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2016년 05월 13일(금) 00:00 가가
남매는 모두 미혼으로 무직이었다. 아들은 서울의 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시에 실패한 뒤 특별한 직업 없이 지내왔다고 한다. 딸은 몇 년 전까지 교회에서 일했지만 최근에는 무직 상태다.
이들 40대 남매가 광주에서 늙은 아버지(78)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해야 할 어버이날에 그런 일을 자행했다. 충격이다. 자식들은 왜 카네이션 대신 혼자 사는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았을까.
우선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다. 아들(43)은 경찰조사에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와 폭행에 시달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을 저지른 딸(47)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어머니를 아버지가 돌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욕심이 범행 동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의 어머니는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이후 새로운 여자 친구(75)를 사귀고 있다. 경찰은 “남매가 최근 아버지를 찾아와 아파트 문서를 달라고 하는 등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를 보면 이들 남매가 상속받고 싶은 아파트를 새로 사귄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 빼앗길까 봐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이번 패륜((悖倫) 사건은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과 재산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참으로 말세로다’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치·도덕·풍속 따위가 아주 쇠퇴하여 끝판이 다 된 세상이 바로 말세(末世) 아닌가. 며칠 전에는 경기도 토막살인 사건 범인을 잡고 보니 너무도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왜 이처럼 극악무도한 범죄가 자꾸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무래도 늘어나는 청년실업에, 40대 고용 감소폭도 외환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할 만큼 모든 것이 엉망인 헬조선(Hell+朝鮮:지옥 같은 대한민국)에 살다 보니, 미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닌 세상이 되고 만 것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2050년이 되면 한국이 세계 두 번째로 노인 인구가 많을 것이라고 발표한 통계 자료도 있고 보면, 급격히 진행되는 노령화사회의 폐해가 벌써부터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니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는 인간관계 특히 자식과의 관계를 새로 배우고 정비해야 하는 것이 제1순위로 할 일이다”라는 고광애(78) 노년 전문 저술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영화감독 임상수 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고 여사는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2015)라는 책에서 자식의 효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효심 총량 불변의 법칙’을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 여든 살을 코앞에 둔 고 여사는 “내 딸의 효심 총량이 소진되어 지치게 될까 봐 나는 백 살을 사는 게 걱정스럽다”고 토로하면서, 자식들 효심의 총량이 고갈돼서 힘들지 않게 해 주는 것이 100세 부모들의 할 일 아니냐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줄 ‘역 효도’라는 충고다.
중국의 고전인 ‘예기’(禮記)에는 50세를 애(艾), 60세를 기(耆), 70세를 노(老), 80∼90세를 모( )라고 했다. 이 중에서 50세를 말하는 애(艾)는 쑥 ‘애’ 자이니, 머리털이 쑥처럼 허옇게 세었다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이 바로 애년(艾年: 50세)에 사망했는데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지금, 50∼60세는 경로당에서도 아예 받아주지 않을 정도다.
20세기 이후 수명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년이 길어지자 최장수국 일본에서는 한때 ‘0.7 곱하기 나이 셈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현재의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 실생활 나이로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셈하면 50세는 고작 35세, 60세는 42세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유엔의 새 연령 분류에 따르면 17세 미만은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가 노년, 그리고 100세부터가 장수 노인이다. 수명 연장은 과연 축복인 것일까. 사람이 90세가 넘도록 오래 살게 됐다며 마냥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요즘 같이 ‘헬 조선’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생명 연장은 말라 죽는 고통의 기간 연장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장년기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 노년기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신에게 영생을 약속받았으나 젊음을 유지해 달라는 소원은 잊었던 까닭에, 점점 늙고 쪼그라들어 작은 병 속에 갇힌 무녀(巫女). 그녀의 소원은 ‘고통의 끝’이었지만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성의 순환이 없기에, 만물이 소생하는 4월마저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노인빈곤율 세계 1위인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신화(神話) 속의 무녀처럼 참담하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자신을 위해서는 모은 돈 한 푼 없이 비참한 여생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어렵게 살면서도 부모를 봉양했건만, 정작 자신들은 자식들과 떨어져서 고독한 황혼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지공선사’(지하철 공짜 승객)의 나이가 내일모레이니, 조금 과장이겠지만 꼭 남의 일 같지만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노인들은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란 말은 백번 옳지만, 노인의 발언은 눈으로만 해야 된다고들 한다. 오죽하면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지갑만 열어라’는 말이 있겠나.
