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 (5) 왕후는 왜 불사신 아킬레우스를 연모했을까
2017년 06월 15일(목) 00:00 가가
코르프 아름다운 궁전에 슬픈 사연이 가득하여라
다음 기항지는 ‘봉우리 마을’이란 뜻의 코르푸. 그리스어로는 케르키라라고 한다. 이오니아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데 아드리아 해의 관문으로 코르푸 역시 오랫동안 해양세력들이 각축을 벌인 역사의 상흔이 있다. BC 3세기말 로마가 코르푸를 침략하여 동방진출의 거점으로 삼았던 이후부터 침탈의 역사는 시작한다. 로마 뒤를 이어서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4차 십자군 동방원정 때는 베네치아령(1389∼1797), 그리고 프랑스령(1797∼1815), 그 다음에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864년에야 그리스로 복귀하였던 것이다.
일행은 코르푸로 향하는 동안 홍기삼 은사님 객실로 모인다. 모두가 기대했던 선상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아드리아 해의 날씨는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빗발이 오락가락하던 코토르를 벗어나 이오니아 해가 보이는 지점부터는 바다에 떨어지는 햇살이 금싸라기 같다. 물론 잠시의 축복이겠지만.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노학자가 묵는 객실로 하나 둘 모인다. 노트와 필기도구를 지참한 사람도 보인다. 마치 캠퍼스 안의 은사님 연구실로 모인 학생들 같다. 은사님 강의의 특징은 누가 뭐래도 적절한 문어체 구사와 세련된 언어의 격조이다. 준비해 오신 강의노트도 없는데 야단법석 같은 선상강의를 시작하신다.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밖을 내다보면 햇빛은 유난히 눈부시게 빛나지요, 물결도 잔잔하지요, 물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진짜 멋진 항해를 우리들은 하고 있지요. 그런데 골치 아픈 그리스 철학을 먼저 얘기하면 여행의 감흥이 깨질 것 같으므로 여러분이 관심사로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얘기해 보지요.”
문학평론가인 은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그리스철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지만 딱딱한 얘기를 먼저 하면 여행의 감흥이 깨질 것 같다며 요즘 시대에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 예를 들어 흥미를 유발하신다.
“아버지하고 아들이 있는데 부자가 며칠을 굶었지요. 아주 허기져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데 아버지하고 아들한테 빵이 한 개 생겼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얼마 살지 못할 늙은이고, 아들은 식욕이 왕성한 젊은이에요. 이 빵 한 개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경영학자들이나 사회이론가들은 절반씩 나눠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겠지요. 그런데요, 아들이 그 빵을 아버지에게 다 드립니다. 당연히 다 드려야지요. 자식 된 도리로 생각할 때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주로 유럽인 승객들은 지금쯤 웃통을 벗고 10층 수영장에서 물속에 들어가 있거나 벤치에 누워 선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은사님의 선상강의를 들으며 영혼의 선탠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요, 아들에게 받은 빵을 아버지가 어떻게 먹겠습니까? 고약한 아버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혈기방장하고 식욕이 왕성한 아들이 굶주리도록 놔두겠어요. 아들이 준 빵을 아무 생각 없이 먹겠느냔 말이에요. 아들아, 네가 나보다 할 일이 많으니 네가 먹어야 된다. 너는 이 빵을 먹고 미래에는 더 활기 있게 활동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이러해야 하고 이것이 부자간의 도리지요. 그런데 요즘 현대시대는 아버지와 아들이 빵 한 개를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라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래서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인문학이 필요한 거예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빵을 주고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려주는 이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마음속에 인문학의 방향이 있다고 봐요.”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굶주린 부자를 예로 든 은사님의 결론은 현학적이지 않고 명쾌하다. 사람의 도리,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 또 인간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열성, 이런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좋은 인연에 따라서 인간관계는 달라지지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의 세상은 정말 삭막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사람은 불행하겠지요. 나처럼 애제자, 이렇게 좋은 제자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하시다는 은사님의 말씀인데, 사실은 제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제자들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은사님을 모시고 떠난 이번 여행도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자는, 은사님이 강조한 인문학의 방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배가 코루프 섬의 크루즈 선착장에 접안하자 갑자기 날씨가 흐려진다. 일행은 우산을 챙겨 하선해 택시기사와 흥정을 한다. 갑자기 비가 내릴지 모르니 빠르게 이동해 답사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행이 먼저 가기로 한 곳은 아킬레온 궁. 크루즈 선착장에서 10km 거리이니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아킬레온 궁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후 엘리자베스가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한 뒤 마음을 달래기 위해 1890년에 여름별장으로 짓기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리스신화에 심취한 시시(왕후 애칭)는 그리스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염두에 두고 궁을 설계했단다. 