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광주’가 꿈꾸는 시장은?
2018년 04월 11일(수) 00:00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광주일까요? 부산일까요?”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K가 필자에게 보내온 카톡 메시지의 일부다. 그러면서 그는 ‘해운대에 아세안문화원 건립’이라는 제목의 한 일간지 기사를 링크해 ‘친절하게’ 전송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의 콘셉트와 많이 겹친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세안문화원의 존재감



지난해 9월 문을 연 부산 아세안문화원은 이름 그대로 아세안 문화 교류의 허브를 표방한 정부 산하 기관이다. 2014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후속 사업으로 173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해운대구 좌동 공공청사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4층(면적 6천330㎡) 규모로 건립했다. 아세안문화원 개관식에는 아세안 10개국 외교부 장관과 아세안 관련 문화·정책 전문가 등 4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전시 시설, 문화 체험 공간, 동남아 문화 체험실, 멀티미디어실, 교육·연구 시설 등을 둘러보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아니나 다를까. 아세안문화원은 개관 이후 차별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문화 교류의 대상국인 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의 다양한 전시와 공연은 영남권의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문화전당으로서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부산의 도시 브랜드나 인프라의 파괴력을 감안한다면 아시아의 문화 플랫폼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듯하다. 지난해 K가 카톡을 보내온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사실 아세안문화원이 2015년 개관한 문화전당을 위협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세안문화원이 문화 교류의 파트너로 정한 아세안 10개국은 오래전부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단과 광주시가 핵심 교류 대상권으로 공을 들여 왔던 국가들이다. 특히 아시아 문화를 수집·연구·전시하는 아세안문화원 상설 전시관의 기능은 문화전당 정보원의 사업 영역과 겹친다. 때문에 정부의 예산 배정이나 관람객 유치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문화전당의 개관 효과를 반감시키는 악재라 하겠다.

아세안문화원 설립을 두고 당시 지역 문화계에선 문화전당의 위상을 축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돈만 축내는 대형 복합 시설’이라는 이유로 문화전당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의 ‘가이드 라인’ 덕분이었는지, 이후 문화전당의 일부 기능과 중복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아세안문화원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화전당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수년간 표류하게 된 데에는 정부의 파트너인 광주시의 안일한 행정도 빼놓을 수 없다. 문화전당의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란과 옛 전남도청 별관 복원 등 굵직한 현안이 불거지는 동안 광주시의 문화 컨트롤 타워는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컨트롤 타워가 없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듯하다.



문화 예술 즐기는 지도자



물론 광주시 조직도에는 지난 2005년 전국 최초로 신설된 문화체육관광실(문화정책실)이 있다. 국책 사업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취지가 무색하게 문화 부서 공무원들이 평균 6개월∼1년 만에 교체되면서 수많은 문화전당 현안에 ‘전략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2015년 9월 개관 전후로 현 이진식 문화전당장 직무대리까지 두 명이 바뀐 데 반해 비슷한 기간 문화정책실은 김일융, 염방열, 정민곤에 이어 최근 취임한 박 향 실장까지 네 명이 거쳐 갔다.

실무를 챙기는 문화 부서 공무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문 공무원을 키우기 위해 2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인센티브까지 주는 일부 지자체와 달리 광주는 바뀌어도 너무 자주 바뀐다. 오죽했으면 얼마 전 문화계 모임에서 한 지역 인사가 박 향 실장에게 “이번엔 얼마 있다가 가실 거냐?”라는 뼈 있는 농담을 건넸겠는가.

문화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대인 예술시장, 동구 예술의 거리, 전당 주변 도심 활성화 사업 등 광주시의 문화현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2007년 국책 사업으로 10년 동안 수백억 원이 투입됐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대인예술시장과 예술의 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더욱이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기는 내년 이후의 로드맵은 정해진 게 없는 상태다. 장기적인 비전 없이 매번 주관 업체를 선정해 일회성 행사로 치르는 데 급급하다 보니 축적된 노하우와 역량을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6·13 지방선거가 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광주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입지자들이 문화 예술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역벨트, 문화부시장 임명, 문화수도 그랜드 비전 ‘광주 센트럴파크’ 등 묵직한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문화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메가 프로젝트 추진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 화려한 ‘말의 성찬’보다는 긴 안목과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춘 ‘준비된 문화 시장’이 나올 때도 됐다. 전시회나 음악회의 순수한 관객이거나 가난한 예술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선배 같은 리더이면 더 할 나위 없겠다. 그리하여 그가 끼울 첫 단추는 문화 행정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담보하는 문화 컨트롤 타워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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