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생각' (134) 기원
2015년 11월 05일(목) 00:00 가가
절로 마음 모아 기도하고 싶어지는 시절
지난 주말 친구 따라 교회 바자회에 다녀왔다. 팥죽과 수제 돈가스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찐빵과 꽈배기튀김은 후식, 두 손엔 김치 등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들고 나서니 잔치 집 마실 다녀온 듯 마냥 즐거웠다. 내 마음 속 종교는 따로 있지만, 신앙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언제부턴가 교회 법당 성당 그 어느 곳엘 가도 똑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절로 마음모아 기도하고 싶어진다.
그런 마음으로 서울 가는 길에 들렀던 성북동 길상사. 기원의 간절함으로 들어선 사찰이지만 한국 현대시가 자랑하는 천재 시인 백석(1912∼1996)과 그가 자야라 불렀던 한 여인의 순정하고도 거룩한 사랑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어서인지 애틋함이 일었다. 시인을 사랑했던 기생 김영한(1916∼1999)은 한국전쟁으로 그와 영영 이별하게 되면서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차려 큰돈을 벌지만 법정스님에게 오로지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고 전 재산인 길상사 터를 시주한다. “천억 재산이 그 사람의 한줄 시만도 못하다”고 했던 김영한은 시인을 기리는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 위한 기금도 기부했다.
길상사의 사연과 함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최종태 조각가(1932∼ )의 ‘관세음보살상’(2000년 작)이다. 관세음보살상은 여느 사찰의 불교 조각과는 다른 양상이다. 천주교신자인 원로 조각가가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 인연’을 만나 성모상 같기도 하고 관세음보살상 같기도 한 조각을 세워 종교 너머 보편적 구도의 미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적 표상에 한국적인 정서를 더한 조형을 만들어온 조각가는 관세음보살상에 단순하면서도 슬픔과 기쁨, 아니 그마저도 초월한 영성을 담아내고 있다.
관세음보살의 원력에 이끌려 기도하면서 여러 상념에 젖어본다. 가장 세속적이었던 요정이 가장 신성한 사찰로 거듭나는 반전을 기획했던 그 여인이 주인공이었던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와 나타샤는…”〈백석 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와 나타샤는…”〈백석 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중에서〉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