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9부 몽골 브럇트,종교의 땅- 알혼섬] ‘샤먼’이 神을 만난 곳 … 바이칼인 ‘정신의 고향’
2016년 02월 01일(월) 00:00 가가
6년마다 샤먼 축제 ‘한든타일라간’
중·미 등 대표 샤먼 40명만 입도
한때 탄압받던 샤머니즘 부활 움직임
중·미 등 대표 샤먼 40명만 입도
한때 탄압받던 샤머니즘 부활 움직임
유목의 땅, 시베리아에서는 한겨울 쏟아져 내린 눈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수북이 쌓이는 우리네 눈과는 달리, 시베리아의 눈은 끊임없이 이동한다. 워낙 건조한 땅이다보니, 눈에도 습기가 적어 잘 뭉쳐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겨울이면, 시베리아에 ‘눈의 바다’가 펼쳐진다. 강풍이 불면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눈은 파도처럼 춤을 추다 멈추고, 다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의 가장 큰 섬 알혼섬을 찾아가는 길목에도 눈의 바다가 초원을 뒤덮었다. 바람에 힘을 얻은 눈송이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넘으며 도로와 초원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알혼섬의 길목인 리스트비앙카로 가는 길. 눈을 막아선 것은 자작나무가 유일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작나무만 보고도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부는지를 안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는 잎이 자라지 않는 자작나무의 생존법을 관찰하며 강풍을 피해 사람이 살 수 있었다.
200여 고대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정신적 중심지였던 ‘샤먼의 섬’ 알혼도 지구온난화는 피해가지 못했다.
최고 수심이 1740여m에 달하는 바이칼 호수는 12월 초순부터 얼기 시작해 중순이 되면, 40∼80m 두께로 얼어붙는다. 겨울이면 얼음 위로 차가 다니지만 올해는 얼음이 어는 속도가 더디다.
역설적으로, 바이칼 일대의 고대 민족의 유목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던 추위였다. 바이칼 호수의 결빙은 알혼섬과 육지를 하나로 연결해줬고, 수 많은 고대민족이 알혼섬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혹한 덕분이다.
하지만 알혼섬은 소비에트의 종교 탄압보다 더욱 무서운 기후변화의 위협 앞에 놓여 있다.
알혼섬은 ‘종교의 땅’이다. 아시아 문화 원류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알혼은 바이칼 호수에 있는 27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길이 77㎞ 폭은 15∼25㎞다. 우리나라 제주도 절반가량의 면적이며 수많은 샤머니즘의 신비와 역사를 품고 있다. 섬 남쪽은 끊임없이 북서풍이 불고 있어 나무가 자라지 않고, 동쪽으로 산이 보이고 나무가 있다.
브럇트 언어로 알혼은 ‘매마르고 황량하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알혼에는 신들이 회의를 했다는 장소가 있다. 섬의 북쪽 끝 하보이(이빨이란 뜻)곶은 신들이 모인다고 해서 각국의 샤먼이 알혼을 찾고 있다.
신의 회의가 열렸던 이 지역이 알혼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하보이곶 앞 호수는 바이칼에서도 가장 수심이 깊다. 고대 종적은 이곳에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찾았다.
바이칼 알혼은 생명을 잉태하고 대륙을 품었던 바이칼 호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라시아로 퍼져나간 바이칼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고, 서사시의 산실이다.
알혼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샤먼들 중에서도 그 수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다, 대샤먼이 지명하는 몇몇만 들어갈 수 있었다, 입도시점도 엄격하게 제한돼 5월∼8월까지 방문할 수 있었다.
또 일각에서는 알혼섬에 징키스칸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심청이처럼 뱃길의 제물을 바쳤던 풍습도 전해져 오고 있다. 상인이나 샤먼들은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알혼에서는 가장 큰 샤먼 축제인 ‘한든타일라간’이 6년마다 열린다. 울란우데 몽골, 중국과 미국의 대표 샤먼 40여명이 모인다. 선택받은 이들 샤먼들은 여름 유목지 변경과 봄 파종을 기원한다.
흔히 희생양으로 불리는 신선한 제물을 바치고, 주문과 주술로 액을 쫓는다, 대지에 짐승의 피를 묻히는 것은 불경하다고 여기며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양을 죽인다. 자작나무로 생명의 나무를 심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신을 맞을 제단을 마련한다. 이 축제는 ‘샤먼의 부활’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16세기 후반 대규모 러시아인 이주정책을 폈고, 19세기 극동으로의 이주했다. 또 미신이라 여겨 샤먼을 학살하는 등 샤머니즘을 탄압했다.
최근 알혼섬의 샤머니즘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울란우데와 몽골 등지에 숨어 살던 샤먼들이 알혼섬을 중심으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믿음도 여전하다. 이곳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 전 ‘ 길의 신’ 아마르면제에게 인사를 한다. 종을 쳐서 신을 깨우고, 길을 떠날 때는 주위에 물을 뿌리거나 우유를 뿌린다, 뿌리고 나서는 음복을 하고 기운을 차린다,
시베리아 일대 마을마다 어귀에 서 있던 솟대와 장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장승과 솟대처럼 시베리아의 상징물들도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이해하는 것은 동북아시아 문화 원류에 한 발 다가서는 길이다. 고대 종족들은 종교를 통해 우주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나라와 문화의 기틀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을 통해 민족의 기원이 되는 설화를 만들어냈고, 지배자의 탄생 신화 등도 생겨났다. 또 수많은 토테미즘은 주 식량원이었던 동물을 소중하게 여겼던 믿음을 넘어선 새로운 신앙을 만들어 냈다. 부족과 초기 국가의 개념도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근간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아직도 바이칼 일대의 마을에서는 곰을 숭배하거나 사슴을 신성시하는 마을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은 나와 세계를 별개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로 연결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의 근간이기도 하다.
