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의 ‘응답하는 사회학’] 대통령 선거와 대학교수
2016년 10월 20일(목) 00:00 가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년 조금 더 남았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대선 열기로 뜨거울 것이다. 벌써부터 ‘잠룡’이라고 불리는 여야 대선 후보자들의 물밑 작업이 시작되었다. 일단 당내에서 후보자로 선출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여러 정치인들이 당 안팎에서 최대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 위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혈연, 지연, 학연 등 온갖 연줄과 선거 자금을 활용하여 지지자를 결집하겠지만 보이는 곳에서는 그럴듯한 비전과 정책을 내세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싱크탱크다. 공식·비공식 채널을 가동하여 싱크탱크를 조직하고 산업과 노동, 통일과 국방, 교육과 복지, 환경과 에너지, 언론과 금융, 문화와 과학기술 등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여러 분야에서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몇 주일 전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가 ‘정책 공간 국민성장’이라는 싱크탱크를 발족시켰다. 여기에는 일차로 전국에서 50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참여했고 그 숫자는 연내에 100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은퇴한 원로 교수들이 고문과 자문위원을 맡고, 중진 교수들이 소장, 부소장, 정책위원장, 7개의 분과위원장을, 신진학자들이 10개의 추진단장을 맡았다고 한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고하는 ‘머리’에 해당하는 연구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think tank’라는 말 자체가 두뇌 집단 또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종합 연구 조직이라는 뜻이다). 먼저 정부의 각 부처마다 소속 연구소들이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통일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에너지 경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국가행융합연구소,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등이 그 보기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연구소, 광주전남연구원, 대구경북연구원, 대전발전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 전북연구원 등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한 연구소들이 즐비하다.
이런 연구소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연구소들이라면 삼성·현대·엘지 등 대기업들이 만든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소들이 있다. 기업연구소들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기능도 한다. 여당과 야당은 당내에 정책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국회의원의 보좌진들도 연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은 두뇌들이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마당에 대선을 앞두고 대학교수들이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싱크탱크를 급조하여 어떤 비전과 어떤 정책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아마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정책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여성들이 안심하고 출산·양육할 수 있게 하고, 노인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으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 등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대학교수들 가운데 누가 왜 어떤 이유에서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에 참여하는가를 묻고 싶다. 대학에도 한국연구재단 등의 연구 지원금을 받아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소들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대학 연구소의 장점이자 강점은 정부 출연 연구소나 기업 연구소에 비해 연구의 자율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뀌면 연구의 주제나 기조가 달라지는 정부 소속 연구소나 해당 기업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기업 연구소와 달리 대학 연구소는 장기적인 전망에서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기초가 되는 비당파적 연구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보편적인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다. 그래서 대학교수들의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연구에 터를 둔 공적 발언이 공신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수의 간판을 달고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싱크탱크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다면 그것은 대학교수 전체의 공신력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 불통과 무책임을 차마 그냥 보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교수가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그 ‘후보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 후보가 당선되면 ‘한 자리’ 할 사람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지식인의 공정한 의견으로 보지 않고 특정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올곧은 학자라면 연구의 자율성과 공신력 확보를 위해 특정 정파의 싱크탱크에 참여하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양극화하는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사심을 버린 채 사회 전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발언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사회학자·작가>
이런 연구소들이 공익을 위해 일하는 연구소들이라면 삼성·현대·엘지 등 대기업들이 만든 경제와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소들이 있다. 기업연구소들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기능도 한다. 여당과 야당은 당내에 정책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국회의원의 보좌진들도 연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평소에 이렇게 많은 두뇌들이 국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마당에 대선을 앞두고 대학교수들이 일시적으로 참여하는 싱크탱크를 급조하여 어떤 비전과 어떤 정책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아마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정책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늘리고 여성들이 안심하고 출산·양육할 수 있게 하고, 노인들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으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 등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대학교수들 가운데 누가 왜 어떤 이유에서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에 참여하는가를 묻고 싶다. 대학에도 한국연구재단 등의 연구 지원금을 받아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소들이 수없이 많다. 그리고 대학 연구소의 장점이자 강점은 정부 출연 연구소나 기업 연구소에 비해 연구의 자율성이 높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바뀌면 연구의 주제나 기조가 달라지는 정부 소속 연구소나 해당 기업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기업 연구소와 달리 대학 연구소는 장기적인 전망에서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기초가 되는 비당파적 연구를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보편적인 진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다. 그래서 대학교수들의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연구에 터를 둔 공적 발언이 공신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수의 간판을 달고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싱크탱크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다면 그것은 대학교수 전체의 공신력을 훼손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 불통과 무책임을 차마 그냥 보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교수가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그 ‘후보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그 후보가 당선되면 ‘한 자리’ 할 사람으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그의 의견을 지식인의 공정한 의견으로 보지 않고 특정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적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올곧은 학자라면 연구의 자율성과 공신력 확보를 위해 특정 정파의 싱크탱크에 참여하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양극화하는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사심을 버린 채 사회 전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발언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사회학자·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