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126> 경제전문가 배요경
2018년 04월 03일(화) 00:00
민생 안정·재정 개혁에 큰 공
배요경(裵耀卿, 681-743)은 강주 직산 출신으로 자는 환지다. 현종 때의 명 재상으로 민생안정과 재정개혁에 크게 기여했다.

남제의 배숙업 7세손으로 과거를 거쳐 관리생활을 시작했다. 국자주부를 거쳐 현종 개원 초 장안령에 임명되었다. 재임중 민간에서 물품을 구입할 때 대금을 선지급해 중간 상인이 농간을 부리지 못하도록 해 국고를 충실히 하였다. 호부시랑을 거쳐 제주, 선주, 기주 자사를 역임하였다. 일찍부터 경제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개원 20년(732) 신안왕 이위를 하동·하북 행군부대총관으로 삼아 해와 거란을 공격토록 하였는데 부총관으로 참여해 공을 세웠다. 황제가 비단 20만 필을 해족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명하였다. 그는 예정된 기일보다 일찍 서두르고 길을 나누어가 오랑캐의 방해를 물리치고 성공리에 배급을 완료하였다.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그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황하 주변의 지방관으로 재직 중 홍수가 나 하천이 붕괴되자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제방 공사를 서둘렀다. 공사가 진행 중인데 임지를 바꾸는 황제의 명령이 내려왔다. 그러나 공사를 완료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명령 받들기를 거부하였다. 제방 공사가 완공된 후에야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지역 주민들이 그의 공적을 기려 공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산동성 제주자사 재직시에는 황제에게 백성을 사랑하는 백가지 방안을 올리니 현종은 이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733년 관중 지방에 오래 비가 내려 흉작으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현종은 동도인 낙양으로 가려고 경조윤 배요경에게 상의했다. 관리들의 봉록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다. 그는 동도로 옮기는 것은 단기적인 대책에 불과하고 근본적으로 식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중은 황실의 대업이 일어난 곳이므로 바꿀 수 없지만 다만 땅이 협소해 곡식이 적습니다. 과거에는 동도로 행차해 문제를 피했습니다. 사농시(司農寺)로 하여금 쌀을 조세로 거두어들여 동도로 운반하고 동도에서 바꾸어 조운해 관중을 충실하게 만들어 수년동안 먹을 곡식을 저축하게 되면 수해와 한해를 걱정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요 길목마다 창고를 설치해 운영토록 할 것도 건의했다. 황제가 전적으로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소숭과 한휴가 나란히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배요경과 장구령을 재상으로 발탁했다.

734년 장구령이 백성이 돈을 주조하는 것을 금지하지 말도록 주청하자 배요경이 반대의견을 내었다. “이를 한번 허용하면 사람들이 농사를 버리고 이익만 뒤쫓을 것이니 함부로 나쁘게 되는 것이 더욱 심해질까 두렵습니다.” 결국 주조를 금지하였다. 그는 강회, 하남의 전운사를 겸직해 곡물의 운송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독려했다. 황하 입구에 물품을 집하하는 수장(輸場)을 설치했다. 하음창, 백애창, 집진창, 염창 등을 설치했다. 원활한 물량의 이송으로 3년 만에 7백만 곡이 운송되었고 운송비만 30만 민을 절약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 절약된 돈을 황제에게 바쳐 신임을 얻으라고 권유하자, 그가 말하기를 “이것은 관청에서 절약한 것인데 어찌 내가 그것을 가지고 황제의 은총을 얻겠습니까?” 절약한 돈으로 쌀을 사 보관토록 조치했다. 그는 뛰어난 경세가이면서 청렴한 공직자였다. 민생안정을 국정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물가안정과 예산절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공으로 선임 재상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황제에 대한 충성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우선시하는 그의 자세는 현종의 시기심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요경과 장구령은 관계가 원만했는데 황제는 그들을 같은 당파의 사람으로 보았다. 황족인 이임보가 조정에서 황제의 신임을 얻어 예부상서겸 중서문하삼품이 되었다. 재상급으로 승진한 것이다. 736년 현종은 장구령과 배요경을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임보를 겸중서령으로 기용했다. 삭방절도사인 우선객을 공부상서 겸 동중서문하삼품으로 삼아 재상급으로 올렸다. 이로써 이임보가 정국을 주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743년 세상을 떠나니 문헌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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