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호남지] 담양과 대나무문화 - 김형주
전라도 들여다보기
2017년 07월 25일(화) 00:00
담양은 백제시대에 추자혜군(秋子兮郡)이었고, 통일신라 시기인 757년에는 추성군(秋成郡)으로 고쳐 불렀다. 백제 때 굴지현(屈支縣)이었던 창평면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면서 기양현(祈陽縣)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인 995년 담주(潭州)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담양(潭陽)으로 고쳐져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초기 1413년 담양도호부로 승격된 후 몇 차례의 강등과 승격을 거듭하였으며, 1895년 23부제 실시로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다.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창평군이 폐지되어 통합되었고, 광주군 대치면·갈전면(대전면의 전신)이 편입되었다.

오늘날 담양은 광주생활권의 핵심적인 관광위락지역으로서 전국적으로 자연생태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대도시 권역에서 죽녹원과 인근의 관방제 및 메타 가로수길이 복합되어 천혜의 관광지로 성장하였는데, 관광발전의 배경에는 대나무자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나무는 화본과(禾本科·벼과)의 다년생 초본난대식물로 지구상에 120속 1300여종이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중부이남 지역에 왕대, 솜대(분죽), 맹종죽, 조릿대 등 4속 14종이 자생하고 있다. 왕대와 솜대는 주로 공예품재료로 쓰이고, 맹종죽으로는 죽순을 생산한다.

대나무는 삼국시대를 전후로 한 시기부터 화살의 재료나 죽창 등 무기용으로 사용되어오다가,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생활문화의 발달로 다양한 집기의 수요가 발생하였던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공예재료로 본격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1980년대까지도 대나무는 죽세공예품의 원료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나무는 주로 소쿠리, 삿갓, 키, 대나무발(죽렴), 참빗 등을 만드는 죽세공예품의 원료로 쓰였다.

죽세공예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바구니, 채반, 부채, 채상 등 각종 기물을 만드는 죽물공예를 비롯해 죽순껍질(竹皮)로 방석이나 3합 상자 등을 만드는 죽피공예, 대나무의 표면에 달구어진 인두로 그림을 그리는 낙죽(烙竹)공예 등 크게 3종류로 나누어볼 수 있다. 죽공예 장인으로 참빗장, 채상장, 죽렴장, 낙죽장 등이 있다.

오늘날 바구니, 광주리, 석작 등 전통적인 세간살이의 수요는 급감하고, 대나무자리, 자동차용 방석, 찻상, 바둑판 등 현대적 생활용품들이 인기가 높다. 그러나 죽공예품은 실생활용품 보다는 다양한 장식용품으로 이동하는 추세를 보여주며, 대나무는 공예품 이외의 용도로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대나무 숲을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으로 만들고, 용기에 쌀·콩·밤·대추를 넣고 쪄서 대나무의 그윽한 향취를 맛보는 대통밥, 식용·미용재료로 이용되는 대나무의 진액인 죽력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죽세공예품은 생활문화의 서구화와 값싼 외국산 제품에 밀려 사양산업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올곧은 기상과 꺾이지 않는 굳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는 이제 기능성과 신산업화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시점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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