‘해남다운’ 산이다. 해남이 바로 그런 고장이다. 바다를 향해 내뻗은 사내들의 강한 면모와 육지 안으로 다소곳이 품을 펼친 여인의 기품이 응결된 곳이다. 거칠면서 여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뼈를 지녔다.

달마고도를 넘어 그렇게 대흥사로 접어든다. 산문에 들어서면 극락이 지척이다. 며칠 새 내린 비로 초목은 우거지고 계곡은 불어 있다. 바쁘게 바쁘게만 떠돌다 들어서는 발길이 못내 무겁다. 멀찍이 구름이 뒤를 따라온다. ‘청산은 바쁘게 사는 흰 구름을 보고 비웃는다(靑山應笑白雲忙).’ 초의선사의 법어 같은 선시가 귓가에 밀려온다. 바람 불면 모두 흩어져 버릴 구름이 뭐가 그리 바빴을까. 구름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목이 말라 약수를 마신다. 시원하고 달다. 물바가지에 구름이 비쳐 어린다. 구름을 마신 것인지 물을 마신 것인지, 삐죽 웃음이 나온다. 입에 잔향이 남는다. 성보박물관 바로 옆에 초의선사 동상이 있다. 지팡이를 들고 가부좌를 튼 모습이 말 그대로 선사(禪師)의 형상이다.

“뭣 하러 왔는가?”, “무슨 일로 왔는가?”. 선사가 묻는 것 같다. 뜻밖의 물음에 말머리가 닫힌다. “……지나는 길에 차 한 잔 마시러 왔소이다.” “차를 마시듯 마음공부를 하게나.”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필요 이상의 것들을 버리게나.”

눈을 들어 선사를 바라본다. 푸르스름한 차림새가 눈에 들어온다. 일명 ‘초의’(草衣). ‘풀옷’이라는 뜻이리라. 스승인 완호스님이 지어준 법명이다. “재주가 있다 하여 가벼이 행치 말고 풀옷을 입은 이 같이 소박하라.” 그 뜻이 좋다. 사시사철 푸르고 향기가 나는 옷은 신분과 지위를 뛰어넘는다.

초의선사는 1786년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의순(意洵)이며 자는 중부(中孚), 호는 언급한 대로 초의(草衣)다. 그를 일컫는 일반적인 말은 대선사, 다성(茶聖)이다. 다도를 널리 알렸으며 해남 대흥사 13대 종사였다. 특히 다도를 알리기 위해 지은 동다송(東茶頌)은 차에 대한 예찬이 집약된 시문이다.

고문헌에는 초의선사가 법문에 든 내력이 한편의 일화로 전해온다. 그는 어린 시절 강가에서 놀다가 죽을 뻔 했다. 때마침 인근을 지나던 스님이 그를 구한다. 소년은 이 일로 생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평소 사유가 남달랐던 소년은 출가를 결심한다. 열다섯 되던 해 나주 다도에 있는 운흥사를 찾아간다. 벽봉 민성(敏聖)스님을 은사로 삼아 머리를 깎는다.

이후 불경을 공부하던 그는 19세 되던 해(1804), 영암의 월출산에 올라 깨달음을 얻는다. 기봉(奇峰) 위로 솟아오른 달을 본 후 가슴의 맺힘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 길로 청년 의순은 대흥사 제9대 강사인 완호스님을 찾아간다. 이때 구족계를 받고 초의라는 호도 받게 된다.

“일반인들은 초의를 선사(禪師)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초의는 당대 뛰어난 시인이자 화가이며 피리를 불었던 풍류인이었습니다. 화목(花木)을 즐겨 가꾸기도 했는데 그가 심었다는 영산홍은 봄이면 그윽한 향기를 발하지요.”

박충배 성보박물관장의 설명이다. 박 관장은 “초의는 산속에 살면서도 시와 문장에 능해 당대의 유명한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은 교류를 했다”며 “그 가운데 가장 친한 벗은 추사(秋史) 김정희였다”고 덧붙인다.

초의와 추사가 나눴던 서신들은 둘의 우정이 얼마나 도타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마시며 선문답 같은 시를 주고받았다.

“고요히 앉은 자리/ 차는 마셔 빈 잔인데/ 향기는 처음대로다// 妙用이 발휘하니/ 물은 흐르고 꽃은 피고”

제주도에 귀향살이를 하던 추사는 초의가 보낸 차를 마시곤 했다. 그는 답례로 ‘일로향실’(一爐香室)이라는 편액을 써서 보냈다. 일로향실은 ‘차를 끓이는 다로(茶爐)의 향이 향기롭다’는 의미다. 소치(小痴) 허련이 두 사람의 왕래를 도왔다. 유배지에서 추사는 초의와 함께 차를 마시던 순간을 떠올렸다. 차향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일로향실’ 글씨를 보며 두 사람의 우정을 생각한다. 찻물 같은 은은하고 맑은 향기가 배어나오는 것 같다. 우리에게도 그런 벗이 있던가. 차향 그윽한 지음(知音)의 벗이 그리운 시절이다. 돌아보니 청산 위에 구름 한 조각 머물러 있다. ‘청산은 바쁘게 사는 흰 구름을 보고 웃는구나.’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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