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몽골 ① 프롤로그
한민족과 닮은 바이칼의 설화·전설 만난다
2016년 01월 01일(금) 00:00

러시아 이르쿠츠크 주 바이칼 호수 일대는 수만년 전부터 많은 민족이 문화를 꽃피운 터전이다.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오색천이 걸려 있는 소나무와 브럇트 몽골 민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바이칼 호수 불암바위 전경.

게르(Ger)의 밤은 아늑했다.

12월 하순의 북풍은 초원의 모든 것을 날려보낼 듯 사나웠지만 게르는 어머니 품처럼 유목민의 단잠을 붙잡아 주었다.

기둥을 땅에 박지 않는 유목민의 집, 게르는 뿌리 내리지 않았기에 흔들리면서도 결코 뿌리 뽑히지 않았다. 이따금, 바람에 펄럭인 게르에서 늑대 울음 같은 처량한 소리가 울리곤 했다. 텅 빈 초원의 모든 소리는 혼자여서 더욱 위태로워 보였다.

게르의 문으로는 사람이 드나들었고, 지붕 가운데 구멍은 화덕의 연기와 쏟아져 내리는 별빛의 통로였다. 브럇트(Buryatia)와 몽골 사람들은 이 구멍으로 신이 내려온다고 믿었다. 아침이면 양털로 만든 게르 안으로 햇빛을 모셔오는 것도 이 구멍의 역할이었다.

고단한 유목민을 ‘고향의 꿈’으로 이끄는 것도 게르다. 유목민에게 고향이 없는 건 아니다. 떠도는 삶일수록 고향은 더욱 간절하고 명징해진다. 한밤, 언덕 위에서 보름달을 깨물듯 울음 우는 늑대처럼 몽골 유목민은 타지를 떠돌면서도 외로이 자신의 문화를 지켜왔다.

떠나는 것은 외로움을 동반한다. 정든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유목은 고독이 그림자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그네의 봇짐은 단출하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떠나기 수월하다. 가볍게 떠나야 돌아오는 길도 편하다.

브럇트와 몽골의 문화가 그러하다. 과장되거나 화려하지 않고 꼭 있어야 할 것,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과 고운 선율이며, 춤을 만들어 낸다. 게르는 단아한 ‘유목의 멋’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움직이는 집’이었다. 몽골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브럇트 민족은 현재 러시아 브럇트 자치공화국과 러시아 이르쿠츠크 일대에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다.

브럇트, 몽골의 문화 원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유목’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을 이동하며 만들어 낸 그들의 문화는 역사 속 멈춰버린 유물이 아니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듯 진화를 거듭하는 현재의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문화 원류는 한민족의 문화와 너무도 흡사하다.

그들의 성지, 바이칼 인근의 샤만은 우리네 무당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숱한 설화와 전설은 마치 한 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 같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Irkutsk)와 브럇트 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바이칼에 전해져 오는 호리투메드(Horitumed) 사냥꾼의 이야기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형 설화다.

바이칼호에서 백조 아홉 마리가 목욕을 하는 것을 훔쳐본 호리투메드는 옷 한 벌을 훔쳐 백조와 결혼을 하게 되고 11명의 자손을 낳게 된다. 이들이 11 씨족의 조상이 된다. 일각에서는 11번째 아들이 일군의 사람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 나라를 세웠고, 이 나라가 부여라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게세르(Geser) 신화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닮아있고, 하느님은 ‘후헤 문헤 텡그리’로 불린다. 텡그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뜻이다.

설화뿐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우리 민족과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몽골이다. 시베리아의 많은 부족은 여전히 우리가 말하는 지신을 믿는다. 남의 집에 놀러갈 경우 지신에게 먼저 아뢰고 문지방을 넘어갈 때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어른한테 물건을 줄 때도 왼손으로 주거나 왼손으로 받지 않는다.

우리의 성황당이라고 할 수 있는 ‘오보’(Ovoo)도 돌로 쌓아 올린다. 나무를 중심으로 돌무더기를 쌓는데 나무는 대부분 버드나무다. 오보는 한국 마을의 성황당과 유사하다.

또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보면 관음보살 옆에 중생의 고통을 치료해주는 버드나무가 등장하는 것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불을 귀하게 여기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몽골인은 게르의 화덕에 소금과 양파를 넣지 않고 집안의 흥망과 연결된다고 믿어 화덕을 귀하게 다룬다.

흔히 결혼을 할 때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서는 우리처럼 몽골의 게르도 왼쪽은 남성의 공간, 오른쪽은 여성의 공간으로 꾸며진다.

일부 학자들이 우리의 시원을 바이칼로 보는 것도 몽골의 문화 원류와 우리의 문화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원류에서 시작된 문화이기 때문에 그 형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1만7000∼1만9000년 전 바이칼 일대에서 머물던 사람들이 1만2000여년 전 몽골과 한반도 등지로 이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바이칼 알혼섬 일대의 샤먼들도 “한국과 몽골은 뿌리가 같다”며 입을 모은다.

육당 최남선(1890∼1957년)이 언급한 ‘불함문화론’의 불함처럼 몽골 곳곳에는 신성한 곳을 뜻하는 불암(불한, 부르한)바위도 남아 있다.

비단 몽골과 한국의 유사성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있는 몽골인은 4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몽골 인구 300만명 중 1%가 넘는 몽골인이 한국에 있는 셈이다.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은 몽골 GDP의 17%에 달한다. 몽골을 여행하다 보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시베리아 일대의 많은 유목민과 몽골은 과거와 현재, 우리와 긴밀하게 문화의 본질을 주고 받고 있다. 몽골을 이해하는 게 한민족의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며, 한류를 몽골에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시아문화도시 광주가 몽골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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