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의 덫
2015년 03월 30일(월) 00:00
오 수 빈
광주지법 판사
몇년전군법무관으로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떤 병사 명의의 예금계좌가 속칭 ‘보이스피싱’이라고 하는 전화금융사기에 사용되었고, 그 사기범행의 공범으로 입건된 병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기 범행에 사용된 전화번호의 가입지가 중국이거나 가입자 명의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피해자들이 입금한 돈이 당초 예금계좌를 개설한 지역과 멀리 떨어진 여러 장소에서 인출되어서 단순히 사기 범행에 그 병사 명의의 예금계좌가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 범죄를 저지른 적 없이 평범한 생활을 하여 오던 그 병사가 과연 사기범행에 가담하였을지 의문이 들었다.

사안을 살펴보니 그 병사는 입대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하였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가 우연히 인터넷 카페에 게시된 대출 광고 글을 보고 상대방에게 연락하여 대출 문의를 하였고 상대방의 지시에 따라 새로 개설한 예금계좌의 통장, 현금인출카드,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을 퀵서비스를 통하여 넘겨주었는데 이후 상대방으로부터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연락만 받고 넘겨주었던 통장 등은 돌려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병사는 자신이 전화금융사기의 범인으로 의심받아 수사기관에서 상당 기간 조사를 받아 억울하고, 은행거래도 정지되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소연하였다.

위 사건처럼 별다른 의심 없이 대출받으려는 생각으로 타인에게 통장 등을 넘겨주는 경우 사기범행의 공범으로 수사받을 수 있고, 금융기관으로부터 일정 기간 신규 예금계좌 개설 제한, 전자금융 거래 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사기범행의 공범으로 가담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양도·대여를 통하여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하여 현금인출기 거래가 가능한 예금통장, 현금인출카드, 그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 전자금융거래에 이용되는 접근매체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대가를 수수·요구 또는 약속하면서 대여하는 경우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특히 2015년 1월 20일 개정·시행된 전자금융거래법은 대가를 받고 대여한 경우뿐만 아니라 대가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대가를 요구하거나 약속하면서 접근매체를 대여하는 것을 처벌 대상으로 새롭게 포함하여 법 개정 전과는 달리 접근매체를 대여하기로 한 이상 실제로 그 대가를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A상사, B기획 등의 상호를 내세워 버젓이 개인통장과 법인통장을 사고팔며 대여받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의 일시적인 해소를 위하여 전자금융거래에 이용되는 접근매체를 양도 또는 대여하였다가 상대방으로부터 약속받은 대가도 받지 못하고, 사기범행의 피의자로 의심받아 조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금융거래에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유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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