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남 전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시대를 읽는 사람들
2019년 03월 11일(월) 00:00

정봉남

전 순천 기적의도서관장

수시로 카톡 알람이 울리고, 열어 볼 때마다 새로 발견한 정보와 소식들이 올라온다. 어떻게 이런 걸 찾아냈는지 반가워서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공유를 통한 경험의 세계가 자꾸만 커진다. 순결한 영혼 윤동주를 만나러 일본으로 문학 기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단톡방. 전국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우리는 동시에 접속하고 의견들을 교환한다. 윤동주의 시를 좋아해서 여행 팀이 꾸려졌는데 윤동주와 그의 시대를 읽어 가는 학회가 만들어질 정도다.

중국 상해로 출장 간 친구는 ‘송몽규평전’(연변대학출판부)을 발견했다고 알려 왔고, 또 한 친구는 중국 녕안에 있는 서점에서 ‘항일련군의 여전사들’이라는 책을 사 왔다고 알렸다. 다른 친구는 ‘중국 조선족 유래와 20세기 초기의 학교’를 함께 읽자 했고, 윤동주의 시를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 번역본 출간을 알렸다. 송몽규의 추모일(3월 7일)에 서울에서 모인 친구들은 연세대 핀슨홀이 올해 12월 ‘윤동주 기념관’으로 새 단장 중이라고 현장 사진을 남겼다.

일본 교토에 있는 윤동주 시비 세 곳을 다녀오자고 약속하면서 소설가이자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작가 송우혜 선생을 만났다. 얕게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들 덕분에 ‘윤동주 평전’을 제대로 읽었다. 1917년 북간도의 역사와 마을 풍경과 명동학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역사의 실체가 만져지는 느낌. 세계사의 흐름과 조선의 운명과 시인의 탄생이 예고하는 것들을, 익숙한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과 그들의 목숨 같은 열망과 숨은 이야기들을, 지금 현재의 삶과 맞닿아 있는 그때 거기 그 사건들의 의미를 촘촘히 알 것만 같았다.

쓰면서 발견된 진실과 기록과 진술과 실체에 따라 계속 고쳐 썼다는 지난한 작업들, 그렇게 손에 닿은 개정판 3쇄본은 독립 운동사의 기념비적인 기록이 될 것이다.

윤동주 문학 기행의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감동이 가장 컸다. 교토대학의 ‘미즈노 나오키’ 교수는 “교토대학 문학부 사학과 송몽규의 25년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일본조선사, 동아시아 관계사를 연구하는 일본의 진보학자다. 일본 유학 시절 윤동주와 송몽규 두 사람의 연구에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실과 잘못 이해되어 온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재일조선인’ ‘창씨개명’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 등의 저서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인도 관심 갖지 않는 부분을 연구해 식민지 청년의 고뇌를 읽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한 사람,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의 대표인 ‘마나기 미키코’ 씨다. 이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윤동주의 시 한 편을 읽는 독회 모임을 연다. 어느덧 25년이라니! 해마다 2월 16일에는 시인의 독방이 있었을 자리 앞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한다. 그녀는 도시샤대학 출신으로 연세대에 유학했으며, 뒤늦게 윤동주를 알고 평생 그의 시를 읽고 알리는 일을 해 오고 있다. “붓끝을 따라온 귀뚜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라는 동생의 편지에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 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장을 썼다는 시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녀는 ‘귀뚜라미와 나와’를 낭송하면서 울먹였다.

옛 형무소 터였던 작은 공원에 내리쬐는 햇볕은 더없이 따스했다.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파아란 하늘에는 무심한 구름이 흘러갔다. 흠 없는 영혼의 죽음은 눈부시게 큰 슬픔이었다. 도시샤대학 ‘서시’ 시비 앞에서, 지금은 교토조형예술대학 캠퍼스가 된 윤동주 하숙집 터 시비 앞에서, 소풍 나온 동주가 아리랑을 불렀다는 우지가와 강 귀퉁이 ‘새로운 길’이 씌어진 기억과 화해의 시비 앞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낭송하는 시간들이 먹먹했다. 밤이 깊도록 우리들은 동주와 몽규, 두 젊은이의 발자취를 따라 헤매었는데 어느 밤에는 가랑가랑 찬비가 얼굴을 적셨다. 젊음은 거기 오래 남아 있었고, 어느새 ‘윤동주’는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일본의 감옥에서 생체 실험으로 죽은 시인은 그를 죽인 일본인들까지도 인류 구성원으로서 삶의 존엄을 배우는 연대의 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연결되는 세계를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품어 보려 한다. 그의 생애와 사랑과 고뇌, 그의 시대와 운명과 시, 잎새에 이는 바람과 하늘과 별과 십자가를 말이다. 질곡의 시간 속에 피어난 절창! 그 안에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이 숨쉬고 있지 않을까.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