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딱 좋아! 서민은 더 좋아!
2016년 03월 25일(금) 00:00 가가
“남자에게 딱 좋아. 여자는 더 좋아!” TV 광고에 출연해 이렇게 외치던 인물이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요즘엔 개그맨 엄용수가 나와서 이전과 똑같은 ‘멘트’를 날린다. 건강식품 회사의 회장인 그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가 방송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얼마 전 서울에서 온 언론인 선배 한 분을 통해서였다. TV 광고에 직접 출연해 유명해지자 이번 4·13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법상 더 이상 텔레비전에 나올 수 없게 됐고 그래서 개그맨을 대타(代打)로 내세웠다는 설명이다.
그 선배 말을 듣고 나서 검색해 보니, 이미 서울에서는 이들의 ‘3부자 출마’가 화제가 돼 있었다. 회장인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해 서울 3개 지역에서 동시에 뛰고 있다는 것이다. 출마 이유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 했다.
국민의 건강이라면 아마도 육체적인 건강일시 분명하겠지만, 요즘 들려오는 총선 관련 소식은 온통 ‘정신 건강’을 해치는 게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 이 당 저 당 할 것 없이 국회의원 한번 해 보겠다는 욕심이 앞선 나머지 온갖 추태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셀프공천’만 해도 그렇다. 스스로 여성을 제외하고 나면 최상위 순번인 2번을 꿰참으로써 비례대표로만 5선이라는 세계적인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인데,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그는 버럭 화를 냈다. 비록 나중에 사퇴 의사를 접긴 했지만 한때 “이 따구로 대접하는 정당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며 ‘벼랑 끝 전술’로 파란을 일으켰다.
다 죽어 가는 더민주당을 가까스로 살려 놓았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2번 셀프공천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고, 그다지 비판받을 일도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전에 했던 말들이다. “내 나이가 77세예요. 비례대표 그런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대표 취임 직후 했던 말을 그는 여반장(如反掌)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었다.
그의 셀프공천을 지켜보노라니 문득 ‘친구불피’(親仇不避)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친척(親)이 됐든 원수(仇)가 됐든, 적절한 자리라면 꺼릴 필요가 없다(不避)는 뜻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기황양(祁黃羊)이라는 사람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됐다. 기황양은 진(晉)나라의 대부였는데 공정하기로 이름났다. 평공(平公)이 “남양(南陽) 현령 자리에 적합한 사람으로 누가 있겠나?” 물었다. 해호(解狐)라는 사람을 천거하자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하며 왕이 놀랐다. 이 때 기황양의 대답이 참으로 멋있다. “인재를 천거하라 하셨지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얼마 뒤 군사를 통수하는 위(尉)라는 자리에 누가 좋은가를 묻자 기황양은 기오(祁午)를 천거한다. 왕이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적임자를 물어 그대로 답했을 뿐입니다.”
공자(孔子)가 이 일을 두고 “밖으로는 원수라 하여 피하지 않았고, 안으로는 아들이라 하여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공평무사하다”라고 평했다 한다. 그렇다면 김종인 대표도 기황양처럼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을 추천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는다. 하지만 오로지 나라를 살리고 야당을 살리겠다는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가 총선이 끝난 뒤 친노(친 노무현) 세력에 의해 토사구팽(兎死狗烹)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설사 대권을 탐낸다 한들 뭐라 토를 달진 않겠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 판을 이긴 뒤 최종국에서도 초반 승기를 잡았다 결국 패배한 이세돌은, 시간이 지난 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음)을 패인(敗因)으로 지적했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5선 도전 또한 나중에 킹메이커로서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아무쪼록 소탐대실의 패착(敗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됐든 이번 제20대 총선은 공천 과정에서 역대 최악의 난장판을 연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다 배신자로 낙인찍힌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끝내 탈당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친박(친 박근혜)의 ‘비박 학살’ 과정은 차마 낯 뜨거워 못 볼 지경이었다.
물론 국회의원 욕심에만 함몰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새누리당의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그녀는 서초갑 후보 여론조사 경선에서 1%도 채 안 되는 지지율 차이로 패배했으나 깨끗이 승복하고, 당 지도부의 ‘용산 지역 차출’ 배려도 정중히 거절했다.
그녀는 후보를 사양하면서 “어제까지 ‘서초의 딸’이라 해 왔는데 어찌 한 순간에 ‘용산의 딸’이라 할 수 있느냐?”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배지라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이가 많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당연함에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듭된 국회의원 출마 요청을 거절한 이 지역 현직 자치단체장도 있다. 항시 웃음 띤 얼굴인 그의 이름을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진 않겠지만, 3선 단체장인 그는 최근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당 수뇌부에서 동시에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겸양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끝나면 봉사활동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자리를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 어지러운 선거판 속에서 이런 인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요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송중기(유시진 역)의 인기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고 있다. 수많은 아줌마들을 ‘심쿵’(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설렘)에 빠뜨린 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밀당’(밀고 당기기) 없이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다움에다, 장교다운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까지 갖췄다. 그가 당장 출마한다면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나선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국민에게 딱 좋아! 서민은 더 좋아!”라며 환호(歡呼)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총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이번에도 괜찮은 인물보다는 그나마 덜 나쁜 인물을 뽑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유권자들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지 말입니다’.
