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태어난다
2019년 03월 04일(월) 00:00

[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이제 곧 봄을 알리는 꽃들이 각양각색으로 피어나면서 팍팍한 일상에 조금은 생기가 돌지도 모르겠다. 그 꽃들 중 하나가 모습이 유난이 특이하고 색색으로 화려한 튤립이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으로 잘 알려진 튤립은 본래는 야생화였다. 원산지는 텐산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 고산 지대다. 페르시아와 터키를 거쳐서 16세기에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1639년경에 네덜란드에서 역사상 가장 믿기 어려운 튤립 투기 광풍을 일으켰다. 그 유명한 ‘튤립 버블’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으로 떼돈을 벌어서 튤립 졸부가 생기는가 하면, 반대로 폭삭 망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급기야는 국가 경제가 치명타를 입고 휘청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당시 유럽의 경제 패권을 가지고 있던 네덜란드는 영국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도대체 이해는커녕 믿기조차 어려운 이야기다. 혹시 이때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집단으로 머리가 이상이 생겼거나 바보들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찌 됐든 이 일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튤립 투기는 졸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돈 자랑하는 놀이였다. 이 꽃이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튤립을 사재기하면서 가격이 수십 배 오르고 투기 열풍이 온 나라에 역병처럼 돌았다. 튤립 전용 거래소가 생기고 사전 예약제가 극성을 부리면서 튤립 뿌리 하나가 신부의 결혼 지참금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이때의 튤립 값은 하루에 26배까지 치솟아서 튤립으로 배나 성을 살 수도 있었다. 이런 광풍의 결과는 곧 튤립 값의 추락으로 이어졌고 모두의 파산이었다. 이쯤 되면 집단적 광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집단적 광기는 그 피해자가 몇 사람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비극이다.

역사상 대부분의 집단적 광기의 주인공들은 아주 평범하고 근면하며 심지어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분명 나라를 큰 위기에 빠뜨리거나 아니면 이웃 나라를 위한 광기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그저 ‘생각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광기라는 것이 집단적으로 일어날 때는 오히려 인식하고 자각하기가 훨씬 어렵다. 너도나도 같은 증상을 보이니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고 성찰할 이유는 더욱 없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뛰어드는 일에 함께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흔히 집단 지성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생각 없는 대중은 현명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으며 오직 위험할 뿐이다. 대중이 곧 바로 우중은 아니지만 얼마나 쉽게 한순간에 우중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지점이다. 개인의 이성과 분별력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목소리 큰 다수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미망 때문에 대중은 우중으로 돌변하고 자발적으로 다수의 광기에 복종한다.

그렇다면 집단적 광기의 증세를 알아차리고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당연히 시민이다. 대중이 우중이 되는 것을 막아 내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다. 시민은 남 좋은 일을 하자고 자신의 권리와 자유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중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중과 시민의 차이는 이성을 통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책임지는가의 여부에서 생긴다. 그래서 탐욕과 욕망과 무분별함으로 방향 없이 항해하는 ‘바보들의 배’에 집단 탑승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시민의 의미는 삶의 연대와 개인의 가치 실현을 위해서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서 순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마구잡이로 터져 나오는 모질고 거친 광기의 증세가 너무나 흉측하다. 이 광기의 근원은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더 큰 상처를 내서 이익을 얻으려는 권력욕이기에 튤립 광기보다 더 반인간적이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 고야는 ‘이성의 잠은 괴물을 만든다’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자신의 판화집에 새겼다. 고야의 이 말을 공동체적 의미로 풀어보면 ‘시민이 없는 곳에서 괴물이 태어난다’가 아닐까. 시민은 이성을 중하게 여기고, 우중은 이성을 잠재우면서 괴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래도 우리가 우중이 될 이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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