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절강성 항저우 시후(西湖)
2015년 11월 19일(목) 00:00 가가
바다같은 청정호수·그림같은 풍경 … 예향의 ‘水都’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는 ‘산 좋고 물 맑은’ 중국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다. 중국 메이저 음료회사의 하나인 와하하(娃哈哈)를 비롯한 유명 음료 회사들이 본사를 두고 있다.
옛 중국인들은 황해의 해산물로 산해진미를 만끽하고 녹차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항저우 차를 마신 뒤 소동파(蘇東坡·1037∼1101)가 노래한 시후(西湖)를 노니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항저우는 중국 남송(南宋·1127∼1279년)의 도읍지로 융성했다. 제왕 14명이 머물렀던 중국 7대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로 중국 10대 명승지로 꼽힌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항저우(杭州)라는 지명은 ‘배가 건너는 나루터’라는 의미다. 항저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물의 도시이다. 이곳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호수가 있다. 중국 내에서 시후로 부르는 호수는 36개나 되지만, 단연 항저우 시후가 으뜸이다.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스토리텔링, ‘인상서호(印象西湖)’도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시후를 배경으로 연출한 공연이다.
항저우가 남송의 도읍이 된 배경은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송이 금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자 그 후예들이 항저우로 퇴각해 세운 나라가 남송이다. 통치기간 9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남송이 유명한 것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인과 화가들이 많이 배출된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소동파다. 그가 지은 赤壁賦(적벽부)는 한자문명권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절창(絶唱)이다. 항저우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은 시후는 소동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호수 전체 면적은 6.3㎢, 둘레는 15㎞, 길이는 동서 2.8㎞, 남북 3.3㎞, 평균 수심은 1.5m, 최대 수심은 2.8m에 달한다.
소동파는 ‘음호상일초청후우’(飮湖上一初晴後雨)라는 시를 남겼다.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이 또한 기이하네/ 시후를 서시에 비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답다.”
시후는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중국인들의 감성의 공간이 됐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과 노을이 비끼는 저녁,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모습이 각각 새로운 정취를 자아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시와 그림을 남기지 않은 시인묵객을 찾기 어려울 정도.
시후의 조경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원 설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지역에서 시후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모방한 호수와 둑길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소동파의 원래 이름은 소식(蘇軾)이다. 본명 보다 동파(東坡)로 유명한 것은 그가 말년에 항저우 서호 인근 동쪽 언덕에 기거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주지사로 부임했을 때 20만 명을 조직해 서호의 연못에서 진흙을 긁어내 2.8㎞에 달하는 제방을 쌓았다. 제방 가에는 앵두나무와 버드나무 등 꽃과 풀을 심었다. 당시 노역했던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로 만든 동파(東坡肉)을 만들어 백성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동파육은 항저우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항저우는 이야기 산업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대표적인 송성가무쇼(宋城歌舞表演)는 제작비 3000만 위엔, 200여명의 우수 배우들이 매일 열연하는 항저우 최고의 문화예술 공연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전설 외에도 소수민족 문화를 적절히 섞은 내용은 물론 살아있는 말이 무대에 등장할 만큼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비오는 장면에서는 객석까지 실제로 비가 떨어진다.
중국 호수를 대표하는 시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정부의 강력한 보호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고시된 ‘시후 문화경관의 완충지역을 위한 항저우 인민자치정부 특별관리 계획’(Hangzhou Municipal People’s 은 시후호 전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도시 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적 장치이다. 이 법에는 지방 정부격인 항저우시가 시후의 풍광을 어떤 식으로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개발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유산 영향 평가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못박고 있다.
항저우 시후 문화경관 보존 및 관리 계획(2008∼2020)은 유산의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 체계, 세계유산 유적의 보호에 대한 국가적 기준에 따른 보호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시후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유람선이 없고 전기선들이 대부분이다. 시후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항저우=윤영기기자 penfoot@
옛 중국인들은 황해의 해산물로 산해진미를 만끽하고 녹차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항저우 차를 마신 뒤 소동파(蘇東坡·1037∼1101)가 노래한 시후(西湖)를 노니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항저우(杭州)라는 지명은 ‘배가 건너는 나루터’라는 의미다. 항저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물의 도시이다. 이곳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호수가 있다. 중국 내에서 시후로 부르는 호수는 36개나 되지만, 단연 항저우 시후가 으뜸이다.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소동파다. 그가 지은 赤壁賦(적벽부)는 한자문명권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절창(絶唱)이다. 항저우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은 시후는 소동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호수 전체 면적은 6.3㎢, 둘레는 15㎞, 길이는 동서 2.8㎞, 남북 3.3㎞, 평균 수심은 1.5m, 최대 수심은 2.8m에 달한다.
소동파는 ‘음호상일초청후우’(飮湖上一初晴後雨)라는 시를 남겼다.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이 또한 기이하네/ 시후를 서시에 비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답다.”
시후는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중국인들의 감성의 공간이 됐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아침과 노을이 비끼는 저녁, 맑은 날과 비 오는 날 모습이 각각 새로운 정취를 자아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시와 그림을 남기지 않은 시인묵객을 찾기 어려울 정도.
시후의 조경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정원 설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지역에서 시후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모방한 호수와 둑길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소동파의 원래 이름은 소식(蘇軾)이다. 본명 보다 동파(東坡)로 유명한 것은 그가 말년에 항저우 서호 인근 동쪽 언덕에 기거했기 때문이다.
그는 항주지사로 부임했을 때 20만 명을 조직해 서호의 연못에서 진흙을 긁어내 2.8㎞에 달하는 제방을 쌓았다. 제방 가에는 앵두나무와 버드나무 등 꽃과 풀을 심었다. 당시 노역했던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로 만든 동파(東坡肉)을 만들어 백성들과 나눠 먹었다고 한다. 동파육은 항저우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항저우는 이야기 산업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대표적인 송성가무쇼(宋城歌舞表演)는 제작비 3000만 위엔, 200여명의 우수 배우들이 매일 열연하는 항저우 최고의 문화예술 공연이다.
항저우의 역사와 전설 외에도 소수민족 문화를 적절히 섞은 내용은 물론 살아있는 말이 무대에 등장할 만큼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비오는 장면에서는 객석까지 실제로 비가 떨어진다.
중국 호수를 대표하는 시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정부의 강력한 보호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고시된 ‘시후 문화경관의 완충지역을 위한 항저우 인민자치정부 특별관리 계획’(Hangzhou Municipal People’s 은 시후호 전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도시 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적 장치이다. 이 법에는 지방 정부격인 항저우시가 시후의 풍광을 어떤 식으로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개발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특성에 영향을 주는 ‘유산 영향 평가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못박고 있다.
항저우 시후 문화경관 보존 및 관리 계획(2008∼2020)은 유산의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 체계, 세계유산 유적의 보호에 대한 국가적 기준에 따른 보호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시후에는 화석연료를 사용한 유람선이 없고 전기선들이 대부분이다. 시후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항저우=윤영기기자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