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이극용, 돌궐족 출신, 당말 주전충과 패권 다툼
2019년 06월 04일(화) 04:50 가가
이극용(李克用, 856~908)은 당말 돌궐족 사타부 출신이다. 황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유력자가 되었다. 주전충과 패권을 겨루었다. 그의 아들 이존욱이 후당을 세우자 태조로 추존되었다.
사타는 돌궐의 별부로 당 초기 천산 일대에 흩어져 살았다. 태종때 돌궐족이 무너지자 당나라의 부속국이 되었는데 사타부는 그 중 하나다. 원래의 성은 주사(朱邪)로, 부친 주사적심은 의종때 일어난 방훈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국성인 이씨를 하사받아 이국창이 되었다. 이후 회흘을 견제하기 위해 진무절도사로 발탁되었다. 872년부터 이들 부자는 여러 번 소란을 일으켰다. 880년 조정은 이국창군을 패배시켰다. 부자는 달단으로 도망쳐 재기를 모색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삭주를 공격해 세를 키우려 했다. 당 왕조는 장안을 점령한 황소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부득이 그의 죄를 용서했다. 그의 군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사람들은 ‘까마귀 군대’라고 불렀다. 그는 용모가 기이하고 한 눈이 작아 독안룡(獨眼龍)으로 불렸다. 날쌘 호랑이(飛虎子)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용맹하고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했다.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기병대를 앞세워 적진을 공격했다. 883년 초 황소군은 15만 대군을 양전파에 주둔시켰다. 그는 반군을 패배시키고 장안으로 진격했다. 2개월 후인 883년 4월 황소군은 장안에서 퇴각했다. 2년 후 황소는 태산 동남의 낭호산에서 죽었다. 장안 회복의 공으로 주전충은 선무절도사, 이극용은 하동절도사로 기용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둘은 앙숙이었다. 주연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주전충의 비위를 건드려 죽임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급히 도망쳐 목숨은 건졌지만 주전충에 대한 원한이 깊어졌다.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실세 환관 전령자와 사이가 틀어져 태영절도사로 옮기게 되었다. 왕중영은 이극용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중은 소금의 산지로 태영으로 이동할 경우 환관세력에게 중요한 경제자원을 넘겨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극용이 군대를 동원해 장안으로 진격하자 전령자는 희종을 모시고 봉상으로 도망쳤다. 전령자가 실각하고 환관 양복공이 실력자로 부상했다. 주전충을 제거하는데 관심이 있던 이극용은 본거지로 돌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888년 희종은 장안으로 돌아왔으나 병에 걸려 사망했다.
수왕 이걸이 소종으로 즉위했다. 소종은 890년 선무절도사 주전충, 분주방어사 혁련탁, 노룡절도사 이광범과 재상 장준, 공위의 건의에 따라 이극용 토벌 조서를 발표했다. 장준은 과거 이극용의 휘하에 있던 자인데 재상에 임명되자 이극용은 훗날 세상이 혼란해지면 장준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장준은 그를 원수처럼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진압군은 이극용에게 참패했다. 다음해 조정은 그의 관작을 회복하고 중서령의 칭호를 내렸다.
봉상의 이무정이 장안을 공격하는 등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894년 이무정이 왕행유, 한건 등과 손잡고 장안에 쳐들어와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896년에도 쳐들어와 소종은 2년간 장안에서 버텼다. 주전충이 본격적으로 중원에 뛰어들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여러 번진을 진압해 하북의 여러 진이 그의 세력하에 들어왔다. 901년 이극용과 주전충이 진양에서 격돌했다. 수십일간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채 고군부투했다. 이 싸움을 계기로 이극용의 세력이 밀리기 시작했다. 주전충이 실세로 부상했다. 주전충과 재상 최윤은 힘을 합쳐 환관세력 제거에 나섰다. 결국 902년 환관 세력이 사실상 제거되었다. 904년 주전충은 자신의 야망에 장애물이 되는 최윤을 기습해 일당을 몰살했다. 이어서 소종을 죽이고 13세 이축을 새 황제로 옹립했다. 마지막 황제 애제다. 907년 주전충은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웠다. 이극용은 태원에서 진왕으로 칭하고 있었지만 병사하고 장남 이존욱이 뒤를 이었다. 923년 후량을 멸하고 후당을 세웠다. 이존욱은 사타족의 기병을 조직화해 후량의 70여 주를 잠식해 나가 후량은 불과 20여 주를 통치할 따름이었다.
사타는 돌궐의 별부로 당 초기 천산 일대에 흩어져 살았다. 태종때 돌궐족이 무너지자 당나라의 부속국이 되었는데 사타부는 그 중 하나다. 원래의 성은 주사(朱邪)로, 부친 주사적심은 의종때 일어난 방훈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국성인 이씨를 하사받아 이국창이 되었다. 이후 회흘을 견제하기 위해 진무절도사로 발탁되었다. 872년부터 이들 부자는 여러 번 소란을 일으켰다. 880년 조정은 이국창군을 패배시켰다. 부자는 달단으로 도망쳐 재기를 모색했다.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삭주를 공격해 세를 키우려 했다. 당 왕조는 장안을 점령한 황소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부득이 그의 죄를 용서했다. 그의 군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어 사람들은 ‘까마귀 군대’라고 불렀다. 그는 용모가 기이하고 한 눈이 작아 독안룡(獨眼龍)으로 불렸다. 날쌘 호랑이(飛虎子)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용맹하고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했다.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기병대를 앞세워 적진을 공격했다. 883년 초 황소군은 15만 대군을 양전파에 주둔시켰다. 그는 반군을 패배시키고 장안으로 진격했다. 2개월 후인 883년 4월 황소군은 장안에서 퇴각했다. 2년 후 황소는 태산 동남의 낭호산에서 죽었다. 장안 회복의 공으로 주전충은 선무절도사, 이극용은 하동절도사로 기용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봉상의 이무정이 장안을 공격하는 등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894년 이무정이 왕행유, 한건 등과 손잡고 장안에 쳐들어와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896년에도 쳐들어와 소종은 2년간 장안에서 버텼다. 주전충이 본격적으로 중원에 뛰어들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여러 번진을 진압해 하북의 여러 진이 그의 세력하에 들어왔다. 901년 이극용과 주전충이 진양에서 격돌했다. 수십일간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한채 고군부투했다. 이 싸움을 계기로 이극용의 세력이 밀리기 시작했다. 주전충이 실세로 부상했다. 주전충과 재상 최윤은 힘을 합쳐 환관세력 제거에 나섰다. 결국 902년 환관 세력이 사실상 제거되었다. 904년 주전충은 자신의 야망에 장애물이 되는 최윤을 기습해 일당을 몰살했다. 이어서 소종을 죽이고 13세 이축을 새 황제로 옹립했다. 마지막 황제 애제다. 907년 주전충은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웠다. 이극용은 태원에서 진왕으로 칭하고 있었지만 병사하고 장남 이존욱이 뒤를 이었다. 923년 후량을 멸하고 후당을 세웠다. 이존욱은 사타족의 기병을 조직화해 후량의 70여 주를 잠식해 나가 후량은 불과 20여 주를 통치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