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나고 꽃 피고 색깔옷 입는 남극 반갑지만은 않네
남극 면적 1%는 식물 차지
죽었다 살았다 … 땅 덮는 지의류
펭귄 배설물 위 이끼 선태류
눈 표면 빨강·갈색의 조류
꽃피는 현화류 등 800종 발견
“당구대 녹색 융 뜯어 먹을까”
초록 결핍 해결 위해 수경재배
2015년 09월 23일(수) 00:00
남극하면 무채색 세상일 것 같지만 남극 전체로 보면 초록색이 1% 정도는 있다. 식물 덕분이다. 단,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곳은 남극반도와, 주변의 섬, 해안에 집중되어 있다. 남극대륙은 빙하, 바위와 자갈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기 힘들다.

지난 글에서 남극의 동물은 ‘감응하는 생물’이라고 썼다. 식물의 생활은 좀 더 면밀한 관찰을 요한다. 키를 낮추고 비스듬히 살펴보아야 한다. 남극은 눈이 있는 사막과도 같다. 이런 곳에서 남극의 식물들은 기운을 아껴서 조금씩 조금씩 자란다. 극도의 추위와 탈수상태, 거친 바람과 낮은 일조량에도 불구하고 납작 엎드려서 살아낸다.

지금까지 약 800종의 식물이 남극에서 발견되었다. 남극에 사는 식물은 크게 지의류, 선태류, 조류, 현화식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의류(地衣類)는 문자 그대로 의복처럼 땅을 덮고 있는 식물이다. 우스네아(Usnea aurantico-atra)는 남극에서 자주 관찰되는 대표 지의류이다. 우스네아는 겨울이 되면 바삭하게 말라버렸다가 봄이 되면 눈이 녹은 물을 먹고 다시 살아난다. 이걸 몇번이나 반복한다. 즉 얼마간은 죽어 있고, 얼마간은 살아 있을 수 있다.

담백하게 바랜 초록색의 우스네아와는 달리 노랗거나 주황색으로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지의류도 많다. 바위 표면이나 해안가에 있는 동물 뼈 표면을 덮고 있다. 지의류가 이런 화려한 색을 띠는 것은 극지의 강렬한 자외선으로부터 광합성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식물은 기본적으로 어디에서건 광합성과 호흡을 하며 살아간다. 지의류는 -17℃에서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선태류(蘚苔類)는 이끼이다. 뿌리, 줄기, 잎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드러운 흙에서 자란다. ASPA no. 171 나레브스키 포인트인 펭귄마을에는 이끼들이 많다. 펭귄 배설물에는 질소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질소성분이 이끼를 잘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죽어서 두껍게 쌓인 이끼를 밟으면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잠시 밖에 나와 우레탄 장판 위를 걸을 때처럼 푹신푹신하다. 남극의 이끼는 대부분 초록색이다. 선태류는 -2.5℃ 에서도 광합성을 한다.

조류(藻類)는 호수나 바닷속처럼 물 속이 아니더도 수분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토양 표면이나 바위의 표면에 서식한다. 바위의 갈라진 틈이나 자갈 바닥, 이끼 군락, 눈 표면에서도 서식한다. 특히 눈 표면에서 자라는 설상조류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녹색과 빨강, 갈색으로 색을 바꾼다. 조류는 얼음이 녹는 시기에 눈 사이의 수분과 영양을 이용하여 번식한다. 남극에는 녹조류가 많다. 수박조류도 색은 빨갛지만 녹조류에 속한다. 남극의 극저온에서 서식하는 조류는 미세조류를 포함해 현재까지 300종 넘게 알려져 있다.

현화식물은 꽃을 피워 씨로 번식하는 식물이라는 뜻이다. 남극에 꽃이라니, 하지만 정말 꽃이 핀다. 남위 60°이상에는 현화식물이 단 두 종만 서식한다. 남극잔디와 남극좀새풀이라고 불리는 데스캄프샤(Deschampsia antarctica)와 콜로반투스(Colobanthus quitensis)이다. 이들은 기울어진 곳, 습기가 많은 곳에 지의류와 선태류와 함께 자란다. 이 두 현화식물은 남위 68°아래에서는 볼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극에 서식하는 현화식물은 종류도 100 여종 정도 되고, 훨씬 고위도인 북위 84°에서도 생육한다고 한다.

연간 3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남극 반도를 찾는다. 요즘 이들 몸에 붙어서 남극에 들어온 동식물 외래종들이 남극의 고유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외에도 지구온난화로 점점 남극의 기후가 변화하면서 식생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현화식물의 남방한계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남극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흰 땅이 점차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반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초록색을 볼 수 없는 환경은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일본 국립극지연구소의 하시다 겐 박사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연구경험을 토대로 ‘그린아웃(Green out)’이라는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린아웃은 극한지에 머무느라 초록색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경우 신체적, 정서적 결핍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비슷하게 초록색에 대한 결핍을 느낀 19차 월동대 고경남 의료대원은 ‘당구대의 녹색 융마저 뜯어먹고 싶어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요즘은 남극조약 때문에 식물을 흙에서 재배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채소를 수경재배하는 기지들도 많고 남극에서 초록을 접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고안되고 있다. <끝>

〈전 남극 세종과학기지 28차 월동대 생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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