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한 전남대 교수·아시아문화학회장] 지역과 대학 그리고 축제
2017년 08월 23일(수) 00:00
9월이 오면 대학은 개강과 함께 대학축제로 온통 들썩이게 된다. 그런데 학문과 취업 스트레스로부터 일시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고, 대학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의 회복 그리고 대학 구성원 간의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이루어내고 있는 대학축제는 한국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의 본질적 가치와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는 동떨어진 공연과 주점활동, 게임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들로 채워진 대학축제는 모방과 상업성에 매몰되어 있다. 이제 대학축제가 대학문화와 대중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할 시점에 이른 듯하다.

필자는 지난해 9월 소속 대학교의 대학축제 방문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대학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결과가 도출되었고, 그 결과는 대학축제의 직접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대학생들의 인식 및 평가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생들은 대학축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 필요’(1위)와 ‘대학만의 문화적 정체성 반영’(2위), ‘대학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축제’(3위)라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의 필요’라는 항목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학축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 수립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매년 치러지고 있음에 대한 지적으로 보인다.

대학축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의 수립이 필요한 이유는 대학만의 문화적 정체성의 확립과 그 정체성을 반영하는 축제의 기획력과 전문성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의 수립의 필요성은 2순위를 차지한 ‘대학만의 문화적 정체성 반영’이라는 항목과 연동돼 있다. 3위를 차지한 ‘대학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축제’는 대학 캠퍼스에 국한되는 축제의 공간적 범위의 문제와 지역사회와 함께하지 못하는 축제의 확장성 부재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 대학축제가 갖고 있는 한계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을 잘 해결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유럽 포르투갈 꼬임브라(Coimbra) 시에 위치한 꼬임브라대학 축제의 얘기이다. ‘께이마 다스 휘따스’(Queima das Fitas)로 불린다.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인 ‘리본 태우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이 축제가 대학만의 축제가 아니라 시의 대표축제로 기능하고 있으며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졸업식이 바로 대학축제라는 사실이다. ‘리본 태우기’는 모든 것을 마치며 모든 사람과 함께한다는 의미이며 여기서 리본은 학사과정 중 책 파일을 묶는데 사용했던 리본을 가리킨다.

졸업예정자들은 재학 기간 내내 간직해 온 소속 대학을 상징하는 색깔의 리본을 큰 솥 안에 넣고 태운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해당 졸업예정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적힌 리본은 기도나 축원처럼 태워지게 되는 것이다.

‘께이마 다스 휘따스’ 축제의 또 하나의 핵심 프로그램은 ‘꼬임브라 파두(fado) 부르기’이다. 꼬임브라 대학축제가 포르투칼의 전통음악인 파두와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꼬임브라 대학축제의 역사성과 정체성이 대표 프로그램과 잘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수세기에 걸쳐 계승되어 온 음악으로,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이자 사랑을 찬미하는 세레나데인 꼬임브라 파두가 불러진 곳은 다름 아닌 꼬임브라 대학이기 때문이다. 5세기 이상 파두가 발전해온 꼬임브라 시가 대학도시이자 문화도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처럼 대학의 고유성과 문화적 정체성 확립의 토대가 되고 있는 꼬임브라 대학축제는 지역문화의 경쟁력을 키우는 시의 대표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학축제가 지역 활성화를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축제 공간도 대학으로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캠퍼스와 시 도처에서 진행되는 점도 시의 대표 축제임을 확인해준다.

실제로 학생들의 거리 공연과 퍼포먼스 외에도 미술 전시회와 영화, 연극제, 투우, 스포츠 행사와 같은 다양한 문화행사와 축제 프로그램들이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다. 이처럼 꼬임브라 대학축제는 시의 대표축제로서 대학과 시의 문화적 정체성의 산물인 꼬임브라 파두의 대중화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의 어메니티(Amenity)를 높이고 있다. 대학 축제만으로 매년 6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꼬임브라 시로 유인하며 대학과 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는 점은 우리 대학과 광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축제가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윤택하게 해줌과 동시에 대학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창조적인 대중문화로 견인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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