다 알다시피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그를 넣었다가 빼었는데, 테티스가 잡고 있던 발 부분이 물에 잠기지 않아서 발꿈치가 그의 유일한 약점이 된다. 이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 때 헥토르를 전사시키고 그의 무덤에서 눈물 흘리던 트로이 공주 폴릭세네의 예쁜 자태를 보고 청혼을 한다. 그러나 불사신 아킬레우스는 아폴론의 팀블레 신전에서 폴릭세네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였으나 아폴론의 신상 뒤에 숨어 있던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서 죽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숨어 있는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이유로 합스부르크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코르푸 섬에 별장을 지었을까. 폐쇄적인 왕궁생활을 하다가 병이 난 그녀의 시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오, 제비야 나에게 너의 날개를 빌려 다오/ 나를 저 머나먼 들판으로 데려가 주려무나/ 기꺼이 나는 내 사슬을 풀어버릴 텐데.’
그녀가 제네바에서 한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 뒤 1907년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궁전을 사들여 건물과 정원을 개조했고,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군사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그리스 정부 건물이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사사령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궁 입구로 들어가서 궁전 내부와 정원을 구경하는데 걸린 시간은 30여 분.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의 여파 때문일까. 1층의 엘리자베스 초상화와 정원의 아킬레우스 동상이 초라해 보인다. 정원사도 없는지 야자수들이 제멋대로 꺾어진 채 방치돼 있다. 실망했는지 일행 중에는 벌써 후문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다.
다음 목적지는 코르푸 요새. 택시는 코르푸 올드 타운 광장에서 멈춘다. 거기서부터 요새까지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는 코르푸 올드 타운을 유네스코에서 200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자랑한다. 올드 타운의 건물 대부분은 19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베네치아 시대의 건물도 일부 남아 있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이곳의 주요 건물들이 많이 파손됐지만 1953년 대지진 때는 주변의 섬들과 달리 코르푸는 무사하였단다.
요새로 가는 길가에 가게가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은사님도 상의 티셔츠를 구입해 입으신다. 긴팔 흰색 티셔츠가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 복장 같다. 조르바가 즐겨 입었을 옷 같기도 하고. 입장권을 구매한 뒤 천연의 해자 위로 난 다리를 건너가니 바로 요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대포가 거치돼 있고, 군사들의 숙소로 짐작되는 건물과 교회 등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니 코르푸 시가지와 이오니아 해의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든다. 정상까지 힘들게 오른 이들에게 요새가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새는 이방인에게 입장료만큼만 시간을 허락하는 듯하다. 갑자기 비바람이 돌풍처럼 인다. 우산을 폈지만 비바람에 바지가 젖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아버지하고 아들이 있는데 부자가 며칠을 굶었지요. 아주 허기져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데 아버지하고 아들한테 빵이 한 개 생겼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얼마 살지 못할 늙은이고, 아들은 식욕이 왕성한 젊은이에요. 이 빵 한 개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경영학자들이나 사회이론가들은 절반씩 나눠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겠지요. 그런데요, 아들이 그 빵을 아버지에게 다 드립니다. 당연히 다 드려야지요. 자식 된 도리로 생각할 때 그래야 한다는 겁니다.”
주로 유럽인 승객들은 지금쯤 웃통을 벗고 10층 수영장에서 물속에 들어가 있거나 벤치에 누워 선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은사님의 선상강의를 들으며 영혼의 선탠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요, 아들에게 받은 빵을 아버지가 어떻게 먹겠습니까? 고약한 아버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혈기방장하고 식욕이 왕성한 아들이 굶주리도록 놔두겠어요. 아들이 준 빵을 아무 생각 없이 먹겠느냔 말이에요. 아들아, 네가 나보다 할 일이 많으니 네가 먹어야 된다. 너는 이 빵을 먹고 미래에는 더 활기 있게 활동해야 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지요.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은 이러해야 하고 이것이 부자간의 도리지요. 그런데 요즘 현대시대는 아버지와 아들이 빵 한 개를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라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래서 사람의 도리를 말하는 인문학이 필요한 거예요. 아들이 아버지에게 빵을 주고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돌려주는 이와 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마음속에 인문학의 방향이 있다고 봐요.”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굶주린 부자를 예로 든 은사님의 결론은 현학적이지 않고 명쾌하다. 사람의 도리,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 또 인간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열성, 이런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좋은 인연에 따라서 인간관계는 달라지지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사람들의 세상은 정말 삭막하기 짝이 없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사람은 불행하겠지요. 나처럼 애제자, 이렇게 좋은 제자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지요.”
