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CF모델·호스피스 … 만화방 큰딸 영화 같은 삶
2016년 02월 04일(목) 00:00
독일로 오는 비행기는 알래스카를 경유했다. 눈 덮인 설경을 바라보면서 그제서야 자신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숙은 비행기가 데려다 줄 그곳이 안개 자욱한 길일지도 모른다고 미리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것이 자신을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비행기 안은 누군가의 울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원인모를 시큼한 냄새로 가득했다. 은숙은 품에 안고 있던 가방에서 작은 병에 담긴 고추장을 꺼내들었다. 손가락을 푹 넣어 입에 넣었다. 은숙을 정말로 위로한 것은 새빨간 고추장이었다. 고추장의 기운은 은숙의 심장을 건드렸다.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광주시 동구 대인동. 파독 간호사 김은숙(64)이 태어나 1970년 독일에 오기 전까지 자란 곳이다. 여고 1학년. 수업을 마치고 부모님이 운영하는 만화방에서 만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여고생 은숙은 무심코 들여다본 신문에서 파독 간호사 모집광고를 보게 된다. 몇 평 되지 않는 만화방 주인인 아버지는 2남 5녀의 자식들을 혼자 감당하기엔 버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딸인 김은숙의 독일 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어머니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권유할 정도였다.

겨우 열 여덟 살인 은숙은 마치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어리둥절하며 독일에 도착했다. 함께 온 간호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는 한인 간호사들을 ‘언니’라고 불렀고, 그들은 은숙을 ‘애기’라고 불렀다.

독일 가기 전 9개월간 간호보조원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다. 은숙이 근무했던 베를린 나자로 병원은 동서독 장벽 근처였다. 밤마다 총성이 울렸고,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다. 휴전상태인 고국 생각에 잠 못 이루기도 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스멀거리면, 한인 간호사들 중 비교적 나이가 많은 언니의 기숙사에 모였다. 밤새 울며 껴안고 한국노래를 부르다보면 마음이 잔잔해졌다. 무엇보다 먹는 것이 가장 고달팠다. 당시는 배추도 없었다. 양배추나 샐러리에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를 살살 뿌려 그야말로 흉내만 낼 뿐이었다. 매달 생활비 50마르크만 남겨놓고 모두 한국으로 송금했다. 그때는 아무리 먹어도 계속 허기졌다. 그들 모두 가난했기에 누구 하나 한 턱 쓰는 사람이 없었다. 여럿이 모여 닭 한 마리를 푹 끓여 국물을 나눠먹으면 그날이 잔치였고, 천국이었다.

한국음식을 생각하면 눈물까지 난다. 당시 파독광부 중 트럭을 몰고 한국물건을 파는 분에게서 된장, 고추장과 마늘 장아찌를 산 적이 있다.

“전날 뭐가 그리 허전했는지 마늘 장아찌를 주구장창 먹었지요. 다음날 안과 수술실에서 수술을 돕는데 의사가 계속 코를 막으며 ‘방귀냄새가 난다’고 그러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올 이야기지만 그때는 두려웠다. 옆에 있던 독일인 수간호사가 은숙이 마늘을 많이 먹어서 그랬다고 말했고, 의사는 당장 집에 가라고 다그쳤다. 은숙은 너무 서러워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그날 결국 일을 하지 못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3년만 있다 가려고 했지만, 간호사 생활과 병행해 2년간 간호학을 공부한 후 욕심이 생겼다. 월급이 더 많은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과 수술실에 배치된 이후 40년을 줄곧 한 병원에서 일했다. 돈을 많이 벌어 다시 돌아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대신 77년 결혼할 때까지 7년을 꼬박 한국 가족에게 송금했다.

남편은 한국에서부터 잘 아는 이웃이었다. 시댁 식구들과도 허물이 없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남편을 독일로 초청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딱히 일자리를 찾지 못한 남편은 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부도가 났다. 은숙은 당시 30만 마르크에 달하는 돈을 15년 동안 갚았다.



“그때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요. 내 월급에 차압까지 들어올 지경이었으니까요. 미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결국 돈을 다 갚았을 때는 이 사람과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후 남편과 헤어졌다. 두 딸아이가 있는 상태였다. 2012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간호사로 일했을 때 독일인 수간호사가 일 그만두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내가 워낙 잘 웃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수간호사가 영화 엑스트라로 출연해보라고 추천하더라구요.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지원했더니 덜컥 되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 올해로 벌써 4년째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파밀리엔 페스트(가족축제)’에 출연했고, 독일 공영방송 드라마 연속극에도 진출했다.

‘쾰른 006’ 건강 TV에서 의사가 진행하며 음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루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또한 2016년 개봉인 ‘트로켄 슈빔맨(건조수영)’에서 8명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열연했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을 연기하는 역할이었다.

이외에도 병원, 부동산, 경찰청 광고 등 그동안 찍은 크고 작은 광고 수만 150여 건에 이른다.

“매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이 일이 정말 즐겁습니다. 병원 일 할 때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이 일 또한 제 적성에 딱 맞아요.”

하지만 모델 및 배우 활동 외에 진정으로 은숙이 행복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자원봉사다. 3년 여 정도 홈리스들을 위한 스프 나눠주기 봉사와 삶을 마감하는 이들을 돕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독일에 처음 온 한인들을 위해 독일어 통역을 도와주거나 나이 든 한인들을 위해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한국음식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2010년에는 ‘베를린을 빛낸 204인’ 중 한 명에 선정되는 영예도 얻었다.

은숙은 지금도 하루에 한두 번은 꼭 한국음식을 먹는다. 밖에서 독일음식을 먹어도 언제나 집에 돌아와 고추장이나 김치를 삼켜야 위장이 시원해졌다. 향수병 때문일 거라고 했더니 소녀처럼 웃는다.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된장에 풋고추를 송송 썰어 푹 끓인 된장국을 한 사발 들이켜야 제 맛,이라며 고향의 냄새를 솔솔 풍긴다.

저 멀리 고향에서 흘러들어온 달빛 한 자락이 창문에 어룽댔다.



/박경란재독 칼럼니스트 kyou7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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