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케미스트리를 부탁해
2018년 02월 22일(목) 00:00 가가
케미스트리(chemistry). 우리말 뜻은 화학(化學)이다. 기계공학과, 자동차공학과, 화학공학과 할 때 그 화학. 그리고 영어사전의 세 번째 항목에는 ‘화학 반응’이라는 설명도 보이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끌리는 것을 가리킴’이라고 돼 있다. 이 경우 대부분 성적 끌림을 뜻한다고 한다.
이토록 과학적이지만 요사스럽게도(?) 보이는 이 영어 단어가 한국어 사용자, 특히 스포츠팬들에게는 일종의 숙어가 되어 통용되고 있다. 케미스트리. 줄여서 ‘케미’라고 부른다. 팀 스포츠에서 선수 간의 호흡과 융화를 일컫는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조직력이 좋다” “호흡이 잘 맞는다” 같은 말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따지자면 경기장 안과 바깥, 모든 공간과 시간에서의 화학적 결합에 가까울 것이다.
최고의 선수만 모아 놓는다 하여 저절로 우승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체 종목에서의 케미는 개개인의 능력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윤활유가 된다. 팀을 조직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며, 골이나 승리라는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달하게 한다.
현대 스포츠에서 코치나 감독의 역할 또한 이러한 케미를 잘 관리하는 것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특히 기량이 정상급에 올라선 프로선수나 국가대표 선수에 경우, 개인의 수준을 바꾸는 것보다, 그 수준들의 조화를 잘 끌어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때 ‘악의 제국’이라 불리며 대형 선수를 싹쓸이해 갔던 뉴욕 양키즈 또한 우승의 열매는 최고액 선수들마저 팀의 규율에 충실히 복무함에 따라 가능했다. 세계적 스타들을 모으는 ‘갈라티코 정책’을 펼쳤던 레알 마드리드 또한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감독이 필요했다.
성공리에 진행 중인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케미스트리는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적 찬사와 여러 논란을 함께 겪으며 탄생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선수 간 호흡이 더욱 중요한 구기 종목이라는 점에서 남과 북의 선수들이 팀 케미를 잘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기술력과 체력에서 하키 강국과 워낙 큰 격차를 보였기에 단일팀은 패배를 감당해야 했지만, 최선을 다해 얼음을 지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감히 화학적 결합을 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서로를 안아 주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정치적 단일팀 그 이상의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빙판에 넘어지는 실수를 범하고도 빠르게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 오히려 1위로 결승에 진출한다.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금메달. 신체 접촉과 몸싸움이 빈번하여 변수가 흔한 종목에서 선수들의 긴밀한 호흡은 변수를 최대한으로 줄이며 개개인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올림픽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여자 컬링 대표팀의 경우, 서로를 믿고 의지함이 스톤 하나하나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대회 최고 유행어일 것이 분명한 ‘영미!’는 팀 케미의 상징이 되었다. 어쩐지 외롭고 불안한 순간에 ‘영미!’라고 외치면 나를 도울 누군가 나타나 내가 던진 스톤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줄 것만 같은 사람이 필자뿐은 아닐 것이다.
사실 팀 케미스트리라는 용어는 더그아웃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연봉 수억 원의 베테랑에서부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선수까지, 팀의 연고지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부터 시즌 직전에 이적해 온 선수까지, 프로야구는 화학으로 치면 다양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물질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것, 즉 선수들의 케미스트리를 증대시키는 것은 우승의 필수 조건이다. 이따금씩 야구 뉴스를 장식하는 팀 내 파벌과 불화, 태업과 폭력은 케미의 부족에서 발생한다. 물론 그런 팀의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올림픽에서는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의 논란이 그렇다. 연맹에 대한 비판, 특정 선수에 대한 비난 모두를 차치하고, 그들은 팀으로서의 케미가 의심의 여지 없이 낙제였다. 당연히 성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예선 탈락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케미스트리는 기술이 아닌 정신이다. 이를 스포츠 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팀과 함께한다는 정신. 게다가 무대는 올림픽이 아니었던가.
