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화를 품다 <2>제주 기적의 도서관] 아이는 상상의 나래…어른은 동심의 나래
2018년 06월 11일(월) 00:00
아기자기한 외관에 어린이 도서 6만여권 소장…‘북스타트’ 등 프로그램 다채
‘책 읽어주는 시니어’ 참가신청 쇄도…모유수유방·물애기방·북카페 등 갖춰

제주시기적의도서관의 내부 모습. 어린이도서 5만8000여 권이 장르별로 비치돼 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기적의도서관. ⓒ 정기용 기념사업회








하얀색과 노랑색으로 마감된 건물 외관이 산뜻하다. 건물 앞쪽에는 넓은 잔디밭이, 뒤쪽에는 아담한 녹지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동화속 책나라에 온 듯 하다. 반원형의 방에선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호주머니를 연상케 하는 공간(물애기방)에선 사색도 한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제주시기적의도서관(관장 현희경·이하 기적의도서관)의 ‘한낮의 풍경’이다.

지난 2004년 5월 5일 문을 연 기적의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 관공서 건물에선 느낄 수 없는 아기자기한 외관과 6만 여 권에 달하는 장서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보금자리다. 하늘을 날아 다니는 새의 형태를 닮은 삼각형 모양과 완만한 한라산 형태의 건물은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도서관 앞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동판이 눈에 띈다. “MBC TV ‘느낌표’와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본부’가 전국민에게 책읽는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추진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리 시에 어린이 전문 도서관이 건립되었다”는 문구가 선명하다. 순간, 지난 2001년 문화방송(MBC)의 프로그램 ‘느낌표’의 한 코너인 ‘책을 읽읍시다!’가 스쳐 지나간다. 기적의도서관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젝트를 통해 ‘기적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적의도서관의 매력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학교밖 교실’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에 들어 오면 금방 ‘책의 바다’에 풍덩 빠질 정도로 어린이들의 동선을 배려한 게 특징이다. 기존의 도서관 열람실이 직사각형과 층으로 분리돼 있는 것과 달리 기적의도서관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중심에 자리한 열람실에서 마주치도록 설계됐다.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닌 소통의 공간을 지향한 건축철학이 느껴진다.

총 면적 2126㎡에 이르는 기적의도서관은 책을 자유롭게 골라 보는 ‘책나라’,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모유수유방’, 취학전 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방’, 0세부터 3세 영아들을 위한 ‘물애기방’,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북카페, 공연과 영화상영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야외광장’ 등으로 꾸며져 있다.

무엇보다 기적의도서관의 색깔은 어린이들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북스타트, ‘한밤의 도서관’, ‘책 읽어주는 시니어’ , ‘가족몰입독서교실’, ‘어린이 문화원정대’, ‘나도 동화작가’, ‘책이랑 놀이랑’, ‘주말가족극장’, ‘길 위의 인문학’ 등 다양하다.

‘북스타트’는 영유아들에게 그림책을 나눠 주고 책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자연스럽게 책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독서캠페인이다.‘ 3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20세 이상 제주시민 48명의 자원봉사가들이 참여해 유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실내놀이를 함께 하는 등 봉사활동을 펼친다.

‘한밤의 도서관’은 책을 베게 삼고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뜻 깊은 시간이다. 올 2월에 열린 프로그램에선 여느 때와 달리 ‘밥 안 먹는 색시’라는 옛 이야기를 테마로 정했다. 주인공 ‘버츄’를 통해 남·녀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대해 토론하고 ‘콩 숨기기’라는 전래놀이로 동화 속 ‘쌀’에 대한 농민의 마음을 느꼈다.

한밤의 도서관에 세 번째 참가한 현은채(제주인화초교 6년)양은 “‘밥 안 먹는 색시’ 를 읽은 후 물애기방에서 책 속의 주인공이 되는 마인드 맵을 그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캠프에 참가한 친구들과 책꽂이 사이에서 잠을 잔 시간은 초록빛 같은 하루였다”고 즐거워했다.

어린이전문도서관이지만 자녀와 함께 방문하는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매주 주말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우수영화를 상영하는 ‘주말가족극장’과 제주시내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육아경험과 인생의 덕목을 배우는 ‘책 읽어 주는 시니어’는 참가신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가족몰입 독서교실’은 기적의도서관의 간판 콘텐츠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는 오롯이 책만 읽을 수 있다. 어린이들은 10권의 그림책을 쌓아두고 읽는 가 하면 어른 역시 꼬박 책상에 앉아 자녀들과 함께 읽는다. 어린이책을 읽는 동안 어른들은 유년시절의 기억을 반추하기도 하고 동심의 세계에 빠지는 색다른 경험을 누린다.

올해로 개관 14년을 맞은 기적의도서관은 같은 날 문을 연 서귀포기적의도서관과 더불어 제주시를 대표하는 공공도서관이다. 인구 60여만 명인 제주시는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만날 수 있도록 15개의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적의도서관의 이용자는 연 평균 20만 4938명(1일 평균 674명)으로 8만3054권(1일 평균 273권)의 도서를 대출하고 있다. 지난해 제49회 한국도서관상, 2013년 전국도서관 운영평가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희경 관장은 “어린이전문도서관을 표방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도서관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 평생교육의 산실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있다”면서 “공공도서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규모와 역할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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