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7〉 도쿄의 숍인숍 책방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감성을 품다
2018년 03월 19일(월) 00:00

대형 쇼핑몰 ‘긴자식스’(Ginza Six)의 6층에 들어선 츠타야 체인점은 예술 전문 서점이다. 서가 위쪽에는 흰색의 책모형이 꽂혀있고 매장 한 가운데에는 일본의 현대미술작가 야노베켄지의 고양이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다.

지난해 취재차 방문한 서울 ‘위트 앤 시니컬’(광주일보 2017년 10월16일 보도) 은 여느 서점과 달랐다. 시집만 판매하는 전문서점이기도 했지만 ‘숍인숍’(shop in shop)이라는 독특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흔히 1층 건물이나 지하에 자리하고 있는 일반 서점과 달리 커피점, 편집숍과 함께 공간을 나눠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지붕 세가족’이었다.

하지만 일본 도쿄에서 ‘숍인숍 서점’은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번화가인 긴자거리에서 부터 명품거리인 오모테산도까지 책을 매개로 한 공간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서점이 이들의 일상속으로 들어가 책과 친해지는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다. 백화점이나 여행사, 생활용품 매장안에 ‘입점한’ 서점은 아날로그 공간이 아닌 트렌드와 미래를 설계하는 멀티공간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지난 2017년 문을 연 대형 쇼핑몰 ‘긴자 식스’(Ginza Six)의 츠타야 서점은 단연 돋보인다. 백화점측은 츠타야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과 제휴를 맺고 지하 6층 지상 13층, 총 면적이 4만7000㎡에 달하는 초대형 쇼핑몰의 6층에 츠타야 체인점을 냈다. 매출 감소를 이유로 점차 백화점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국내와 달리 서점과의 시너지를 꾀한 것이다.

‘긴자식스’의 1층에 들어서면 여기 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중앙홀 천장에 내걸린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89)의 대형설치작품 ‘호박’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쇼핑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벽에 붙은 12m 높이의 대형스크린에선 미디어 아티스트 ‘팀 랩’의 폭포영상이 흘러내린다. 순간 미술관인지, 백화점인지 헷갈린다.

물질적 소비와 정신적 소비를 즐기는 고품격 백화점으로 컨셉을 잡은 ‘긴자식스’는 뉴욕근현대미술관(MoMA)을 설계한 건축계의 거장 다니구치 요시오에게 건물 외관을, 중앙홀 작품과 상설 전시는 롯폰기힐스의 모리미술관에게 맡겼다. ‘아트’와 ‘뉴 럭셔리’의 콜라보레이션 효과를 위해서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240여 개가 들어선 백화점은 거장들의 ‘작품’과 함께 쇼핑객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예술을 키워드로 내건 ‘츠타야‘ 서점은 ‘긴자식스’의 야심작이다. ‘Touch art, Feel art’를 내건 6m 높이의 서가에는 세계적인 예술가 100인의 작품집에서부터 예술서적, 일본예술, 만화, 라이프스타일 서적, 잡지 등이 빼곡히 차있다. 특히 책장 5칸 높이에 꽂혀 있는 수백 여개의 흰색 책 모형이 인테리어 효과를 톡톡히 낸다. 서점에 비치된 책이 6만 여권에 이른다고 하니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취재차 방문했던 날은 고양이를 형상화 한 아티스트 야노베 켄지의 초대형 설치작품이 서가와 어우러져 색다른 ‘블록버스터’를 보여줬다. 또한 매장에는 ‘예술과 고양이’를 주제로 한 작가와의 대화에서 부터 고양이 관련 서적·아트상품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고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서점은 아트스트리트, 아트 월(art wall), 이벤트 스페이스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아트 스트리트에는 예술가의 작품집이 비치돼 있고 아트 월에는 다양한 아트상품을, 이벤트 스페이스에는 에도시대의 문화와 오늘날의 일본만화 컬렉션을 전시해 놓았다. 그 옆에는 장인들이 제작한 문구용품들을 판매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다른 백화점에서 구하기 힘든 예술성 짙은 상품들이 많아 마니아들의 성지로 자리잡고 있다.

예술서점으로 특화시킨 ‘긴자식스‘의 전략은 개점과 동시에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책이 진열된 책장 사이에 비치된 수십 여개의 좌석은 빈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서점 옆의 스타벅스 커피숍에선 책과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 주말이면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일본의 또 다른 번화가인 유라쿠초에도 숍인숍 서점이 호황중이다. 종합생활브랜드 무인양품(無人良品)의 무지북스(MUJI Books)로, 일종의 마트 속 서점이다. 그렇다고 긴자식스의 서점처럼 별도의 공간에 분리되어 있지 않다. 기존의 생활용품 매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식품과 책, 식물과 책이 이웃해 있는 형태다. 무지북스의 책 1만 여 권은 책, 음식, 소재, 생활, 의류를 뜻하는 ‘사시스세소’라는 분류법에 의해 진열된다.

무인양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양한 식물과 식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서점은 2층에 자리하고 있는데 매장 한가운데 설치된 대형서가가 시선을 붙잡는다. 7000여 종의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의 특성상 화분 옆에 화훼 관련 서적과 소품이 함께 진열되어 있다. 샐러드 드레싱 옆에는 샐러드 레시피에서 부터 샐러드의 역사를 다룬 책이 꽂혀 있고 믹서기, 소쿠리, 접시, 주전자, 밥솥이 ‘한팀’을 이룬다. 요리와 화훼, 패션, 커피 등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서적들이 많아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의 핫플레이스인 오모테산도에서는 여행사와 동고동락하는 책방을 만날 수 있다. 일본의 대형여행사 업체인 HIS는 지난 2015년 오모테산도 지점에 여행상품과 서적, 카페를 한자리에 모은 ‘여행과 책과 커피와 오모테산도’를 오픈했다. 1층에는 커피 매장이 들어서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세계 각국의 여행 정보를 담은 2000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1층과 2층에는 여행서적을 읽고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고객들이 바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직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특히 1층의 여행서적 코너에는 이국적인 느낌의 인테리어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엔티크 소품들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HIS여행사의 관계자는 “여행 상담을 받는 고객 가운데 상당수가 즉석에서 여행패키지를 구입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시대의 서점은 아날로그적 감성과 지식을 충전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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