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상
2016년 07월 26일(화) 00:00

[박누리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나는 효심이 깊은 딸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학교 동기들이나 후배들을 보면 한 달에 몇 차례 고향 집에 다녀오는데, 나는 기껏해야 명절에 한 번 내려가는 게 전부다.

내 고향은 버스를 타고 1시간 20분 정도만 가면 되는 곳이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에 왜 자주 가지 않았느냐 물어본다면 아르바이트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다. 실제로 휴학 신청을 하고 난 후로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화장품 가게, 빵 가게를 거쳐 지금은 근로장학생으로 학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주말에라도 다녀오면 되지 않냐 물어보면 그것에는 할 말이 없다. 나는 귀차니즘이 극심한 사람이다.

고향 친구들은 나를 ‘집순이’라고 부른다. 고향에서도 휴일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았고, 지금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 작은 자취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나에게 휴일은 집에서 쉬는 날이다. 그런 내가 휴일에 시내버스로 40분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해 또다시 버스로 1시간이 넘는 거리로 이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험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결코 효심이 지극한 딸은 아니다.

극심한 귀차니스트 집순이인 내가 며칠 전 고향에 다녀왔다. 방학기간 동안 하려고 했던 주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렸기 때문이다. 방학의 대학가 매장에는 주말에만 근무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은 사치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짜증이 솟은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신나게 고자질을 했다. 함께 열을 올리던 엄마는 문득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집에 좀 오면 되겠네”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자취방에 혼자 있어야 할 고양이를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차려 주는 밥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응. 근데 금요일 말고 토요일에 갈게. 하루만 자고 올래”라고 대답했다. “토요일 점심 맞춰서 갈게. 돼지고기 김치 찜 먹고 싶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요일 점심시간에 도착한 집에는 역시 돼지고기 김치 찜이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에는 비빔국수를 먹었고, 일요일 점심으로는 대패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마지막 식사인 일요일 저녁에는 등갈비 찜을 먹었다.

큰 오빠는 나를 위해 준비된 밥상에 “자식 하나 더 와 있다고 매번 메뉴가 바뀌네. 원래는 하루에 찌개 하나로 버티면서” 라고 툴툴 거렸다. 엄마는 “혼자 살면서 잘 못먹으니까 왔을 때라도 잘 먹이고 싶어서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머쓱해졌다. 내가 자주 내려왔다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밥상이 차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마트에 다녀온 엄마의 손에는 내가 챙겨갈 복숭아가 들려 있었다. 저녁까지 먹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너무 어두워진다고 걱정하던 엄마는 결국 복숭아를 차에 실었다. 그렇게 자취방까지 엄마의 차를 타고 안전하게 올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눈이 일찍 떠져 복숭아를 깎아 먹었다. 복숭아 껍질을 위생 봉투에 담으면서 이틀은 너무 짧았다고 불평했다. 출근해서 먹은 점심과 집에 돌아와 끓여 먹은 라면이 어제의 밥상과 차이가 커서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복숭아를 깎아 먹었다. 점점 줄어드는 복숭아가 못내 아쉬웠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다시 집순이의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저녁으로 햄을 넣은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가 양이 너무 많아 이틀이나 먹어야 했다. 다 먹어 치운 복숭아를 생각하며 ‘여름이 가기 전에 몇 번 더 사다 먹어야지’ 말만 하고 있고, ‘믹서기를 사다가 과일 주스를 종종 만들어 먹어야지’ 역시 생각만 하고 있다.

“이번 방학이 끝나기 전에 다시 집에 다녀와야지. 정말로, 꼭 다녀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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