〈주필〉
그 선배 말을 듣고 나서 검색해 보니, 이미 서울에서는 이들의 ‘3부자 출마’가 화제가 돼 있었다. 회장인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해 서울 3개 지역에서 동시에 뛰고 있다는 것이다. 출마 이유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라 했다.
다 죽어 가는 더민주당을 가까스로 살려 놓았다는 점에서 보면 그의 2번 셀프공천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고, 그다지 비판받을 일도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전에 했던 말들이다. “내 나이가 77세예요. 비례대표 그런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대표 취임 직후 했던 말을 그는 여반장(如反掌)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었다.
그의 셀프공천을 지켜보노라니 문득 ‘친구불피’(親仇不避)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친척(親)이 됐든 원수(仇)가 됐든, 적절한 자리라면 꺼릴 필요가 없다(不避)는 뜻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기황양(祁黃羊)이라는 사람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됐다. 기황양은 진(晉)나라의 대부였는데 공정하기로 이름났다. 평공(平公)이 “남양(南陽) 현령 자리에 적합한 사람으로 누가 있겠나?” 물었다. 해호(解狐)라는 사람을 천거하자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하며 왕이 놀랐다. 이 때 기황양의 대답이 참으로 멋있다. “인재를 천거하라 하셨지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얼마 뒤 군사를 통수하는 위(尉)라는 자리에 누가 좋은가를 묻자 기황양은 기오(祁午)를 천거한다. 왕이 “기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묻자 기황양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적임자를 물어 그대로 답했을 뿐입니다.”
공자(孔子)가 이 일을 두고 “밖으로는 원수라 하여 피하지 않았고, 안으로는 아들이라 하여 피하지 않았으니 기황양이야말로 공평무사하다”라고 평했다 한다. 그렇다면 김종인 대표도 기황양처럼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을 추천했던 것일까?
아무래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는다. 하지만 오로지 나라를 살리고 야당을 살리겠다는 그의 진심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가 총선이 끝난 뒤 친노(친 노무현) 세력에 의해 토사구팽(兎死狗烹)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설사 대권을 탐낸다 한들 뭐라 토를 달진 않겠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 판을 이긴 뒤 최종국에서도 초반 승기를 잡았다 결국 패배한 이세돌은, 시간이 지난 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음)을 패인(敗因)으로 지적했다. 김 대표의 비례대표 5선 도전 또한 나중에 킹메이커로서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아무쪼록 소탐대실의 패착(敗着)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됐든 이번 제20대 총선은 공천 과정에서 역대 최악의 난장판을 연출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다 배신자로 낙인찍힌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끝내 탈당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친박(친 박근혜)의 ‘비박 학살’ 과정은 차마 낯 뜨거워 못 볼 지경이었다.
물론 국회의원 욕심에만 함몰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이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새누리당의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그녀는 서초갑 후보 여론조사 경선에서 1%도 채 안 되는 지지율 차이로 패배했으나 깨끗이 승복하고, 당 지도부의 ‘용산 지역 차출’ 배려도 정중히 거절했다.
그녀는 후보를 사양하면서 “어제까지 ‘서초의 딸’이라 해 왔는데 어찌 한 순간에 ‘용산의 딸’이라 할 수 있느냐?”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배지라면 사족(四足)을 못 쓰는 이가 많다 보니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당연함에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듭된 국회의원 출마 요청을 거절한 이 지역 현직 자치단체장도 있다. 항시 웃음 띤 얼굴인 그의 이름을 굳이 이 자리에서 밝히진 않겠지만, 3선 단체장인 그는 최근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당 수뇌부에서 동시에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겸양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끝나면 봉사활동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며 자리를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 어지러운 선거판 속에서 이런 인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했다.
요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송중기(유시진 역)의 인기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고 있다. 수많은 아줌마들을 ‘심쿵’(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설렘)에 빠뜨린 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밀당’(밀고 당기기) 없이 사랑을 향해 돌진하는 남자다움에다, 장교다운 강한 책임감과 리더십까지 갖췄다. 그가 당장 출마한다면 당선은 ‘떼 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나선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국민에게 딱 좋아! 서민은 더 좋아!”라며 환호(歡呼)할 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총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이번에도 괜찮은 인물보다는 그나마 덜 나쁜 인물을 뽑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유권자들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지 말입니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