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이존욱, 사타족 출신, 부친 이극용 도와 후당 건국
2019년 06월 11일(화) 04:50

<초당대총장>

이존욱(885~926)은 산서성 음현 출신으로 사타족이다. 부친 이극용을 도와 5대 시기 후당(後唐)을 건국했다.

사타족은 당 왕조에 귀순한 돌궐의 별부다. 원래 성은 주사로 조부 주사적심은 방훈의 난을 진압하는데 기여한 공적으로 이씨성을 하사받아 이국창이 되었다. 부친 이극용은 황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하동절도사로 임용되었다. 이극용과 주전충은 당말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이극용의 장남으로 부친이 죽자 908년 진왕의 직위를 계승했다. 전투에서 용맹했으며 말을 타며 활을 쏘는 기병대를 조직화하는데 성공했다. 남쪽의 후량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후량을 건국한 주전충은 황음무도한 생활로 912년 차남 주우규에게 살해되었다. 양자 주우문을 총애해 주우규를 내주자사로 좌천시킨데 따른 궁중 쿠데타였다. 이존욱의 맹공에 후량은 건국 16년만에 멸망했다. 이존욱은 하북의 군벌 유수광을 무너뜨렸다. 923년 하북의 위주에서 제위에 올라 국호를 후당으로 연호를 개원으로 정했다. 국호를 진 대신 당으로 정한 것은 이존욱이 당의 제도와 문화에 깊이 심취했기 때문이다.

장종(莊宗)으로 불리었는데 당의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다. 무엇보다도 당을 멸망으로 이끈 환관제를 부활하였다. 현종의 이원(梨園)을 모방해 왕궁의 연극도 부활했다. 스스로 이천하라는 예명으로 연극에 출연하는 기행도 연출했다. 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을 감독하기 위해 환관을 감군(監軍)으로 파견했다. 용맹한 사타족의 장군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부와 장종의 갈등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궁중의 사치로 인해 재정이 부족해 지휘관들에게 제대로 급료를 지불하지 못해 불만이 커졌다. 장종은 뛰어난 무인이었으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다. 국정운영에 대한 청사진이나 원대한 계책이 없었다.

그 와중에 사천 토벌에 성공했다. 장남 이계급을 토벌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만 실제 전투는 도초토사 곽숭도가 지휘했다. 곽숭도는 환관 세력과 갈등을 빚었다. 환관 향연사를 보내 실상을 파악하려 하였다. 곽숭도가 거만하게 그를 대하자 돌아와 “곽숭도가 권력을 오로지 해, 왕께서는 몸을 호랑이와 이리의 입에 맡기고 계십니다”고 고자질하였다. 장종은 환관의 말을 믿고 곽숭도 부자를 죽였다. 정치를 멀리하고 가무와 황음에 빠졌다. 각지에서 반란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923년 하남윤 장전의의 건의에 따라 낙양으로 천도했다. 광대들 중에 총애하는 자가 많았으며 스스로 얼굴에 붓과 먹을 바르고 광대들과 뜰에서 놀이를 하였다. 조재예가 업도에서 모반했다. 장종은 이사원을 보내 진압토록 했다. 이사원은 이미 60세가 넘었는데 장종의 신임을 받아 양자인 가자(假子)가 된 인물이다. 성을 공격하기로 한 전날 종마직군사 장파패가 난을 일으켰다. 이사원이 그들을 꾸짖으며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병사들은 “장사들은 주상을 10년동안 따르면서 백번 싸웠고 천하를 얻었습니다. 지금 주상은 은혜를 버리고 위엄만 부리고 있습니다. 공께서는 군사와 백성의 주군이 되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참모 석경당이 “무릇 일이란 과감하게 결정하면 성공하고 머뭇거리면 실패합니다”라며 결단을 촉구했다. 이사원이 결심하고 군사를 모으니 많은 세력이 호응했다. 장종은 이사원이 이미 대량을 점령하고 여러 군대가 이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가 성공하지 못하겠구나”라고 탄식했다. 926년 4월 종마직지휘사 곽종겸이 난을 일으키자 주변의 신하와 장군들이 모두 숨어버렸다. 얼마 후 장종은 반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사원이 그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여러 장수들에게 “주상이 평소 용맹해 군인의 마음을 얻었지만 여러 소인배들에게 가려지고 미혹되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낙양에 들어가 제위에 오르니 오대의 명군으로 평가되는 명종이다. 명종은 재상 공겸을 참수했다. 엄한 법으로 백성을 못살게 굴고 무거운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어 원성의 대상이 된 감군을 주살해 민심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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