여행을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어 행복하시다는 은사님의 말씀인데, 사실은 제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제자들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은사님을 모시고 떠난 이번 여행도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자는, 은사님이 강조한 인문학의 방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배가 코루프 섬의 크루즈 선착장에 접안하자 갑자기 날씨가 흐려진다. 일행은 우산을 챙겨 하선해 택시기사와 흥정을 한다. 갑자기 비가 내릴지 모르니 빠르게 이동해 답사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행이 먼저 가기로 한 곳은 아킬레온 궁. 크루즈 선착장에서 10km 거리이니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다. 아킬레온 궁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후 엘리자베스가 외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한 뒤 마음을 달래기 위해 1890년에 여름별장으로 짓기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그리스신화에 심취한 시시(왕후 애칭)는 그리스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염두에 두고 궁을 설계했단다. 다 알다시피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자식을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물에 그를 넣었다가 빼었는데, 테티스가 잡고 있던 발 부분이 물에 잠기지 않아서 발꿈치가 그의 유일한 약점이 된다. 이후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 때 헥토르를 전사시키고 그의 무덤에서 눈물 흘리던 트로이 공주 폴릭세네의 예쁜 자태를 보고 청혼을 한다. 그러나 불사신 아킬레우스는 아폴론의 팀블레 신전에서 폴릭세네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였으나 아폴론의 신상 뒤에 숨어 있던 파리스의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서 죽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숨어 있는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이유로 합스부르크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코르푸 섬에 별장을 지었을까. 폐쇄적인 왕궁생활을 하다가 병이 난 그녀의 시에 답이 있는 것 같다. ‘오, 제비야 나에게 너의 날개를 빌려 다오/ 나를 저 머나먼 들판으로 데려가 주려무나/ 기꺼이 나는 내 사슬을 풀어버릴 텐데.’
그녀가 제네바에서 한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 뒤 1907년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궁전을 사들여 건물과 정원을 개조했고,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군사병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그리스 정부 건물이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군사사령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궁 입구로 들어가서 궁전 내부와 정원을 구경하는데 걸린 시간은 30여 분.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의 여파 때문일까. 1층의 엘리자베스 초상화와 정원의 아킬레우스 동상이 초라해 보인다. 정원사도 없는지 야자수들이 제멋대로 꺾어진 채 방치돼 있다. 실망했는지 일행 중에는 벌써 후문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다.
다음 목적지는 코르푸 요새. 택시는 코르푸 올드 타운 광장에서 멈춘다. 거기서부터 요새까지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는 코르푸 올드 타운을 유네스코에서 200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자랑한다. 올드 타운의 건물 대부분은 19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베네치아 시대의 건물도 일부 남아 있다고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이곳의 주요 건물들이 많이 파손됐지만 1953년 대지진 때는 주변의 섬들과 달리 코르푸는 무사하였단다.
요새로 가는 길가에 가게가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은사님도 상의 티셔츠를 구입해 입으신다. 긴팔 흰색 티셔츠가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 복장 같다. 조르바가 즐겨 입었을 옷 같기도 하고. 입장권을 구매한 뒤 천연의 해자 위로 난 다리를 건너가니 바로 요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대포가 거치돼 있고, 군사들의 숙소로 짐작되는 건물과 교회 등이 보인다. 정상에 오르니 코르푸 시가지와 이오니아 해의 쪽빛 바다가 한눈에 든다. 정상까지 힘들게 오른 이들에게 요새가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새는 이방인에게 입장료만큼만 시간을 허락하는 듯하다. 갑자기 비바람이 돌풍처럼 인다. 우산을 폈지만 비바람에 바지가 젖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