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7> 독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과거 넘어서야 미래로 향할 수 있다” 60년 반대 뚫고 문 열어
2018년 10월 16일(화) 00:00

독일 베를린의 중심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 자리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콘크리트 비석 주위를 거닐고 있다. 지난 2005년 조성된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2711개의 비석을 세우며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리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독일 베를린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Denkmal fu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는 비가 내리는 잿빛 하늘만큼이나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는 브란덴부르크문(門) 인근 18마르츠(Marz)광장 곳곳에서 기관총을 어깨에 맨 경찰이 보이는 등 경비가 삼엄했다. 메르켈 총리 등이 참석하는 3일 통일절 기념식을 하루 앞둔 탓이었다. 도로는 통제됐고 광장에 진입하는 모든 인파는 경찰에게 신분 확인을 받아야 했다.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 기념관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전세계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정보센터에서 사람들이 나치 만행이 적힌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기념관의 첫 인상은 거대 콘크리트 비석의 숨 막힐듯한 위용이다. 축구장 2개 크기(1만9073㎡)의 부지에 콘크리트 비석 2711개가 바둑판처럼 격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가로 0.95m×세로 2.38m 크기 비석들은 30㎝부터 5m까지 다양한 높이로 세워져 있었고 특별한 문양이나 안내문이 없는 무미건조한 모양이었다.

멀리서 보면 비석들이 단조로운 외양과 비교적 고른 높이인 것 같지만 바닥은 물결이 치듯 굴곡진 형태다. 짙은 회색 비석 사이로 중앙을 향해 걷다보면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심연 속으로 빨려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석 또한 불안한 모습이다. 일괄적인 수직이 아닌, 각각 삐뚤빼뚤하게 세워져 곧 무너질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콘크리트가 풍기는 무미건조함과 답답함, 불안함은 수용소나 가스실에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던 유대인들이 마지막 순간 느꼈을 심정을 방문객들이 간접적으로 공감하도록 고안됐다.

중심부와 달리 비석의 높이가 낮은 외곽지역에서는 독일인들이 비석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비석에 걸터앉으면 손가락질 받겠지만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는 수많은 유대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또하나의 방법이다. 여유를 가지고 유대인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되새기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기념관측도 비석 위를 뛰어다니거나 술·담배만 하지 않는다면 관람객들의 행동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유대인들이 남긴 편지·메모 등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있는 정보센터의 ‘목격의 방’.








걸음을 옮겨 지하에 있는 정보센터로 갔다. 기념관 부지와 히틀러가 패전 이후 자살한 지하벙커가 가까운 탓에 독일정부는 신 나치주의자들을 주의하고 있다. 기념관은 일정 숫자 이상의 인원이 들어가지 못하며 입구에서는 X-레이 검색대를 통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보센터에서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들이 당했던 박해와 나치에 대한 정보를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6개의 대형 얼굴 사진은 600만 유대인 희생자를 대표하며 각각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어른, 노인 등을 상징한다. 피해자들의 일기, 편지 등을 전시한 ‘목격의 방’에서는 폭격 이후 쌓여 있는 시신, 물을 얻기 위해 결혼 반지를 팔아야 했던 여인 등 당시의 참상을 가감없이 볼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이 제공한 희생자의 이름이나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홀로코스트 기념재단에 따르면 지금의 기념관은 매년 평균 50만명이 넘는 인원이 방문하고 있지만 설립되기 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유대인을 추모하자는 아이디어는 독일 방송기자 레아 로쉬(Lea Rosh)와 역사학자 에버하르트 예켈(Eberhard Jackel)이 지난 1988년 처음 제안했다.

하지만 곧 반대에 부딪힌다. 국가의 치부를 전세계에 드러내야 하는 독일 정치인들의 난색, 한화 4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예산 뿐 아니라 ‘유대인 학살은 예술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의견 등이 작용했다.

1994년, 1997년 두차례의 공모전을 치르는 등 긴 논의 끝에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의 작품이 당선됐다. 피터 아이젠만은 ‘광주 폴리1’에 참여해 ‘99칸’ 작품(광주시 동구 충장파출소 옆)을 설계하는 등 광주와도 인연을 맺고 있는 작가다.

1999년 독일 국회는 기념관 설립을 최종 승인한다. 총 537표 중 찬성 314표(58.4%), 반대 209표(38.9%), 기권 14표(2.6%)가 나올 만큼 정치권 또한 부정적 여론이 강했다.

이듬해 10월 착공을 위한 첫삽을 떴지만 이번에는 공사업체가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콘크리트 비석을 제작하는 업체가 나치와 관련된 기업으로 뒤늦게 밝혀지며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념관은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에 맞춰 지난 2005년 5월12일 문을 열 수 있었다.

완성된지 10여년이 흐른 현재 기념관이 해소해야할 문제점도 적지 않다. 지난 2008년 세워진 동성애자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를 길 건너편 조그만 규모로 조성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나타낸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시간이 흐르며 콘크리트 비석이 갈라지거나 깨지고 있어 보존에 대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재독 한인단체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 기념관 주위에 미국·러시아·영국대사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 등 2차 대전 승전국들의 대사관 앞에 자신들의 과오를 보여주는 기념관을 짓는 것은 독일사회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며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는 과거를 넘어서야 미래로 향할 수 있다는 독일의 역사관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kimyh@kwangju.co.kr

/베를린 = 글 김용희·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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