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남지 - 전라도 들여다보기] 구례 화엄사와 山神 신앙 - 김형주
2017년 09월 19일(화) 00:00
구례 화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없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에 인도 출신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7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화엄사를 중창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얇은 직사각형 돌판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자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가 확장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잘 유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 외벽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전란으로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돼 있다.

1630년에 벽암대사가 재건을 시작해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복원,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이후 계파(桂波)스님이 그 뜻을 이어받아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여기에는 수많은 주옥같은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건물을 배치하지만, 화엄사는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중심 부처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 국보 제35호인 4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앞 사자탑,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소속하는 암자로는 구층암·금정암·지장암이 있다.

예로부터 명산거악(名山巨嶽)에는 하늘의 신비로운 기운이 담겨있다 해서 숭배와 경외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악 금강산, 서악 묘향산, 남악 지리산, 북악 오대산, 중악 북한산을 떠받들던 오악(五嶽)의 산신신앙이다.

화엄사가 자리잡고 있는 지리산은 남쪽의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삼국시대에는 지리산신사,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남악사라(南岳寺)라는 사당이 세워져 산신을 모셨다. 고대신화에서 주인공의 어머니신을 성모(聖母)라 하였는데, 이러한 성모의 신성성이 확대되어 산신의 명칭으로까지 나타나게 된다.

지리산의 성모는 천왕봉에 기거하는 여산신을 지칭하는데, 산신으로 자리 잡은 할머니신을 한자어인 마고(麻姑) 또는 노고(老姑)라 불렀다. 산신할미 대신에 마고와 노고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삼국시대 초기 한자가 유입되어 사물들에 중국식 표기가 일반화되면서 부터이다.

구례의 남악사에서는 매년 곡우절 시기인 4월20일 무렵에 ‘지리산 남악제’를 개최한다. 마고할머니의 숭고한 음덕을 기리는 산신제를 거행하고 대지의 생명력이 담긴 고로쇠약수를 마시며 지리산 자락의 거주민과 서식하는 많은 동식물의 안녕과 번성을 기원하는 것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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