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윤 소설가·광주여대 교수]‘작은 연못’과 ‘色是空’을 추억하며
2015년 12월 21일(월) 00:00
야권이 자멸을 향해 ‘설국열차’를 탔네. 더하기를 해도 힘이 부칠 터인데, 빼기를 하면 박살 나지.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근 행태에 대한 내 주위의 시각들을 요약해서 분류하자면 두 가지이다. 자멸을 향한 유한궤도에 들어섰다거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가비가 되지 못하면 호흡을 못하는 종류들이라는 것.

도무지 양음(陽陰)이 부딪고 돌면서 만들어 내는 율려(律呂)의 조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막캥이’ 부류들이라서, 우주가 질서라는 조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세상이 사람들의 성정의 융화에 의해 굴러가는 것을 거스른다. 그러한 자들은 패도적이어서 맹자에 의하면 결코 위정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친구의 비분강개를 보며 나는 문득 양희은의 ‘작은 연못’과 장윤환의 연극 ‘색시공’을 떠올렸다. 그들의 담론과 하나도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오늘의 우리 현실은?

우리는 그 시절, ‘작은 연못’을 부르며 ‘색시공’을 연습했다. 그 해 아주 추운 초겨울이었는데, 12월 28일 공연 예정으로 JYC의 작은 사무실에서 찬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연습했다. 난로 하나 없이 창문을 꼭꼭 닫고, 암막 같은 커튼을 쳤어도 어김없이 스며드는 초겨울 추위로 우리는 매우 힘이 들었다.

우리에게 공연을 제의했던 연출자는 소리북 하나로 모든 음향을 조정했다. 그래서 가끔 소리북을 이용하여 반주를 맞춰 노래하며 추위를 이겨 냈는데, 그때 불렀던 노래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작은 연못’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루 궁둥이만큼 작은 연못에 살던 두 물고기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 한 놈이 죽자 시체의 오염 때문에 이긴 놈도 죽는다는 노래와 한 스승 밑의 두 뛰어난 제자들이 의발(衣鉢) 전수의 정통성이 서로 자기에게 있다가 맞서는 바람에 양패구상(兩敗俱傷·양 쪽 모두 막대한 상처를 입음)으로 둘 다 패배하고, 다른 놈에게 승리를 헌납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자는 우리 민족의 분단 양상을, 후자는 소위 한국의 양김씨에 대한 풍자였으니, 그 닮은꼴에서 오는 친화성 있는 노래와 연극이었으니, 잠재의식에서 우리는 그 노래를 자주 불렀던가 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1975년 무렵일 것이다. 대학에서 연례행사로 했던 공연이 끝난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선생님이 젊은 연극학도를 소개했고, 그는 서울에서 가져 온 따끈따끈한 연극 한 편을 공연하자고 했다. 배우 두 명에, 연출과 조연출 등 4명이 전부였다.(조연출인 나는 무대에는 못 서고 겨우 스승 역할인 목소리로만 등장했다)

그러나 재밌었다. ‘코카콜라를 달라는 자식에게 펩시콜라를 줄 부모가 어디 있으며’ 등의 성서를 파라프레이즈(Paraphrase·변주)한 것도, 숫타니파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스승의 유지를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상생(相生)을 뒤틀어 풍자한 것이나, 법구경의 한 대목 등도 연습하는 내내 우리의 즐거움이었다.

물론 그 연극은 대중 앞에서 공연할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다던 우리의 연출가가 끝내 말해 주지 않아서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시내에 게시하기 위해 인쇄했던 우리들의 공연 포스터는 게시된 지 이틀 만에 수거되고, 파손되었던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공연은 할 수 있으나 대중들을 불러 모아, 공연장에서는 막을 올릴 수 없다던 현실이 이제야 충분히 이해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두 달 동안 우리들의 모든 노고는 무위로 그칠 뻔했으나 다행히 YMCA의 시민단체 연합 송년 행사에서 단 1회지만 공연을 할 수가 있었다. 조명도 없었고 막도 없어서 그야말로 초라한 무대였지만, 그 공연이 끝나고 받았던 박수 소리는 어제처럼 선명하다. 내 가슴 속에 일었던 사회적 공분(公憤) 역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공분일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자멸로 가는 설국열차는, 시민의식을 결집하지 못하는 야당 정치인들에 대해서! 아직도 70년대에서 머물러 있는 그들의 패도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세밑에 화쟁(和諍)과 율려와 조화를 떠올려 전환적 변환을 꾀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올 한 해 힘겹게 넘어 온 민중들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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