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다산연구소 소장] 물길을 막기보다 터 줄 궁리를
2018년 09월 11일(화) 00:00 가가
군 복무 시절,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산에 있었다. 출·퇴근자를 위해 부대 차량이 산 아래까지 운행되었다. 그때 도로는 흙으로 된 도로였다. 그래서 여름철 심한 폭우가 쏟아지면 비상이 걸렸다. 폭우로 불어난 물길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도로는 깊게 파인 골짜기로 변모하고 만다. 그러면 온 부대 장병이 유실된 도로를 복구하느라 며칠씩 삽질을 해야 했다. 이런 결과를 잘 아는지라 당직 근무를 설 때 폭우가 내리면 당장 부대원 몇 명을 이끌고 도로에 내려가 봐야 한다. 물론 삽을 들고.
이때 대단한 제방을 쌓으려는 것은 아니다. 도로에 불어난 물이 들어와 순식간에 물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조그만 나뭇잎들이 흘러가다 얽혀 모여서 도로변 좁은 도랑의 물길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차적인 응급조치는 이런 나뭇잎 더미를 얼른 제거해 주는 것이다. 상황이 심각한 경우에는, 도로의 일부를 가로질러 도랑을 낸 뒤 물길이 다른 골짜기로 흐르도록 터 준다. 약간의 삽질이면 엄청난 피해와 고된 복구 ‘사역’을 미연에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주거 불안정, 사교육에 따른 교육비 부담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문제이다. 이런 문제에 임하는 정책에는 물길을 다루는 듯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이 이익을 좇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부동산 안정화 정책은 녹록지 않다. 투기금지지역으로 선정되면 가격이 더 오른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호재가 있는가’ 도리어 관심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택은 의식주의 하나이면서 또한 재산 증식의 수단이다. 사용 가치에 따른 수요 공급의 면만 따지는 것으로 부족하고, 경제 전체적으로 돈이 이익(교환가치 등)을 좇아 흐르고 몰리는 것을 도외시하고서는 제대로 부동산 정책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사교육 현상은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려는 것이기에 막기 힘들다. 공교육이 잘 된다고 사교육이 없어질까? 공교육이 입시 위주의 사교육을 대체하려는 것도 이상하며, 그렇게 잘할 수도 없다. 교육 문제는 사회 전체의 인력 양성과 충원 구조가 결부되어 있다. 당장은 과열을 완화시키려 노력해야겠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고 근본적으로 입시 위주의 사교육이 필요 없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뜻밖에 영세 자영업자의 반발에 봉착하는 것을 보면서 당구 게임이 연상되었다. 초보자는 눈앞에 보인 당구공의 움직임만 보고 플레이를 하다 낭패를 본다. 부딪힌 공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서 엉뚱한 공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득점은커녕 실점을 하기 십상이다. 당구 고수는 눈앞의 공만 보지 않고 공의 예상 궤적과 다른 공의 위치를 머릿속에 그린다. 정책을 펴는 사람도 2차, 3차 연쇄 효과를 가늠해 보고(정책 시뮬레이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각 주체의 예상되는 반응을 잘 헤아려 봐야 한다. 고수는 또한 한 번의 기회에 여러 점을 얻기 위해, 사각의 쿠션(당구대 안쪽의 공이 튕기는 면)을 이용한 이른바 ‘쓰리 쿠션’ 같은 것을 구사하기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선의에서 시작한 정책이다. 정책 동기가 선하다는 자신감에서 자칫 여러 다른 변수를 따져 보는 데 소홀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한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최저임금제라는 가격 하한제의 문제점은 이미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나와 있다. 근로자의 생계에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미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겠다는 정부로선 아이러니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 최저임금 지불도 부담스러운 영세한 자영업자가 많게 된 것은 기업 구조조정의 부수적 결과였다.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구조조정이 국민경제에 주름을 더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슬기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게 바로 리더의 문제의식이다. 경제학의 기본 과제인 ‘고용 안정’과 ‘물가 안정’도 늘 두 마리의 토끼처럼 달아난다. 리더는 우선 딜레마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저울질하여 적절히 정책을 조제하든지 그 상황을 뛰어넘을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5년 임기의 정부로서는 시간은 적고 할 일은 많다. 하지만 조급하게 굴 것도 과욕을 부릴 것도 아니다. 당위적 규범성에 안주하기보다 이익 추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것이 이익 충돌을 조장하고 이익 추구에 매몰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길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헛되이 물길을 막기보다 적절하게 터 줄 궁리를 해야 한다.
사교육 현상은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서려는 것이기에 막기 힘들다. 공교육이 잘 된다고 사교육이 없어질까? 공교육이 입시 위주의 사교육을 대체하려는 것도 이상하며, 그렇게 잘할 수도 없다. 교육 문제는 사회 전체의 인력 양성과 충원 구조가 결부되어 있다. 당장은 과열을 완화시키려 노력해야겠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고 근본적으로 입시 위주의 사교육이 필요 없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뜻밖에 영세 자영업자의 반발에 봉착하는 것을 보면서 당구 게임이 연상되었다. 초보자는 눈앞에 보인 당구공의 움직임만 보고 플레이를 하다 낭패를 본다. 부딪힌 공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서 엉뚱한 공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득점은커녕 실점을 하기 십상이다. 당구 고수는 눈앞의 공만 보지 않고 공의 예상 궤적과 다른 공의 위치를 머릿속에 그린다. 정책을 펴는 사람도 2차, 3차 연쇄 효과를 가늠해 보고(정책 시뮬레이션), 이해관계가 어긋나는 각 주체의 예상되는 반응을 잘 헤아려 봐야 한다. 고수는 또한 한 번의 기회에 여러 점을 얻기 위해, 사각의 쿠션(당구대 안쪽의 공이 튕기는 면)을 이용한 이른바 ‘쓰리 쿠션’ 같은 것을 구사하기도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선의에서 시작한 정책이다. 정책 동기가 선하다는 자신감에서 자칫 여러 다른 변수를 따져 보는 데 소홀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한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최저임금제라는 가격 하한제의 문제점은 이미 경제학원론 교과서에 나와 있다. 근로자의 생계에 플러스가 될 수 있지만, 미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하나라도 더 늘리겠다는 정부로선 아이러니이다.
한편, 우리 사회에 최저임금 지불도 부담스러운 영세한 자영업자가 많게 된 것은 기업 구조조정의 부수적 결과였다.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구조조정이 국민경제에 주름을 더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영세 자영업자의 부담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슬기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게 바로 리더의 문제의식이다. 경제학의 기본 과제인 ‘고용 안정’과 ‘물가 안정’도 늘 두 마리의 토끼처럼 달아난다. 리더는 우선 딜레마적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저울질하여 적절히 정책을 조제하든지 그 상황을 뛰어넘을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5년 임기의 정부로서는 시간은 적고 할 일은 많다. 하지만 조급하게 굴 것도 과욕을 부릴 것도 아니다. 당위적 규범성에 안주하기보다 이익 추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것이 이익 충돌을 조장하고 이익 추구에 매몰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길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헛되이 물길을 막기보다 적절하게 터 줄 궁리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