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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광장 - 문요한 건강의학과 전문의] 똑똑한 몸, 멍청한 마음

2018. 05.28. 00:00:00

난 고기를 먹을 때면 늘 생마늘과 생양파를 곁들인다. 정확히 기억한다. 1999년도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생으로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 계기는 이렇다. 그해에 나는 경남 창녕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결혼 전이었고 동료 예닐곱 명이 관사 생활을 했다. 우리는 일과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대개는 관사 앞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마 일주일에 3~4일은 고기를 먹었던 것 같다. 그 생활이 반년 정도 지났을까? 내 평생 먹은 고기보다 더 많은 고기를 그해에 먹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고기 냄새만 맡아도 질렸다. 신기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잘 먹었다.
그렇게 매일 육식의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생양파와 생마늘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왜 나는 무심결에 양파와 마늘을 생으로 먹게 되었을까? 왜 나의 입맛은 바뀌었을까? 나는 그것이 몸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육식으로 인한 불균형을 내 몸이 스스로 변화함으로써 도와준 것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몸’이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을 보면 종종 건강하게 지낸 것 같은 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이런 돌연사의 주요 원인은 심근경색증과 같은 심장질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돌연사 중에는 사전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일상에서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흉통과 같은 뚜렷한 증상을 경험한다. 즉, 몸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가 여러 차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몸의 신호를 무시한다. ‘별거 아닐 거야’ ‘이 정도는 버텨야지’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병원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 마음이 몸의 신호를 왜곡하거나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순수한 돌연사보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유사 돌연사가 꽤 많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몸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은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건다. ‘편안해’ ‘힘이 나’ ‘피곤해’ ‘좀이 쑤셔’ ‘어깨가 뭉쳐’ ‘졸려’ ‘배고파’ ‘목말라’ ‘소화가 안 돼’ ‘가슴이 답답해’ 등 수많은 말을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몸의 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 자꾸 무시하고 모른 체한다. 자고 싶다고 해도 안 자려고 애쓰고, 생리가 끊어졌는데도 다이어트를 이어 가고, 배가 부르다고 해도 더 집어넣고, 열이 나는데도 돌아다닌다. 건강을 많이 신경 쓰는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무릎에 계속 통증이 느껴지는데도 마라톤을 하거나, 억지로 근육통을 참아 가며 고강도 운동을 한다.
그러나 몸의 신호들을 무시하면 처음에는 잠잠해지나 싶다가도 나중에는 점점 빈번해진다. 우리 몸 안에는 우리를 보호하고, 균형을 잡아 주는 지혜가 있기에 경고 신호를 보내 주는 것이다.
이때라도 귀를 기울이면 좋으련만 여전히 무시하고 심지어 혼을 내는 이들도 있다. 어린 시절에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들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이들은 아픈 아이를 혼내는 부모처럼 ‘그 정도 아픈 것 가지고 엄살 부리지 마’ ‘유난 떨지 마’ ‘왜 이렇게 귀찮게 해’라고 몸을 혼낸다. 그렇게 몸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다 보면 몸은 어느 순간 비명을 질러댄다. 몸의 비명! 그것이 병이다. 그렇게 보면 많은 질병은 몸에 대한 마음의 배신 때문이다. 마음은 호시탐탐 우리를 속이려 든다.
타인과의 대화만큼 자기와의 대화도 중요하다. 마음과의 대화만큼 몸과의 대화도 중요하다. 몸은 솔직하다. 마음은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몸의 말은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통역해야 한다.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줄이고 늘려야 할지를 헤아려야 한다. 단지 소식을 하고 운동을 늘리는 획일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금 내 몸에 어떤 음식이 필요한지,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의 종류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의사나 병원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몸과 친해지고 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몸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배우고자 한다면 몸은 잘 가르쳐준다.
많은 사람들은 지혜가 마음에 있다고 믿는다. 맞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의 지혜일 뿐이며, 정작 마음은 지혜만큼이나 어리석음으로 차 있다. 지혜는 몸에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몸을 차별한다. 마치 종 취급한다. 하지만 몸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머무는 거처이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늘 우리 곁을 함께하는 삶의 동반자이다. 그런 동반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몸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며,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 몸에 따뜻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 사랑의 출발점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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