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를 지키자’
2015년 07월 14일(화) 00:00
박 수 봉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 복지사업팀장
전국 1500여 개의 놀이터에 ‘이용금지’ 안내문과 빨간 봉쇄 테이프가 쳐졌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시행됨에 따라, 2015년 1월부터 안전 기준 검사에 불합격하거나 검사를 안 받은 놀이터의 이용이 금지된 때문이다. 국가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전국 2만여 개의 놀이터 가운데 이용이 금지된 놀이터가 1581개에 이른다. 광주시에서도 64개 놀이터가 폐쇄되었다. 불합격한 놀이시설은 개보수한 후 재검사를 통해 합격판정을 받을 때까지 기약 없이 문을 닫아야 한다.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집 앞 놀이터를 잃어버렸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는 60.3점으로 OECD 30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업스트레스’라고 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사회의 경쟁 시스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습에 매진한다. 놀이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러한 아동기 학습과 놀이의 심각한 불균형이 건강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아이들의 삶과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회적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정부는 올해 ‘제1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삶의 만족도 등 아동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각종 지표를 높이려는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 계획안에 ‘아동 놀 권리 헌장’ 제정이 포함되어 있다. 학업과 놀이·여가 간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중앙부처·지자체·교육청·NGO가 공동으로 놀 권리 헌장을 선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제1차 놀이정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가 놀이를 아동의 권리 차원에서 이해하고 실질적인 놀 권리 실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5월에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어린이 놀이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는 다음과 같은 5개 조항이 담겨 있다.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차별 없이 놀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놀 터와 놀 시간을 누려야 한다. ▲어린이는 다양한 놀이를 경험해야 한다. ▲가정·학교·지역사회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이 헌장 역시 아동의 놀 권리를 존중한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선언들은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놀이터’가 사라지고 있다.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08년에 제정되어 2차례의 유예기간을 두고 7년 만에 시행되었다.

그동안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에 대한 대안이 부족했다. 법이 시행되고 나서 일부 대형 브랜드 아파트는 폐쇄 이후에 신속히 재검사를 받아 놀이터를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영세, 소형, 공공주택의 민간놀이터들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이곳 놀이터들은 시설 보수에 쓸 예산이 없다. 방수와 외장 페인트 공사비용도 확보하지 못해 놀이터 보수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시행한 법이 오히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빼앗아 버린 셈이다.

아이들의 ‘놀 권리’ 실현에 있어, 구호가 아닌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안전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 폐쇄된 놀이터 가운데 저소득, 영세 아파트 내에 있는 놀이터 지원을 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놀이에서마저 차별을 겪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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