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어디까지 가봤니?] <4> 목포 ‘다크 투어리즘’ 뜬다
2018년 03월 14일(수) 00:00
일제 강점기·민주항쟁·세월호 … 목포는 역사다

목포 서산동은 전형적인 바닷가 달동네다. 영화 ‘1987’에서 여주인공 연희가 사는 동네로, 연희와 이한열이 시국을 논하던 슈퍼 앞 평상이 있는 곳이다. 목포시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이 곳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입구에 새겨진 글귀다.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여행)의 가치를 설명할때 곧잘 인용된다.

‘다크 투어리즘’은 ‘어두운’이란 의미의 영어단어 ‘다크(Dark)’와 ‘여행’이란 뜻의 ‘투어리즘(Tourism)’을 합친 말이다. 시대적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해 듣는 것을 넘어 당시 상황을 간접 체험하면서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는 여행이다.

목포가 ‘다크 투어리즘’으로 뜨고 있다. 오늘 날의 목포, 그 자체가 한국근현대사다. 수탈과 억압, 설움의 역사가 목포 곳곳에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여기에 최근 현대사의 비극을 영상으로 되살린 관광명소가 생겼다. 72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1987’의 촬영지 ‘연희네슈퍼’다. 연희네슈퍼가 있는 영화 속 배경은 19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낡고 추레한 바닷가 달동네 ‘서산동’이다.

이 곳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인 목포신항에는 ‘촛불혁명’의 진원으로, 생각만해도 울컥이고 가슴 먹먹한 세월호가 누워있다.



◇오욕과 수탈로 세운 근대건축

목포는 1897년 10월1일 개항과 함께 성장해 일제강점기때 전성기를 누렸다. 이 때문에 목포 원도심 목원동 일대에는 수탈과 오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근대건축유산이 즐비하다.

일제강점기 목포는 일본인 생활권의 ‘남촌’과 조선인 생활권의 ‘북촌’으로 나뉘어졌다. 식민 지배세력의 주거지인 남촌은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계획도시로 조성됐다. 반면 수탈의 대상이 된 조선인들이 산기슭으로 쫓겨 생성돼 다닥다닥 달동네다.

근대문화유산은 대부분 남촌에 남아있다. 옛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목포청년회관, 동본원사 목포별원, 목포 양동교회, 호남은행, 목포 심상고등소학교 강당, 정명여학교 선교사 사택 등 144개 근대건축물이 널려있다.

조대형 전남 문화관광해설사는 “목포에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이유는 개항지 중 부산·인천은 땅값이 크게 오르면서 개발붐이 일었던 반면, 목포와 군산은 가난한 탓에 주택을 고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중 일본영사관과 동척은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관인 일본영사관은 식민지배의 심장부였고, 2관인 동척은 경제수탈의 전위대였다.

당시 목포는 우리나라 3대 항구 6대 도시에 꼽힐 정도로 번성했다. 대륙침탈의 교두보이자 내륙물산의 집산지였다. 목포항에는 언제나 새해얗게 눈부셨다고 했다. 일본으로 공출되는 ‘삼백’(쌀·목화·소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진게 많아 지킬 것도 많았다. 일본영사관 뒷편에는 80m가 넘는 대형 방공호가 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었다. 하지만 이 방공호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삽과 곡괭이로 뚫은 노역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영사관을 나서면 일본식 집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일반 가정집에서 상점으로 간판을 바꿔달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본식 가옥 틀을 유지하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목포시는 ‘다크 투어리즘’을 좀 더 체계화하기 위해 근대문화역사거리를 조성할 계획이다. 옛 심상소학교 강당이 있는 유달초등학교부터 목포근대역사관 2관을 지나 목포문화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영화 ‘1987’ 속 시국 논하던 ‘연희네슈퍼’

시대의 아픔을 다룬 영화 ‘1987’이 723만 관객을 끌어모으면서 87년 6월 항쟁을 공감했다.

여주인공 연희(김태리)는 풋풋한 87학번 신입생이다. 마이마이(휴대용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던 평범한 여학생이, 주변인들이 고초를 겪자 항쟁에 나선다는 줄거리다.

영화 속 연희가 살던 집이 달동네 구멍가게 ‘연희네슈퍼’다. 엄마(김수진), 교도관인 외삼촌(유해진)과 함께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가난한 삶의 현장이다. 영화 속에서 이한열(강동원)과 연희는 슈퍼 앞 평상에서 시국을 논하고, 이한열의 죽음 소식을 접한 연희가 시위현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영화 ‘1987’ 속 ‘연희네슈퍼’가 목포에 있다. 전형적인 목포의 바닷가 달동네 서산동이다. 이 곳은 198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개발이 비켜간 까닭이다.

이 가게가 문을 연 건 1994년, 영화 ‘1987’을 찍기 전까지 문구사로 영업을 했다. 집주인이 이사를 하면서 폐업한 가게를 촬영장으로 만들었다. 영화제작사는 이 가게에 해태상이 들어있는 간판을 내걸고, 신문·잡지를 함께 파는 동네 구멍가게로 활용했다.

‘1987’의 배경이 서산동이라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목포시는 관광상품화에 나섰다. 연희네슈퍼를 영화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앞으로 총예산 266억원을 들여 도시재생뉴딜사업을 추진,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의 동피랑마을처럼 삶의 애환이 담긴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아쉬움도 있다. 영화촬영지 안내판이 터무니없는 곳에 설치돼 있다. 영화촬영지를 찾는 이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데 안내판이 가로막는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연희와 이한열이 되고자 해도 안내판이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슴 먹먹한 세월호, 지척에

연희네슈퍼에서 자동차로 10분거리에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신항이 있다. 목포에 왔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가슴 시린 현장이다.

세월호는 현재 직립 작업 중이다. 세월호의 진실을 바로세우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5명의 미수습자를 찾기 위함이다. 바로세우기 디데이(D-Day)는 5월31일이다.

목포신항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노란리본이 수없이 나부낀다. 그리고 그 노란리본들은 다짐한다. ‘4·16을 잊지 않겠다’고.



/목포=글·사진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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