고대종족은 흙과 나무와 동물을 귀하게 여기는 철저한 생태주의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문화도 꽃피울 수 있었다.
/kroh@kwangju.co.kr
알혼섬의 길목인 리스트비앙카로 가는 길. 눈을 막아선 것은 자작나무가 유일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작나무만 보고도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부는지를 안다고 한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는 잎이 자라지 않는 자작나무의 생존법을 관찰하며 강풍을 피해 사람이 살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바이칼 일대의 고대 민족의 유목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생존을 위협했던 추위였다. 바이칼 호수의 결빙은 알혼섬과 육지를 하나로 연결해줬고, 수 많은 고대민족이 알혼섬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혹한 덕분이다.
하지만 알혼섬은 소비에트의 종교 탄압보다 더욱 무서운 기후변화의 위협 앞에 놓여 있다.
알혼섬은 ‘종교의 땅’이다. 아시아 문화 원류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알혼은 바이칼 호수에 있는 27개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길이 77㎞ 폭은 15∼25㎞다. 우리나라 제주도 절반가량의 면적이며 수많은 샤머니즘의 신비와 역사를 품고 있다. 섬 남쪽은 끊임없이 북서풍이 불고 있어 나무가 자라지 않고, 동쪽으로 산이 보이고 나무가 있다.
브럇트 언어로 알혼은 ‘매마르고 황량하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알혼에는 신들이 회의를 했다는 장소가 있다. 섬의 북쪽 끝 하보이(이빨이란 뜻)곶은 신들이 모인다고 해서 각국의 샤먼이 알혼을 찾고 있다.
신의 회의가 열렸던 이 지역이 알혼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하보이곶 앞 호수는 바이칼에서도 가장 수심이 깊다. 고대 종적은 이곳에서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찾았다.
바이칼 알혼은 생명을 잉태하고 대륙을 품었던 바이칼 호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유라시아로 퍼져나간 바이칼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고, 서사시의 산실이다.
알혼은 아무나 갈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샤먼들 중에서도 그 수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다, 대샤먼이 지명하는 몇몇만 들어갈 수 있었다, 입도시점도 엄격하게 제한돼 5월∼8월까지 방문할 수 있었다.
또 일각에서는 알혼섬에 징키스칸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심청이처럼 뱃길의 제물을 바쳤던 풍습도 전해져 오고 있다. 상인이나 샤먼들은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알혼에서는 가장 큰 샤먼 축제인 ‘한든타일라간’이 6년마다 열린다. 울란우데 몽골, 중국과 미국의 대표 샤먼 40여명이 모인다. 선택받은 이들 샤먼들은 여름 유목지 변경과 봄 파종을 기원한다.
흔히 희생양으로 불리는 신선한 제물을 바치고, 주문과 주술로 액을 쫓는다, 대지에 짐승의 피를 묻히는 것은 불경하다고 여기며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양을 죽인다. 자작나무로 생명의 나무를 심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신을 맞을 제단을 마련한다. 이 축제는 ‘샤먼의 부활’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16세기 후반 대규모 러시아인 이주정책을 폈고, 19세기 극동으로의 이주했다. 또 미신이라 여겨 샤먼을 학살하는 등 샤머니즘을 탄압했다.
최근 알혼섬의 샤머니즘이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울란우데와 몽골 등지에 숨어 살던 샤먼들이 알혼섬을 중심으로 다시 활동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믿음도 여전하다. 이곳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 전 ‘ 길의 신’ 아마르면제에게 인사를 한다. 종을 쳐서 신을 깨우고, 길을 떠날 때는 주위에 물을 뿌리거나 우유를 뿌린다, 뿌리고 나서는 음복을 하고 기운을 차린다,
시베리아 일대 마을마다 어귀에 서 있던 솟대와 장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장승과 솟대처럼 시베리아의 상징물들도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이해하는 것은 동북아시아 문화 원류에 한 발 다가서는 길이다. 고대 종족들은 종교를 통해 우주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나라와 문화의 기틀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을 통해 민족의 기원이 되는 설화를 만들어냈고, 지배자의 탄생 신화 등도 생겨났다. 또 수많은 토테미즘은 주 식량원이었던 동물을 소중하게 여겼던 믿음을 넘어선 새로운 신앙을 만들어 냈다. 부족과 초기 국가의 개념도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근간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다.
아직도 바이칼 일대의 마을에서는 곰을 숭배하거나 사슴을 신성시하는 마을들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은 나와 세계를 별개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로 연결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의 근간이기도 하다.
고대종족은 흙과 나무와 동물을 귀하게 여기는 철저한 생태주의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문화도 꽃피울 수 있었다.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