KIA 타이거즈의 캐치프레이즈는 몇 년째 ‘동행’이다. ‘케미’의 격조를 높인 표현처럼 보인다. 타이거즈는 동행 정신으로 훌륭한 경기를 다른 팀보다 더 많이 만들어 냈고, 그 결과들이 쌓여 통합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야구팬의 진짜 기쁨은 (물론 우승 장면을 보는 것이지만) 우리 팀의 케미를 발견할 때다. 에이스 투수와 제1포수의 든든한 호흡, 유격수와 2루수의 화려한 호흡, 프런트와 현장의 보이지 않는 호흡…. 그런 것들을 팬들은 기대하고, 그런 것들이 이뤄질 때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면 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림픽의 모든 선수와, 이제 곧 시작할 야구의 모든 선수가, 동료와 팬 모두 함께하는 화학적 스포츠 정신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팬은 그들의 플레이에 기꺼이 동행할 것이다.
<시인>
최고의 선수만 모아 놓는다 하여 저절로 우승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체 종목에서의 케미는 개개인의 능력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윤활유가 된다. 팀을 조직적으로 더 강하게 만들며, 골이나 승리라는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달하게 한다.
또한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빙판에 넘어지는 실수를 범하고도 빠르게 다음 플레이를 이어가 오히려 1위로 결승에 진출한다.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금메달. 신체 접촉과 몸싸움이 빈번하여 변수가 흔한 종목에서 선수들의 긴밀한 호흡은 변수를 최대한으로 줄이며 개개인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올림픽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여자 컬링 대표팀의 경우, 서로를 믿고 의지함이 스톤 하나하나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대회 최고 유행어일 것이 분명한 ‘영미!’는 팀 케미의 상징이 되었다. 어쩐지 외롭고 불안한 순간에 ‘영미!’라고 외치면 나를 도울 누군가 나타나 내가 던진 스톤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줄 것만 같은 사람이 필자뿐은 아닐 것이다.
사실 팀 케미스트리라는 용어는 더그아웃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연봉 수억 원의 베테랑에서부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 선수까지, 팀의 연고지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프로 생활을 하는 선수부터 시즌 직전에 이적해 온 선수까지, 프로야구는 화학으로 치면 다양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물질을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는 것, 즉 선수들의 케미스트리를 증대시키는 것은 우승의 필수 조건이다. 이따금씩 야구 뉴스를 장식하는 팀 내 파벌과 불화, 태업과 폭력은 케미의 부족에서 발생한다. 물론 그런 팀의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올림픽에서는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의 논란이 그렇다. 연맹에 대한 비판, 특정 선수에 대한 비난 모두를 차치하고, 그들은 팀으로서의 케미가 의심의 여지 없이 낙제였다. 당연히 성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예선 탈락이라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케미스트리는 기술이 아닌 정신이다. 이를 스포츠 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팀과 함께한다는 정신. 게다가 무대는 올림픽이 아니었던가.
KIA 타이거즈의 캐치프레이즈는 몇 년째 ‘동행’이다. ‘케미’의 격조를 높인 표현처럼 보인다. 타이거즈는 동행 정신으로 훌륭한 경기를 다른 팀보다 더 많이 만들어 냈고, 그 결과들이 쌓여 통합 우승을 이룰 수 있었다. 야구팬의 진짜 기쁨은 (물론 우승 장면을 보는 것이지만) 우리 팀의 케미를 발견할 때다. 에이스 투수와 제1포수의 든든한 호흡, 유격수와 2루수의 화려한 호흡, 프런트와 현장의 보이지 않는 호흡…. 그런 것들을 팬들은 기대하고, 그런 것들이 이뤄질 때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면 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림픽의 모든 선수와, 이제 곧 시작할 야구의 모든 선수가, 동료와 팬 모두 함께하는 화학적 스포츠 정신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팬은 그들의 플레이에 기꺼이 동행할 것이다.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