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의 독일이야기
⑧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2017년 09월 14일(목) 00:00 가가
아직도 5·18이냐고? 독일의 참회를 보라
얼마 전 자서전 출간 때문에 방한한 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 독일 외신기자 힌츠페터가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는데 그 이야기를 담은 ‘택시운전사’를 보고 슈뢰더 총리가 눈물을 흘렸다니 독일과 한국의 인연이 새삼스럽다.
독일에 머무는 동안 필자도 독일 영화를 보고 왈칵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나치에 저항하다 처형된 뮌헨 대학생 소피 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을 보다가 필자의 80년대가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재에 반대하고,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히려다 죽어간 이철규, 표정두, 의과대학에 다니다 간첩조작사건으로 14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내 친구 강용주가 생각났다. 영화를 보고 난 후 10월 어느날 저항의 현장, 뮌헨대학을 방문했을 때도 ‘다시 돌이켜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던 소피 숄의 말이 떠올라 숙연해졌다. 그 대상이 독일인이든, 유태인이든, 광주사람이든 인간에 반하는 참혹한 범죄는 슬픔을 주고, 그에 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게 나치의 고통스런 역사, 비밀경찰 슈타지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친일의 역사, 군부독재의 역사가 있다. 두 나라의 문화적 정서적 공감대가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두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독일의 노력은 전방위적이다. 무엇보다 법과 제도로 과거범죄를 단절한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브란트는 폴란드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고, 교과서에는 불편한 나치의 역사를 그대로 수록했다. 베를린 도시 중심인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세웠다. 또 지난해에는 홀로코스트 학살박물관을 열어 상처의 역사를 드러냈다. 나치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이 신분에 관계없이 죄 값을 치른다. 국민들을 감시대상으로 삼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 관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통독의 공무원이 되거나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법을 통해 엄격히 규제를 한다. 이런 제도를 뒷받침하는 것은 ‘반성’의 힘이다. 그 반성은 교육을 통해서 유지되고 강화된다. 그래도 누구 하나 ‘아직도 나치 청산이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청산은 어떠한가. 자국의 군인이 총칼로 자국민을 학살했던 역사가 아직 제대로 진상규명도 안 됐는데 ‘아직도 5·18이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대동고에 다닐 때 5·18을 겪었고, 친구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기억, 사촌형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누나와 함께 전남대병원 인근 흰 광목천에 뒤덮인 시신들 사이를 헤맸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한데. 피멍이 든 채 죽어간 이철규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전남대병원 영안실에서 밤을 지샌 기억,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3년 7개월 옥살이를 했던 기억, 5·18을 알리는 시민봉사단 오월의 빛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는데, 아직도 5·18이냐는 말은 참으로 아프고 허망했다. 가족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이 눈물로 불렀던 노래를 5·18기념식장에서 제창하지 못하는 때가 엊그제다. 그래서 독일에서 생각했던 것이 법과 제도를 통해서만 역사청산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대선국면에서 강기정표 공약으로 불리는 ‘5·18 정신의 헌법전문화’를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또 하나의 무거운 숙제가 남는다. 제도와 법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도록 우리들 각자도 ‘일상의 민주주의자’가 되어야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역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홀로코스트 기념비 앞에서 메르켈 총리가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12년의 의정활동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erlin)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 1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강기정의 독일이야기〉는 정치인 강기정이 12년의 의정활동을 잠시 멈추고, 베를린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erlin)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머물며 기록한 독일의 industry4.0, 에너지, 경제, 정치 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 1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