노인들 참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은 경로당부터 유세를 시작하지만, 나라도 외면하고 자식들도 기꺼이 받들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비록 빈손일지언정 그래도 무언가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선생은 95세 되던 해에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강 선생은 지난해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니….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다 쓰고 남은 쥐꼬리만 한 돈이나마,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면서 인생을 건강하게 후회 없이 살다 가야 할 텐데….
〈주필〉
이들 40대 남매가 광주에서 늙은 아버지(78)를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해야 할 어버이날에 그런 일을 자행했다. 충격이다. 자식들은 왜 카네이션 대신 혼자 사는 아버지의 심장에 칼을 꽂았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욕심이 범행 동기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의 어머니는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이후 새로운 여자 친구(75)를 사귀고 있다. 경찰은 “남매가 최근 아버지를 찾아와 아파트 문서를 달라고 하는 등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이를 보면 이들 남매가 상속받고 싶은 아파트를 새로 사귄 아버지의 여자 친구에게 빼앗길까 봐 범행을 저지른 것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니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는 인간관계 특히 자식과의 관계를 새로 배우고 정비해야 하는 것이 제1순위로 할 일이다”라는 고광애(78) 노년 전문 저술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영화감독 임상수 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고 여사는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2015)라는 책에서 자식의 효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효심 총량 불변의 법칙’을 주장한다.
그래서 지금 여든 살을 코앞에 둔 고 여사는 “내 딸의 효심 총량이 소진되어 지치게 될까 봐 나는 백 살을 사는 게 걱정스럽다”고 토로하면서, 자식들 효심의 총량이 고갈돼서 힘들지 않게 해 주는 것이 100세 부모들의 할 일 아니냐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해 줄 ‘역 효도’라는 충고다.
중국의 고전인 ‘예기’(禮記)에는 50세를 애(艾), 60세를 기(耆), 70세를 노(老), 80∼90세를 모( )라고 했다. 이 중에서 50세를 말하는 애(艾)는 쑥 ‘애’ 자이니, 머리털이 쑥처럼 허옇게 세었다 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불로초를 찾아 헤맨 진시황이 바로 애년(艾年: 50세)에 사망했는데 하지만 수명이 길어진 지금, 50∼60세는 경로당에서도 아예 받아주지 않을 정도다.
20세기 이후 수명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년이 길어지자 최장수국 일본에서는 한때 ‘0.7 곱하기 나이 셈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현재의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 실생활 나이로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셈하면 50세는 고작 35세, 60세는 42세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유엔의 새 연령 분류에 따르면 17세 미만은 미성년,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가 노년, 그리고 100세부터가 장수 노인이다. 수명 연장은 과연 축복인 것일까. 사람이 90세가 넘도록 오래 살게 됐다며 마냥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요즘 같이 ‘헬 조선’이 계속되는 상황이라면, 생명 연장은 말라 죽는 고통의 기간 연장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장년기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 노년기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신에게 영생을 약속받았으나 젊음을 유지해 달라는 소원은 잊었던 까닭에, 점점 늙고 쪼그라들어 작은 병 속에 갇힌 무녀(巫女). 그녀의 소원은 ‘고통의 끝’이었지만 죽고 다시 태어나는 생성의 순환이 없기에, 만물이 소생하는 4월마저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한 것 아닌가.
노인빈곤율 세계 1위인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신화(神話) 속의 무녀처럼 참담하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자신을 위해서는 모은 돈 한 푼 없이 비참한 여생을 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어렵게 살면서도 부모를 봉양했건만, 정작 자신들은 자식들과 떨어져서 고독한 황혼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지공선사’(지하철 공짜 승객)의 나이가 내일모레이니, 조금 과장이겠지만 꼭 남의 일 같지만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노인들은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란 말은 백번 옳지만, 노인의 발언은 눈으로만 해야 된다고들 한다. 오죽하면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지갑만 열어라’는 말이 있겠나.
노인들 참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은 경로당부터 유세를 시작하지만, 나라도 외면하고 자식들도 기꺼이 받들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비록 빈손일지언정 그래도 무언가 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선생은 95세 되던 해에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강 선생은 지난해 10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 세상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떠날 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요, 동행해 줄 사람 하나 없을 것이니….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다 쓰고 남은 쥐꼬리만 한 돈이나마,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쓰면서 인생을 건강하게 후회 없이 살다 가야 할 텐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