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186> 이사원

후당 2대 황제, 오대십국 대표적 명군
2019년 06월 18일(화) 04:50

<초당대총장>

이사원(李嗣源, 867~933)은 오대십국인 후당의 2대 황제로 후당을 건국한 이존욱의 양자다. 묘호는 명종으로 오대십국 시대 대표적 명군이다.

산서성 대북의 사타족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군무에 종사했다. 무용이 뛰어났고 훌륭한 인품과 리더십으로 군대의 신망이 높았다. 이름은 막길렬으로 이극용이 발탁해 가자(假子)로 삼아 이씨성을 하사받았다. 후당의 이존욱이 장종으로 즉위해 황음과 사치를 일삼았다. 사천 공략을 성공시킨 장군 곽숭도를 환관의 말에 속아 죽였다. 환관을 군대를 감독하는 감군(監軍)으로 임명해 반발을 초래했다.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장종은 이사원에게 업도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반란군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반군을 설득하려 하였지만 실패했다. 측근 석경당은 “무릇 일이란 과감하게 결정하면 성공하고 머뭇거리면 실패합니다”라며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 강의성 역시 “장종이 무도해 군사와 백성이 원망하고 노여워하고 있습니다. 공은 백성을 따르면 살고, 절의를 지키면 죽을 것입니다.”라며 설득했다. 결국 지도자가 될 것을 수락하고 낙양으로 진군했다. 그 과정에서 장종은 반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황제 즉위를 사양하자 신하들이 세 번 상소문을 올려 나라를 구해줄 것을 간청했다. 결국 장종의 관 앞에서 즉위하니 명종이다.

즉위시 이미 60세가 넘었으며 글을 읽지 못했다. 측근 안중회가 건의하기를 “전 왕조의 시강, 시독, 직숭정, 직추밀원의 관리를 선발해 그들과 더불어 일을 하소서.” 이에 단명전학사를 설치하고 한림학사 풍도와 조봉에게 일을 맡겼다.

취임하자 재상 공겸을 참수했다. 그는 장종의 사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백성을 쥐어짠 탐관오리였다. 구오대사에는 “엄한 법으로 백성을 못살게 굴고 무거운 세금으로 주상에게 바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장종은 그의 재정 능력을 높이 사 풍재섬국공신(豊財贍國功臣)이라는 칭호를 하사했다. 이어서 군대의 원성을 산 감군을 주살했다. 황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 군대에 무리한 짓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인력과 예산을 대폭 절감하였다. 궁녀 100명, 환관 30명, 음악인 100명, 매사냥꾼 20명, 주방 50명으로 대폭 인력을 줄였다. 매일 밤 향을 피우고 하늘에 축원하기를 “저는 오랑캐인으로 변란 때문에 사람들에게 추대되었습니다. 원컨대 하늘은 빨리 성인을 낳아 백성의 주인이 되게 하소서” 어느날 풍도에게 “금년에 풍년이 들었지만 백성들은 먹고 살만한가?”라고 하문했다. 풍도가 답하기를 “농가는 그 해에 흉년이 들면 유민이 되어 굶어 죽고, 그 해에 풍년이 들면 곡식 값이 떨어져 손해를 봅니다. 풍년이든 흉년이든 모두 근심이 되는 것이니, 오직 농가만이 그러합니다. 농민은 백성 중 가장 고생하므로 군주가 이를 알지 못하면 안됩니다.”

사타족 평민 출신으로 매우 솔직했다. 이에 따라 노회한 정치인의 중상모략에 넘어가곤 했다. 안중회의 모략으로 재상 임환을 죽였다. 나중에는 안중회를 의심해 그를 죽였다. 말년에 병에 걸리자 자주 장병들에게 은상을 내렸다. 전임자 장종이 군대에게 지불할 급료를 아끼다가 병란이 일어난 것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빈번한 하사로 군대를 교만하게 만들었다. 재위 8년인데 자주 풍년이 들었고 전쟁은 드물었다. 다른 왕조와 비교해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 평가된다.

명종이 위중해지자 후계 경쟁이 심화되었다. 장남인 이종경은 이미 죽었다. 차남 이종영이 부친을 병문안 갔다. 명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궁중에서 울음소리가 들리자 부친이 사망한 것으로 짐작했다. 황위 승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궁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명종은 살아있었고 그는 반역죄로 주살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3남인 이종후가 즉위하니 민제다. 그에게는 명종의 양자인 봉상절도사 이종가와 사위인 하동절도사 석경당이라는 범상치 않은 라이벌이 있었다. 결국 즉위한 다음해인 934년 이종가에게 정권을 잃고 목숨을 잃었다. 이종가는 구오대사에서 말제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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